이렇듯 흐린 날엔 누가
문 앞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보고 싶다고 꽃나무 아래라고
술 마시다가
목소리 보내오면 좋겠다
난리 난 듯 온 천지가 꽃이라도
아직은 니가 더 이쁘다고
거짓말도 해 주면 좋겠다
구양숙 - 봄날은 간다
너를 좋아했어
그래서 다 좋아 난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다 좋아 보이는 거야
널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재미있고 생각 할 것도 많아서 참 좋아
시간이 계속 흘러가도
너를 좋아했던 마음은 똑같을 것 같아
좋아하는 건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는 게 아니잖아
너를 정말 좋아했어 그래서 나도 참 좋았어
원태연 - 괜찮아
좋아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나태주 - 좋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태주 - 내가 너를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대로
비오면 비오는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김용택 - 다 당신입니다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황경신 - 그때가 가장 슬프다
산은 좀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도 그 산에 갇혀
꼼짝할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내 사랑은
짙은 안개 속처럼
참 난감해서 더 절절했다.
절절 속 끓이며
안으로만 우는 안개처럼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
이제야 하는 얘기다.
오인태 - 난감한 사랑
사랑하지 않고 스쳐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 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양귀자 - 모순
비가 온다
이쯤에서
너도 왔으면 좋겠다
보고 싶다
김민호 - 비가 온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정희 - 비망록
누군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 손톱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