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라던 내일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나와 그 애는 처음 만났다. 나와 열살 터울이 나는 우리집 늦둥이 은수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혼자 힘으로 애를 둘씩이나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친 어머니는 나와 은수를 데리고 고향인 광주로 내려오셨다. 어머니는 짐보따리를 들고 나는 핏덩이 은수를 업은 채로 도착한 낯선 집앞에서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선지 한참을 망설였다. 당시 나는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처음 해보는 긴 여행에 극히 지쳐있었기 때문에 눈치없이 어머니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어린애처럼 보채었다. 허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어렸고, 모르는게 많았고, 그래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내 보챔에 마지못해 대문을 두드리셨고 곧 낡은 대문이 우는 소리와 함께 집주인 할머니가 나오셨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에 한가득 붙어있는 주름과 굽은 등허리를 보며 언젠가 우리 엄마두 저렇게 될까, 머릿속으로 그리고서는 덜컥 겁을 먹었다. 대문 밖으로 나온 집주인 할머니는 어머니와 대면하자마자 한동안 굳어있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한참을 귀신이라도 본듯 그러더니 이내 할머니가 어머니의 팔이고 가슴팍이고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쉬어있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러대면서.
'나가 그래서 이년아, 그 눔은 안된다고 몇번을 말혔는디, 잉?'
'…….'
'아이고, 그리 말려쌌는디, 아이고 내 팔자여…!'
'…….'
'시방 느 꼴이 이게 무어냔 말이여!'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어머니를 그리 때린다면 내가 울고불고 말렸을 법도 한데 나는 통 그러질 못했다. 나는 그저 은수를 업느라 허리춤에 매고있던 포대기 끝자락을 꾹 쥐며 그 광경을 방관하였을 뿐이었다.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할머니에 대한 두려움도, 긴 여행에 지친 몸뚱이도 아니었다. 그것은 필시 할머니의 눈에 매달린, 금방이라도 떨구어질듯한 눈물이었으리라.
곧 소란은 잦아들었다. 큰 소리에 잠에서 깬 은수가 목이 터져라 울어젖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땅이 꺼질듯 깊은 한숨을 쉬며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우리에게 등을 보이셨다. 어머니는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아까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한숨을 푸욱 내쉬고서야 나와 은수를 데리고 앞서 할머니가 들어간 집으로 발을 딛었다. 뒤에서 바라본 어머니의 어깨가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내가 눈치를 살피며 발을 들여놓은 그 집이 어머니의 유년시절 대부분을 함께했던 옛 집이라는 것과 집주인 할머니라고 밖에 생각지 못했던 분이 나의 외할머니였다는 것은 머지않아 알게되었다.
그 후로 사흘동안 할머니는 우리와 일절 말을 섞지 않으셨다.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때에도 탁한 공기에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만 그득할 뿐 사람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면 나는 그 무거운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밥그릇에 밥이 절반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고는 괜시리 심술이 나서 은수를 건드리곤 했다. 혼자만 속편하게 자고있는게 여간 속터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건드림에도 금방 열심히도 울어재끼는 은수에 어머니의 발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은수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풀썩 누워버렸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와 은수를 안아들면서도 나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은수를 울린 것이 나란 걸 몰라서였을까? 아니, 어머니는 분명 알고계셨을 것이다. 다만 어머니는 나를 이해하셨을 뿐이다.
할머니가 입을 여신 것은 사흘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그 날 역시 식탁 주위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으므로 나는 적당한 시간 후 일어나기 위해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있던 중이었다. 절반쯤 남은 밥을 두고 최대한 조용하게 숟가락을 놓았을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가, 만날 그래 밥 남겨버릇허면 못 써.'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목소리에 놀란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거다.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다가 할머니의 시선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슬쩍 곁눈질로 해서 본 엄마의 손은 석고상마냥 뻣뻣이 굳어있었다. 내가 밥을 한숟갈 떠 입에 넣었을 때 할머니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일 혜선이한테 가봐라. 갸도 반년 전쯤 내려왔응께.'
'…….'
'뭔 사정이 있는겐지 통 말을 안하던디, 느한티는 헐지도 모르겄네.'
'…….'
'아가도 데리꼬 가봐. 갸 아들내미도 아가 또래같던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단 낫겄지.'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리셨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끔 숟가락을 들고 내리는 행위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흐르고 밥그릇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었을 즈음 할머니가 나에게 물으셨다. 아가, 이름이 뭐라꼬? 나는 식탁에 거의 처박듯싶이 한 고개를 번뜩 들었다. 우물거리던 밥을 최대한 빨리 삼키고서 나는 대답했다.
'경수… 도경수요.'
'그랴, 경수. 지 애비랑 아주 똑 닮았구마잉. 피는 못 속인다꼬.'
인심좋게 웃어보이시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할머니가 그리 무서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
5.18 이 다가오는 시점에 화려한휴가를 재탕함으로써 쓰게 된 글입니다. 충동적으로 ㅆㅏ지른 글이라 갱장히... 뭐랄까... 병신같음.
이 편은 뭐.. 백현이도 안나오고.. 그냥 프롤로그라고 보심 되겠네여. 사실 백현이 등장하는 부분까지만 쓰고 올릴라고 했는데 뭔가 5월 18일이 지나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그냥 올려버림 헿. 최대한 빨리 가지고 올게여.
암호닉
첸첸벌레님 반달님 산딸기님 또르르님 자두님 가디건님 새우깡님 상츄님 닝겐님 나랑자자님 벚꽃님
항상 사랑해여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