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W. The Sun
화이트 크리스마스 강미르 (미친미르) X 시크릿 가든 한태선 (썬)
내 가슴팍에 기댄 작은 머리통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언제나 똑같은 이 달큰한 향기. 어렴풋한 비누향이 느껴지는 향기는 내 코끝을 가볍게 건드리고는 가볍게 공기 중에 흩어졌다. 지쳐 잠들어버린 한태선은 내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아까보다는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역시, 그 말이 맞았네. 작게 웃은 나는 조금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올려 훤히 드러난 그 흰 어깨를 덮었다. 감기 더 심해질라. 끌어올린 이불을 이리저리 정리한 나는 내 가슴 위에 올려진 한태선의 손을 가볍게 그러쥐고는 그 조그만 머리에 내 턱을 가볍게 기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한태선.”
“….”
“자고 있으니까 말하는 건데.”
“….”
“내 앞에서 죽고 싶단 소리는 하지마라.”
“….”
“진짜 죽이고 싶어지니까.”
니가 괴로워 하는거 못본다 나는. 그럴 바엔 진짜 내가 죽일 거야. 사랑의 감정인지 살인의 욕구인지 모를 묘한 감각이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었고, 고개를 숙여 한태선의 머리에 짧게 입맞춘 나는 숨을 깊게 토해내며 천장을 바라봤다. 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쩔 수없이 해킹을 하는 척 하고는 있지만 더 늦어지면 나도 어쩔 수 없다. 한태선을 이용하는 수밖에. 한태선을 이용해 팀 S의 내부 정보를 빼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미친놈은 맞나보다 태선아….”
처음으로 성을 빼고 불렀는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아, 소름은 좀 돋는다. 걱정을 해주다 이젠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킬러 기질을 어쩔 수 없는 건지, 내 미친 정신머리를 어쩔 수 없는 건지 이젠 구분도 안 간다. 머릿 속이 너무 복잡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끈거리기 까지 해서 빨리 잠에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바로 깊게 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내 가슴을 간질이는 한태선의 얕은 숨이 느껴졌고,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 그 색색 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노곤함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한태선은 내 곁에 없었다. 그 체취는 남아있지만 형체가 잡히지 않아 눈을 감은 채 몇 번 허공에 손을 휘두르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뜨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가 뻐근한게 아무래도 너무 강하게 했었나보다. 내가 이정도인데 한태선은 걸을 수나 있는 걸까. 하긴, 걸을 수 있었으니 밖으로 나갔겠지. 임무일까, 아니면 그냥 기분을 풀러 나간 걸까. 뭐… 한태선의 일이니 알아서 잘 할거다.
꽤 오래 잤나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맑은 하늘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몸을 살짝 기울이고 있었다. 새벽에 잠들었으니 당연한 건가. 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빗어 내리던 나는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
대충 씻고 늦은 밥을 챙겨먹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데이터 베이스를 뒤지고 있는 척 빈둥빈둥 놀다보니 어느 새 해가 져 있었다. 시간 참 빨리도 간다. 한숨을 푹 내쉬며 USB를 챙겨나올 목적으로 방으로 들어간 나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이름 모를 파일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파일을 집어든 나는 파일 위에 새겨져 있는 팀 S의 마크를 보고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펼쳐들었다. 한태선이 가져온 건가?
“어?”
그런데 파일을 열자마자 익숙한 두 놈의 얼굴이 보였다. 이 녀석들은… 그 때 살아남아서 포로로 잡혀간 놈들인데…? 파일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해 침대 위에 걸터 앉은 나는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 파일을 중반 쯤 읽자 더 이상 읽을 필요성이 없어졌다. 내 머릿 속에 떠올랐던 호기심은 이미 막대한 양의 분노로 뒤바뀌어 있었고, 내 손에 들려져 있던 파일은 가차없이 바닥으로 내던져 졌다.
“이 새끼들이 날 속였다 이거지?”
파일의 내용은 내가 내 후배인 줄로만 철썩 같이 믿고 있던 두 놈들이 팀 S에서 우리 회사에 파견한 첩자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진짜 포로 두 명과 가짜 두 명을 잡아놓고는 포로는 죽여 버리고 나머지 두 놈은 연기를 시켰다 이 소리군.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음에 허- 하고 웃은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용당할 이유도 없고 위장하고 있을 이유도 사라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방을 박차고 나왔다. 직접 손에 피를 묻혀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방을 박차고 나온 나는 곧바로 숨겨놓았던 총을 들어 거실과 현관에 있는 CCTV를 날려버리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나 USB등의 주요 장비를 모두 박살내고는 가져온 옷 중에서 검은 코트를 찾아 입었다. 이 일에는 검은 옷이 제격이다. 왜냐고? 피가 묻으면 티가 안 나거든. 비소를 머금은 채 머리를 쓸어 올린 나는 추적 장치가 담겨있는 피어싱을 그냥 귀에서 뜯어버리고는 그것을 바닥에 던지고 여러 번 밟았다. 귓볼에 기분 나쁜 고통이 느껴졌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진 않았다. 니들은 이제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한다.
그렇게 미리 숨겨두었던 총들을 검은 가방 안에 던져 넣고는 그것을 어깨에 메고 나오고 있는데 현관문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놈들이 벌써 도착한 건가. 생각보다 반응 속도가 빠르다. 미간을 구긴 채 짧은 한숨을 뱉은 난 코트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리볼버를 꺼내들고 문으로 들어올 놈들을 쏴 죽이려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온 건 뜻밖의 사람이었다.
“한… 태선?”
한태선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제 복부를 쥔 채 문으로 들어왔다. 잔뜩 구부정한 등과 이리저리 찢겨져 나간 옷. 고통 때문인지 찡그리고 있는 눈꼬리와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희고 매끈했던 이마에는 긴 생채기가 나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제 배를 부여잡고 있는 희고 긴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뚝뚝 떨어지고 있는 그 붉은 선혈들은 한태선의 옷은 물론이고 한태선의 몸이 이리저리 휘청이며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한태선은 고개를 들었다. 옅게 미소를 짓고 있는 입꼬리에서 흐르는 피보다 눈물에 잔뜩 젖어있는 어두운 갈색의 눈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 말을 하고 싶었다. 어디서 다쳐왔느냐고 누가 그런 짓을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이 턱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왜… 움직일 수 없는 걸까. 놀라서 몸이 굳어버리는 것에는 내성이 생긴 지 오래였다. 그럼 이건 대체….
“강… 미르… 윽….”
내 이름을 부른 한태선의 몸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시간을 느리게 돌린 것처럼 느릿하게 널부러지는 그 가녀린 몸뚱아리를 보고 있던 나는 그 몸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나는 큰 소음이 들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바닥에 쓰러진 한태선에게 달려가 몸을 일으켜 내 팔에 뉘었다. 굳게 눈을 감은 한태선의 피부는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다급하게 코에 손을 가져다대니 아직 숨은 있었지만 맥박이 약했다. 이대로라면 분명….
“한태선!”
“….”
“정신 차려! 정신 잃으면 안 된다고!”
“나… 안… 죽었… 어… 멍청아….”
지혈이 안 되고 있는 복부의 상처를 누르자 조금 반응을 보인 한태선은 그 와중에도 입꼬리를 올려 싱긋 웃어보이며 눈을 천천히 떴다. 하지만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속눈썹과 푸르게 변해가는 도톰한 입술은 위험한 상황이란 것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고통에 떨리는 그 몸을 더 단단히 끌어안은 나는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를 억지로 누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내 때보다 상처가 심한가? 아니, 덜한가? 도통 파악이 되질 않았다. 한태선은 아무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잠시 잔기침을 하는 듯 몇 번을 쿨럭이다 붉은 핏덩어리를 조금 토해내고는 어딘가로 공기가 새어나가는 것 같은 색색 거리는 소리를 냈다.
“대체 뭘 하다 이렇게…!”
“내가 죽… 였….”
“뭐?”
“그… 새끼들… 내가 죽였… 다고… 널 속인… 그 놈들….”
그렇게 힘겹게 말을 내뱉은 한태선은 웃어보이려 하다가 끝내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이정도 출혈이면 치명상이다. 총상인지 자상인지 모를 상처는 그 깊이가 꽤 깊어보였고, 빌어먹을 놈의 지혈은 내 맘처럼 되지 않았다. 이를 바드득 간 나는 상처를 더 꾹 누르며 한태선의 등허리를 만져봤다. 다행히도 관통상은 아니었다.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 는 놈들도… 죽였으니까… 안전… 해….”
“알았으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 영화도 안 봤냐? 말하면 더 위험해진다고!”
“어차피 늦었… 어… 빨리… 가….”
“젠장!”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잠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나는 한태선을 급하게 안아 올리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 무작정 길거리로 나갔다. 달고 온 꼬리는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 급박한 와중에 꼬리를 다 잘라냈던가.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한태선은 몸을 조금 더 움츠리며 내 품에 파고들었고, 자세를 다시 고쳐잡은 나는 입고 있던 코트를 끌어당겨 한태선의 다리를 덮었다. 추운… 건가? 순간 몸을 움찔한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다 길가에 주차된 중형 세단을 발견하고는 그 차를 향해 무작정 내달렸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난 곧바로 차의 창문을 발로 걷어차 깨부수고 조수석에 한태선을 앉혔다. 시끄럽게 울리던 차의 경보음 소리는 내가 경보기를 총으로 쏴버리자 멎었다.
차에 올라타자 마자 강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인도와 도로의 높이 차 때문에 오른쪽 바퀴가 공중에 떠 잠시 휘청거리던 차는 그 바퀴가 한 번 크게 텅- 하고 내려 앉자 빠르게 일직선으로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뿐하게 시속 100Km를 넘겼다. 표정은 애써 담담했지만 핸들을 잡은 피범벅이 된 내 두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걱정스러움 때문일까, 아니면 다급함 때문일까. 무슨 이유건 한태선 때문에 이렇게 반응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난 익숙한 길을 찾기 위해 길거리 곳곳에 있는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 퍼뜩 떠오른 목적지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고속도로 위에는 차가 몇 대 없었다. 그마저도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이 차보다 빠르게 달리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운전을 하는 데에 조금 여유를 찾자 난 시선을 돌려 조수석 시트에 기댄 채 점점 작아져만 가는 숨소리를 뱉고 있던 한태선을 바라봤다. 급하게 지혈은 어떻게 하긴 했지만 이미 출혈량이 심각해 약한 쇼크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태선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굳게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아니, 어쩌면 벌써….
“아니야, 아직 아니야.”
난 애써 불안한 기분을 지워내려 빠르게 고개를 젓고는 찬 기운이 느껴지는 희고 보드라운 한태선의 왼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말라붙어가는 피가 손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었지만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태선. 넌 내가 죽일거라고 했잖아. 내가 죽이지 않으면 넌 못죽어. 속으로 그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배경들은 가뿐하게 무시하고 이미 세게 밟고 있던 가속 페달을 더 강하게 밟으며 이 차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엔진에 부담이 간건지 아까부터 기분나쁜 쇳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 때 까지만…!
**
내가 도착한 곳은 같은 프로젝트 W 소속이긴 하지만 킬러가 아닌 의사 일을 하고 있는 최치훈과 유은성이 일한다는 큰 대학 병원이었다. 킬러라는 직업 특성상 절대 찾아선 안 될 곳이었지만 최치훈과 유은성이라면 나와 한태선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띤다고 해도 그것을 최대한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병원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린 나는 조수석 문을 열고 빠르게 한태선을 안아 올린 뒤 응급실로 빠르게 내달렸다. 사실, 한태선을 안아 올린 순간부터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줄이 다 끊어져버려 주인마저 버리고 간 망가진 마리오네뜨 처럼 힘없이 축 늘어져 달그락 거리는 몸에선 찬기운이 흘렀고, 조그맣게 들리던 그 숨소리도 나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더 작아진 건지 들려오지 않았다. 난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했지만 이미 안좋은 예감에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 다리는 응급실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수없이 풀렸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강미르…?”
내가 응급실에 들어서자 마자 날 발견한건 환자를 돌보고 있던 최치훈 이었다. 유은성은 그 옆에서 차트를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최치훈이 높낮이 없는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말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든 유은성의 얼굴에도 의문이 그득하게 떠올랐다. 눈을 크게 뜬 채 입만 떠듬거리고 있는 유은성과는 달리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차분한 표정을 한 최치훈이 내 쪽으로 먼저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살… 려줘.”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 듣겠는데.”
“이 새끼… 살려달라고.”
그제서야 내 품에 안겨 있는 한태선에게 시선을 돌린 최치훈은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는 한태선의 얼굴을 보고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안다. 하지만… 하지만… 의사라면 살릴 수 있잖아. 너 같은 똑똑한 놈이라면 살릴 수 있잖아.
“강미르. 이 사람은 이미 가망이….”
“부탁이다.”
“….”
“내가 너한테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내가 이렇게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너한테 부탁하고 있으니까 제발 살려달라고…. 끝내 속에서 무언가 울컥 터져나오려 하는 것 같았지만 난 애써 그것을 꾹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리고 내 쪽으로 달려온 유은성은 주위에 있던 간호사들에게 카트를 가져오라고 소리치며 아무 말없이 날 보고 있는 최치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한태선의 심장 부근에 목에 걸려 있던 청진기를 가져다 댔다.
“미약하지만 아직 살아있어.”
“유은성. 이미 늦은거 잘 알고 있잖아.”
“시끄러워! 아직 살아 있잖아!”
날 의식한건지 최치훈을 향해 크게 소리를 친 유은성은 내 품에서 한태선을 꺼내가려 손을 뻗었고,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간호사들이 끌고 온 카트 위에 직접 한태선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한태선을 눕히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난 한태선의 팔을 굳게 잡았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두려움 때문이었다. 난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게 한태선을 보는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에 난 그 팔을 놓지 못했고, 그런 나를 흔들며 빨리 놓으라고 말하면 유은성은 끝내 나에게도 크게 소리쳤다.
“이러다 얘 진짜 죽어 강미르!”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자 거짓말 같이 탁- 하고 손에 힘이 풀렸다. 내가 한태선을 놓자마자 유은성과 다른 간호사들은 카트를 밀며 급하게 수술실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내가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자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최치훈이 말을 꺼냈다.
“기대는 하지마라. 많이 늦은 상태야.”
“….”
“….”
“….”
“최선은 다 해볼게. 네 부탁이니까.”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난 헛웃음을 지었고, 잠시 날 물끄러미 쳐다보던 최치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수술실 쪽으로 조금 달려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난 멍하니 제자리에 서있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병원 밖으로 향했다. 내 몸에 그득하게 묻어 있는 한태선의 피와 체취. 저 안에 있으면 분명 그것을 다 씻어내라고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 것이다. 그런 친절은 바라지 않는다. 지금은 나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더 이상 내 것을 빼앗기긴 싫다. 지친 걸음으로 병원 밖까지 걸어 나온 나는 나에게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철저히 무시한 채 병원 화단 옆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아 이를 바드득 갈며 몸을 웅크렸다.
***
태선이는 어찌 될까요... 그리고 미르는 이제 어떤 일을 할까요...!
그리고... 이게 과연 해피 루트일까요 새드 루트일까요..!!
다음 화에 밝혀집니다-
한 쪽의 결말 방향이 드러나게 되면 제가 구상하고 있던 다른 방향의 결말을 살짝 공개해드릴 예정입니다 ㅎㅎ
그것도 다음 화에..!!!
커밍 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