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 *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경수는 눈을 뜨자마자 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아, 속쓰려. 지금 시간이…. 11시…43분? 응? 11시 43분? 경수는 눈을 다시 비벼봤지만 휴대폰 액정에 비치는 시간은 다름 아닌 11시 43분.
"헐, 종인이 아침밥."
종인은 한 끼라도 제 때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각을 할 지언정 절대 아침밥을 빼먹고 나간 적이 없었다. 때문에 경수도 아침만큼은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아침이 되면 그냥 자동적으로 눈이 뜨여졌다. '밥 제때 주기'는 처음 종인과 동거를 시작했을 시절부터 준면이 제게 해줬던 몇 안되는 충고 사항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것도 그거였지만, 경수는 본인이 거실에서 왜 자게 되었는지조차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편의점에 들려 술을 진탕 마신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만 그 뒤는 아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종인이 학교를 나가면서 이 추한-양말을 베개 삼고, 대자로 뻗어 침을 흘리며 자는- 꼴을 봤을텐데…-사실 그보다 더한 꼴도 보았지만 경수는 몰랐다-. 경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답답한 마음에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을 벗어 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온 몸에서 고기 냄새 + 술 냄새 + 꼬린 내 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어제 밤 본인이 저질렀던 일들이 떠오르려 하자 경수는 세차게 머리를 휘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근데 슬프지만 경수야, 그런다고 어제 너가 한 말은 주워담을 수 없어….
깨끗하게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경수는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휴대폰을 꺼내 들어 카카오톡에 접속했다. 대화 기록에 세훈에게 보냈던 카톡들-물론 답장은 없었다-이 눈에 들어왔지만 경수는 눈을 질끈 감고 그 대화 기록을 모조리 삭제해 버렸다. 왠지 없었던 일이 될 것만 같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그리곤 경수는 종인에게 미안한 마음과 따듯함을 가득 담아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종인아, 어제는 형이 늦게 들어와서 아침에 늦게 일어났구나.. 아침밥 못 챙겨줘서 정말 미안해.. 대신 오늘 저녁은 너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준비할 테니까 일찍 들어오렴!
늙은이 티 팍팍 내는 말투같나? 경수는 자신이 쓴 글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져 지워버렸다.
- 종이나! 어제 횽이 늦게 들어와서 이제 일어났어 ㅠㅠ ㅇㅏ침밥 못 챙겨준고 먄.. ㅋㅋㅋㅋㅋㅋㅋ쿡 근데 사실 별루 안 미안하당ㅋ 꼴 좋당ㅋ 평생 굶어라 ㅋ디져라 킥
경수는 혼자 자기가 쓴 메시지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다. 아, 진짜 이렇게 보내면 겁나 코미디겠다. 이 메시지를 받으면 종인인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쩌면 날 죽일지도 몰라. 큭큭큭. 경수는 미친 사람마냥 혼자 배를 잡고 웃어댔다. 푸흐흑, 아. 너무 웃기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대던 경수가 ㄴ다시 메시지를 수정하기 위해 백스페이스를 누르려고 손가락을 올리는데…. 응?
1 오후 12:51 종이나! 어제 횽이 늦게 들어와서 이제 일어났어 ㅠㅠㅇㅏ침밥 못 챙겨준고 먄..
ㅋㅋㅋㅋㅋ쿡 근데 사실 별루 안 미안하당ㅋ 꼴 좋당ㅋ 평생 굶어라 ㅋ디져라 킥
그래….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자고 이 따위 장난을 친걸까….
죽을까.
* * *
"뭐야, 김종인! 너 어제 맞짱 떴냐? 손가락 왜그래?"
"……."
"이겼어? 졌어? 누군데 그래?"
"씨발, 좀 닥쳐. 제발."
종인이 검지 손가락에 붕대를 돌돌 감고 교실 문으로 들어서자 그새 그걸 또 발견한 찬열이 종인의 옆에 바짝 붙어서 따박따박 물어왔다. 종인은 그런 찬열이 귀찮다는 듯 가볍게 밀어내며 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개새끼. 넌 나보다 오ㅅ…."
"……."
"하. 아니다, 됐다. 됐어,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
남자에 미쳐서 친구는 귀찮아 죽겠나보네. 찬열이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대며 제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에 다행히 종인은 못 들은 듯 했다.
종인은 아침부터 자꾸 촐싹대는 찬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아침도 못 먹고 나와 아주 예민한데다가 보건실에는 아무도 없길래 혼자 한 손으로 어설프게 붕대를 감는다고 진을 뺐다. 하필이면 오른 손을 깨물어서 공부도 못 하고-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가 개새낀가. 왜 손가락을 물고 지랄이야, 지랄은.
하필이면 1교시부터 윤리와 사상이다. 늙은 할아버지 선생이 교실에 들어섬과 동시에 종인은 교과서를 베개삼아 책상에 누웠다. 어제 밤 화를 삭이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탓에 잠이 쏟아져 내려왔다.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제발 제 앞에 샌드백 하나만 가져다 주세요…. 누구 한 명 패야 성이 좀 풀릴 거 같거든요.
…….
- 으아아아악! 제발, 안 돼! 제발 그것만은!
- 케케케케케…. 고것 참 맛있겠구나? 요놈! 그 동안 날 얕봤겠다?
- 제발! 안 돼요…!
"허."
잠에서 깨어난 종인은 제 눈앞에 보이는 찌질이 안경잡이 짝궁의 얼굴이 보이자 도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악몽이었다, 악몽. 지독히도 끔찍한 악몽…. 제 꿈에 도경수가 나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전에는 거인으로 변해서 자길 괴롭히더니 이번엔 악어였다.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비는데도 제 손모가지를 물은 채 놓지 않았다. 사악하게 웃으며 결국 손목을 뜯어 먹어버렸다. 시발, 그래. 개새끼가 아니라 악어새끼였어.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대체 몇 시간 동안 잔건지 칠판 앞에 늙은 윤리 선생은 사라지고 젊은 영어 선생이 열심히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야, 안경."
"어, 어?"
"몇 교시냐."
"사, 사교시…."
짝이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대답했다. 종인은 그런 놈을 한심스럽다는 듯 위아래로 한 번 쭉 훑은 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몰래 꺼냈다. 책상 안에 휴대폰을 살짝 넣고 카카오톡에 들어갔다.
뭐지? 경수에게서 카톡이 18개나 도착해 있었다. 평소에 경수와는 서로 쿠키런 하트만 주고받곤 했었다. 아마 어제 제 손가락을 깨문 죄책감 + 아침밥을 못해준 죄책감에 못 이겨 폭풍카톡을 한거겠지? 방금 꿈에서는 제 손모가지를 쳐 먹은 악어경수였지만 하해와 같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줄 의향이 생겼다. 그런 마음으로 대화창을 열고 들어갔는데….
종인은 방금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 뭐야. 그러나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이건? …. 종인은 지금이 수업시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80여개의 눈동자가 모두 종인을 향했다.
"기, 김종인 학생?"
종인도 막상 책상을 내리치고 나니 주먹도 아려왔고 쪽팔려지기 시작했다. 씨발, 찌질이가 쎈척하는 거 같잖아.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친건데…. 그러자 종인은 헤실헤실 웃으며 여선생에게 대답했다.
"쌤. 죽고 싶냐가 영어로 뭐, 뭘까요?"
* * *
그 시각 경수는 두려움에 덜덜 떨다가 결국은 휴대폰 전원을 꺼 놓은 뒤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래, 이럴 때 내 마음의 안식처는 단 하나 뿐이지..★.. 내 사랑 네 사랑 지식인간! 경수는 자신의 질문글에 답변글이 두 개나 달린 것을 보고 빠르게 제목을 클릭했다.
(내공有) 어색한 친구과 화해하기..
비공개 조회수 141
안녕하세요...제가요.. 친구랑 이유없이.. 어색해요..
원래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어색한 사이도 아니었는데..갑자기 왜 이렇게 된건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ㅠㅠ..
너무 어색한데.. 또 그 친구랑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거든요?.. 그래서 불편해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제발 좀 도와주세여... 내공 겁니다
내공냠냠 꺼져주세요 세륜.
re : (내공有) 어색한 친구과 화해하기..
ggamjong
제가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요..
그 문제...흠.. 참 어렵고도 쉽죠//^^
그냥 그 친구분과 진지한 대화를 할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네요.
어떻해 하냐면.. 함께 놀러가보세요..자연스럽개 해결이 됄겁니다
re : (내공有) 어색한 친구과 화해하기..
tatata5
내 생각에는요.. 그거요.. 위에 사라미 하고 같은 생각이 에요..
온통 맞춤법이 틀린 사람의 답변과 대체 왜 답변했는지를 모를, 내공냠냠 수준의 양심 없는 답변만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한 경수는 실망한 나머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믿어볼까. 오늘따라 머리가 아프네 그래.
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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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로션입니다....하.. 오늘 정말 별 내용 없지만.. 이거 쓴다고 대체 몇 시간째.. 컴퓨터를 붙잡고 있었는지ㅠㅠ.. 땀이 뻘뻘 나네요..
아참.. 이거 카디 맞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 맞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흑 저도 얘네 얼른 행쇼시키고 싶은데....... 못된 로션이는 자꾸 싸우게 하네요.................................데둉.. 진짜 조금만.. 조금만 더! 봐주세요.. 저도 이렇게 질질 끄는거 싫지만............... 얘넨 워낙 사이가 별로였던 애들인지라 지금 이 정도도 생각보단 대단한 진도...ㄷㄷ..
아참. 그리고.. 이 작품 말고 다른 작품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에요.. 연중 하기는 싫은데.. 그치만 이거 연재하기도 벅찬데 그건 어떻게 감당할 지도 모르겠고.. 최대한 좋은 방법으로 모색해볼게요ㅠ_________ㅠ 조금만 기다려 주쎄여 댓글로 힘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해여!!!!!!!
아참! 암호닉은 언제나 받습니다! 나중에 한번에 싹 정리할게요.. 그 분들을 위한 뭔가가 있을 거에요.. 분명..하트하트s2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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