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고? 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어. 나랑 정확히 500일 후에 결혼하는 거. 설명서에도 나와있었을 텐데 안 읽었나 봐? 끝이 있는 만남은 그 새끼한테 쓰레기짓 하는 거 아니야? 누가 끝을 바라보고 연애 해. 계약 연애도 아니고."
"ㄱ,결혼이라니!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내가 너랑 왜 결혼을 해!!!!!!! 구라도 작작 치라고!!!!!" 결혼이라니 그것도 오늘 처음보는 김석진이랑 결혼이라니! 김석진의 발언은 내 멘탈을 깨뜨리다 못해 갈아버리는 그야말로 폭탄발언이었다. 나는 김석진의 말이 도저히 안 믿겨 곧장 땅바닥에 초라히게 떨어져 있는 사용설명서를 빠른 눈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이 속에는 결혼에 대한 어떠한 말도 담아있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후 죽여버리겠다는 얼굴로 김석진을 째려보며 고함을 지르자 김석진은 한 치의 표정 변화 없이 무덤덤한 말투로 내 말에 답변했다.
"병신아, 네 종이에는 앞면밖에 없냐 뒷면은 폼이고?"
"아...!" ' 주의! 한 번 남자친구를 만들었을 경우, 그 분과 평생 연을 함께 하셔야 합니다. 또한 저희는 사전조사에 의해 자취를 하시는 회원님에게만 이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때문에 회원님께 그 분과의 동거와 500일 안에 백년가약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지키시지 않을 시 생각치 못한 엄청난 불이익이 회원님에게 발생할 수 있으니, 이 점 유의하시고 약물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남친 만들기 프로젝트는 '책임감'을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신중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회원님.' '남친 키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는 도중 궁금증이 발생하여 문의를 하고 싶을 경우 아래에 써져있는 이메일로 요청해 주세요. 저희 직원이 직접 방문해 회원님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회원님을 위해 남자친구가 생성되신 다음 날 저희 직원의 방문상담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재빨리 사용설명서를 뒤집어 확인해 보자, 제 정신이라면 죽어도 확인 못 할 정도의 작고 연한 글씨들이 눈에 띄였다. 말들은 하나같이 가관이었다.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하나하나 읊어보려 했으나, 내용들은 자비없이 분노를 야기시켰다. 김석진은 라면을 다 먹었는지 밥통에서 찬 밥을 꺼내 와 말아먹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그런 김석진의 행동은 내 화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상당하게 말이다.
"...ㄴ,넌 이상황에 밥이 ㄴ,넘어 가냐!!!!"
"안 넘어갈 건 뭐야, 현실 부정하지 말고 받아드려. 그럼 나처럼 마음이 편해." 진짜, 저 개새끼는 너무나도 천하태평이다. 솔직히 이게 말이 되는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생판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이라니 심지어는 내가 내 손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이건 재앙이었다. 사용설명서에 써져 있는 말에 의하면 나는 저 인간이랑 결혼을 해야하며 하지 않게 될 경우 우리 둘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건데, 저 돼지 새끼는 아무 생각이 없는지 밥만 아주 잘 말아 먹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인생을 말아 먹게 생겼는데...
"넌 나랑 결혼하고 싶어? 생판 모르는 사람이잖아. 난 그러고 싶지 않다고! 나 이제 스무살이야, 네가 어떤 놈일 줄 알고 너랑 결혼을 해. 남준이 오빠는 그리고 내 미래는? 네가 뭔데 갑자기 내 인생에 꼽사리 껴서 내 인생을 망치려 드냐고!!!" 그 순간 김석진의 표정은 또 다시 싸늘해졌다. 아무래도 내 말에 상당히 화가 난 거 같았다. 김석진은 한껏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겉옷을 챙겨 입더니 나갈 준비를 하였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김탄소 너 말 가려서 해라. 네 인생? 네 인생만 있는 거 아니라고. 그리 싫으면 불이익 감수하고 네가 오빠라고 부르는 새끼 만나. 저만 아는 이기적인 년 나도 존나게 별로라서. 너랑 말 더하면 이런 개같은 상황만 반복될 거 같으니까 나간다. 내일 상담원 방문한다니까 취소한다고 지랄을 하든 머리채를 잡든 네 마음대로 해라." "뭐? 이기적인 년 말 다했ㅇ" 김석진은 그렇게 세차게 묻을 닫고 내 집에서 나갔다. 김석진은 냉정하다. 그 순간 내가 내린 판단이었다. 김석진의 말들은 모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내 입장이 먼저였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행동을 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 때는 김석진이 너무 매정했고 한없이 냉정해 보였다. 서러웠다, 이제 간신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딱 합격했는데 매정한 하늘은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었다. 눈물이 났다 진심으로, 그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집에 가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무리 제 부모라도 이 말을 누가 믿어줄까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등골 빠지게 고생하는 부모님께 실망감과 충격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외로웠다. 서러운 마음에 나는 한참을 울다가 지쳐 쇼파에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고 나는 밖에서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내가 누워있던 곳은 어제 잠이 들었던 쇼파와 달리 침대였고 몸 위에는 이불이 덮어있었다. 나는 내가 몽유병이 있었었나라는 생각을 뒤로한 채 시끄럽게 울리는 인터폰으로 향했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아! 김탄소 님 댁이죠? 안녕하세요! 프로젝트 상담원 정호석입니다!" "ㅇ, 아 네... 들어오세요" 인터폰으로 누구인지 확인해 보니 어제 김석진이 말한 그 상담원이었다. 어제 펑펑 울다 자서 그런지 내 꼴은 거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끔찍했다. 내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상담원은 거지같은 내 꼴에 흠칫 놀랐는지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ㄸ,뜨거운 밤 보내셨나 봐요 하하! 지금 김석진 씨는 집에 안 계시네요? 회사 가셨나보네"
상담원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건낸 말은 충격적이었다. 김석진이 회사라니 그리고 김석진이랑 내가 뜨거운 밤을 보냈다니! 물론 다른 의미로 뜨겁게 보냈긴 하였다만. 나는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호석을 제 집 식탁으로 안내했다. 식탁에는 어제 김석진이 먹고 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것들을 치운 뒤 차트를 꺼내고 있는 호석의 앞에 앉아 일단 김석진의 회사부터 물었다. "ㄱ,그런 거 아니에요! 근데 ㅎ,회사요?"
"어? 석진 씨가 말 안 했어요? 필수사항인데... 설마 탄소 씨 석진 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세요?"
"하하, 그게... 네..." 어제 겁나 싸워서요, 김석진은 가출한 상태입니다 호석 씨... 당황스럽죠? 저도 정말 당황했습니다. 근데 말이에요, 난 이 프로젝트가 더 당황스러워요 썅... 김석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내 말에 호석은 놀랐는지 제 입을 손으로 가리며 나에게 진짜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재차 물어봤다. "그게, 어제 김석진이랑 대판 싸워서 김석진이 가출을 했네요 하하..."
"ㄱ,가출이요? 그러면 안 되는데..." 제 말에 적잖이 놀랐는지 호석은 입도 다물지 않은 채 들고 왔던 가방 안에서 차트를 꺼내고는 급하게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나는 그런 호석에게 어제부터 묻고 싶었던 것들을 이리저리 물었다. "ㅈ,저기요. 혹시 이거 무를 수는 없나요...? 제가 나이도 어리고요 일단, 술을 먹은 상태로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피 했잖아요..." "죄송하지만, 고객님 어쩔 수가 없어요. 아시다시피 저희 프로젝트는 책임감을 가장 중요시 해서요. 번복이 불가능해요. 탄소 씨 상황은 안타깝지만 받아드리셔야 해요." "ㅈ,제가 이 사람 말고 다른 좋아하는 분 생겼다면요? 저 이 사람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그리고 생길 마음도 없고요..." "그런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탄소 씨가 마음을 빨리 정리하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애초에 그런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상형 종이도 같이 나눠드리는 거였고요. 만약 탄소 씨가 석진 씨와 백년 가약을 맺지 않을 경우, 석진 씨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죠. 탄소 씨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인해요" "ㅅ,사라지다요? 갑자기 죽는다는 거예요?" "아뇨, 석진 씨도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겁니다." "네? 그건 엄연한 살인이잖아요!" "살인이라, 그렇다 볼 수 있겠네요. 근데 이미 석진 씨랑 계약되어 있는 것이 있어서요. 이 이상은 저희도 말해 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까, 탄소 씨가 말하는 것처럼 살인을 애초에 막으려면 탄소 씨의 마음을 석진 씨에게 줘야겠죠? 다른 분이 아니라." "...너무 잔인하잖아요..." 생각치도 못한 엄청난 불이익은 바로 그것이었다. 김석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그것도 나로 인해 이 세상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 이건 단지 김석진에게만 피해가 가는 게 아니었다. 분명 나에게도 죄책감이 올 것이고 그 것으로 인해 나는 다른 누군가와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호석의 말들은 족쇄였다. 내가 다른 짓을 못 하게 미연에 방지하는 커다란 족쇄 같았다.
"잔인한 건 잘못된 선택을 한 탄소 씨죠. 책임을 지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서 빨리 탄소 씨가 마음에 두고있는 그 분 정리하세요. 이건 석진 씨 그리고 탄소 씨를 위한 것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정리를 하지 못할 거 같다 싶으면 석진 씨와 합의를 보세요. 그건 저희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불이익에 대해서 저희는 얘기하지 않고 있어요. 죽음을 각오하고 나누는 사랑이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 앞에 보이는 탄소 씨는 아직 철없는 아이와 같아요. 자기 감정밖에 하지 못해요. 이런 분에게 애초에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저희 쪽의 실수이기도 하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이익을 애초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신중한 선택을 하시라는 겁니다. 석진 씨는 탄소 씨가 불이익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대 그 내용을 탄소 씨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탄소 씨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요. 그러니, 제가 알려드린 불이익의 내용에 대해서는 김석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두 분을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호석의 말들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호석의 말처럼 나는 아직 생각이 많이 어린 아이였다. 이제 성인이라고 해도 난 아직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난 호석의 말을 들으며 어제 석진이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남준을 만나라는 그 말 말이다.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 저말을 내뱉은 석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 말이 얼마나 가혹했으면 스스로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멍하니 호석을 바라보자 호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차트를 내밀었다.
"김석진 씨의 프로필입니다. 잘 읽어보세요. 아까 누락된 말이 있었는데, 석진 씨도 탄소 씨처럼 부모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탄소 씨가 만들은 것이 아니라 부른 거죠. 그러니, 석진 씨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마세요. 프로필을 보시면 알다시피 석진 씨 프로필 어디에서도 꿀리는 프로필 아닙니다. 그저 탄소 씨는 석진 씨와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뜻입니다. 아 마지막으로 저는 매달에 한 번씩 방문하며, 약속된 500일이 있는 달에는 매주 방문할 것이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혹시 궁금한 사항 더 있으십니까?" "...혹시 그 기한 늘리지는 못하나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500일은 너무 가혹해요... 제 나이가 감당하기에는..." 나는 호석이 건내준 프로필을 바로 읽지 않은 채 호석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이에 호석은 진지하게 물어보는 내 말에 짧게 수긍을 하더니, 자신이 들고 왔던 가방 안에서 테블릿 pc를 꺼낸 다음 무언가를 써 내려가더니 이내 결심한듯 방금 전 나의 말에 답변했다.
"맞는 말이네요, 저희 쪽에서도 실수한 부분이기도 있기 때문에 그 기한 2년으로 늘려드리겠습니다. 500일에서 2년으로 늘려드린 경우는 또 처음인데. 저희 쪽에서도 잘못한 것이 있으니 보상해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탄소 씨 부디 후회없는 선택 바랍니다. 프로필 잘 확인해 보시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달에 봬요." "감사합니다 진짜... 기한 늘려주셔서. 말하신 대로 신중하게 고민해 볼게요" 그렇게 호석과의 만남을 끝내고 나는 호석이 주고간 석진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나는 석진의 프로필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정도로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no.42 김석진 나이 : 만 24세 직업 : &&기업 회사원 가족 관계 : 외동 (부모X) . . . "뭐야... 부모님은 있는데 돌아가신 건가... 나이도 속였네 어젠 4살차이 난다며 만으로 4살차이지 5살 차이나네. 벌써 회사다니네 군대도 안 갔나..." 김석진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김석진의 프로필을 정독하고 있었을 때쯤 딩동 소리와 함께 문자가 날아왔고 그 순간 어제 중간에 김석진의 강제로 인해 끊어진 남준과의 통화가 생각나 핸드폰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핸드폰 화면에는 남준으로 부터 온 문자가 5통이나 있었다. 내용들은 하나같이 무슨 일 있냐는 문자였고 나는 호석의 내게 해 줬던 말도 같이 겹쳐 들리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석진이었다. '어젠 미안했다. 이따가 회사 끝나고 전화할 테니까 나와' "...나 얘 번호 저장 안 했는데... 설마 어제 얘가 나 침대로 옮겨준 거야? 언제 들어와서 한 거야..." 한창 김석진의 문자와 어제 나의 취침장소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쯤 나의 휴대 전화는 또다른 누구가의 전화로 인해 또 한 번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대망의 6화가 끝이 났습니다. 새벽에 써서 그런지 전개가 산으로 간다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네요... 일단 오늘 연재가 좀 늦었다는 것에 먼저 사과드립니다. 낮잠을 실컷 잤더니 이렇게 됐네요. 오늘 글이 진지하면서도 분위기가 묘해서 어울리는 비쥐엠을 찾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들으시면서 분명 이상하다 느꼈을 수도 있을 거예요. 발라드로 깔기엔 너무 안 어울리는 거 같도 또 밝은 곡을 넣자니 더 이상한 거 같고... 고생 좀 했습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신청하신 암호닉은 모두 올려드렸습니다. 이 근본없는 글에 많은 사랑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댓글은 사랑이에요. 과연, 이 소설의 끝은 어딜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남친을 키우는 너탄들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