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禽獸)아파트_901호
(짐승 금, 짐승 수)
#04
“다음 영화는... 라이프 오브 파이다.”
지금 나는 티비로 ‘동물’이 나오는 영화 정주행 중이다. 친구랑 함께 말이다.
음,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네?
그러니까 같이 사는 내 룸메이트 고양이 친구랑 함께.
음음. 이렇게 말해야 정확하지.
“진짜 너랑 닮지 않았니? 아무리 봐도 닮았단 말이야?
너 혹시 종족을 초월해서 탄생한 고양이 아니니? 엄마, 아빠 둘 중에 호랑이 있는 건 아니고?”
물론 저 호랑이에 비하면 작긴 하지만 2개월 동안 더 클 거라고 하셨으니 아마 저 정도로 클 것 같기도 하고~?
“야, 친구. 너 솔직히 말해봐. 너 호랑이지? 응?”
그러면서 나는 티비에 나오는 호랑이와 내... 호, 아니 고양이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 하얀 수염. 똑같고~ 고양이는 대부분 귀가 세모꼴이지 않나? 근데 파이처럼 둥근 귀를 하고 있고.
“흐음. 친구. 이리 와 보시게나. 부끄러워 말고 가까이 와 보시게나.”
왜 내 눈엔 일부러 고개를 훽 돌리고 있는 것 같이 보일까나...? 으응? 혹시 무슨 장난이라도 쳐 둔 거냐!
아! 혹시 또 내가 아끼는 자몽 바디샴푸로 장난쳤니!
“여봐라. 죄인 친구는 이리 와보시게나. 킁킁. 네 몸 전체에서 내 자몽 바디샴푸 냄새가 코를 찌르는 구나.”
나는 이제 녀석을 만지는 건 겁이 나지 않는다.
주욱 손을 뻗어 목덜미의 두툼한 가죽을 꾹 잡아당긴 다음 (당긴 건 난데 당겨진 것도 나였다.)
녀석의 목덜미를 킁킁거렸다. 이 녀석! 발버둥 쳐도 소용 없다!
“어허. 왜 발버둥을 치지?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게 분명하다. 친구여. 내가 증거를 채취하려 다녀올 테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시게.”
그리고 화장실로 도도도 가서 선반을 살펴보니, 역시- 뚜껑이 열려있다.
난 이 자몽향 바디샴푸를 굉장히 아끼기 때문에, 절대로 뚜껑을 열어놓지 않지.
훗- 딱 걸렸어.
“헤이 버디. 너의 죄를 알렸다!”
나는 오른손으로 녀석의 목덜미를 쿡- 쥔 다음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으으- 무거워.
왠지 모르게 휘청이는 게 이 녀석이 아니라 내 몸둥아리인 것 같았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혹시 너 자몽 먹고 싶냐? 엉?“
별 대답은 없었지만 뭔가 긍정인 것 같이 느껴진다.
역시... 먹는 거 하난 끝내주게 밝힌다니까. 저번에 밥 안줬다고 화장실 물을 먹질 않나.
“기다려 보시게. 나한테 자몽이 있으... 윽.”
그렇게 일어나려다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야 말았다.
어우어우억!
그 아픔에 빽- 소리를 지르며 손을 덜덜 떨자 녀석이 놀란 듯 일어나서 서성거린다.
“괜찮...쓰읍....! 괜찮어... 어우.. 기다려봐. 자몽 줄게.”
쓰면서 신 자몽을 먹이면 재밌을 것 같다.
그 생각에 아픈 것도 잊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자몽을 꺼내 물로 씻어 도마에 내려놓자 이번엔 칼질이 문제다.
“어허. 죄인은 가 있으시오.”
나는 무릎으로 살짝 녀석의 몸을 밀며 칼을 찾는데 어이쿠 녀석을 피하려다가 스텝이 엉키며 골반뼈를 싱크대에 박아버렸다.
아아.. 아파.
“얌마! 가 있으라구! 아, 진짜 아파 죽겠네! 내 골반뼈가 나가면 나 정말 병원 가야 한다구? 끄아!”
“그르릉..”
“... 치, 친구야. 진정해. 워워.”
어, 어이구. 나 진짜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처럼 덮쳐지는 줄 알았네! 식겁했다 야.
내가 골반을 부딪히는 소리가 텅 빈 싱크대를 울려 크게 들리긴 했다.
그래서 녀석이 내가 크게 다친 줄 알았나보다. 골반뼈가 있는 부분을 혀로 핥는다.
음... 까칠까칠하긴 한데 기분은 좋구만.
“... 고맙구먼.”
친구.
왜 갑자기 친구라는 말이 낯간지러울까.
뭔가 낯간지럽긴 했지만 요 녀석을 밀어내고 싶지가 않아서
거대 고양이한테 벽치기를, 아니 싱크대치기를 당한 자세로 녀석이 핥는 걸 가만히 두었다.
스윽스윽-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역시 좋은 한 친구, 열 친구 안 부럽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구나. 이 ‘친구’는 적어도 돈 때문에 나를 더 따르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이래서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걸까. 진실한 친구하나 사귀기 어려운 세상이라서.
“이제 됬어. 다 나았다... 짠!”
나는 상자에서 등장하는 깜짝 선물처럼 두 팔을 위로 벌린 채 웃으며 짠-을 해보였고 친구는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그런 나를 보더니 거실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어슬렁... 어슬렁...”
진짜 호랑이 같은데... 에이 설마. 만약에 호랑이었으면 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처럼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느껴야 했겠지~
근데 난 그런 적이 없잖아? 오히려 다치면 걱정까지 해주는 똑똑한 고양이인데.
“으. 그러고 보니 일시 정지 안했네.”
나는 거실로 가서 리모컨을 들어 일시정지를 눌렀는데, 녀석이 으르렁거린다. 마치 티비를 보다가 누가 전원을 꺼 버려서 화난 사람처럼. 음. 음. 으음...
“다, 다시 켜줄게.”
다시 켜주니 또 티비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정말 너 ‘시청’을 하고 있는 거니? 정말 너 기네스에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고양이인 거니?
‘세상에서 가장 큰 고양이’나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고양이’ 이런 타이틀로 말이야.
“기네스 기네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자몽을 자르다 말고) 기네스에 올라갔다던 ‘가장 큰 고양이’를 찾아보았다. 어머나...
“친구보다 자... 작은데..?”
한 눈에 봐도 작은데요? 우리 친구는 제가 못 들 정도로 거대한 댑쇼? 정말 기네스에 막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헉. 진짜루....?
“아... 맞다. 그러면 알려지겠구나.”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보고 듣게 되겠지.
아직 가슴이 찡한 걸 보면 용서하기엔 아직인 것 같았다.
“아 맞다 자몽!”
왜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못하고 이렇게 산만하니!
나는 노트북 화면을 닫고 부엌으로 갔는데 참 이상하게도 자몽이 잘려 있었다.
“내가 자르고 갔었나...?”
그 자른 솜씨가 서툴러서 아마 손이 다친 게 아니라면 욕 한바지 먹었을 솜씨였다.
맞네- 내가 자른 거.
나는 접시에 담아 들고 거실로 향했다. 녀석은 내가 오자 먹는 냄새가 나서였는지 한번 쓱 보더니 다시 시선을 <라이프 오브 파이>에 고정시킨다.
흥. 내가 왔는데 그런 미지근한 반응이라 그거지. 낄낄.
그러나 너는 아직 애기이기에 이 수법에 넌 무너지고 말 것이다.
“휘이이이잉- 자몽 요트 들어갑니다아~”
바로 청각과 시각을 둘다 자극하고, 그리고 후각까지 자극하는 <밥 안 먹는 아이에게 밥 먹이는 방법>.
내가 휘잉- 하고 소리를 내자 녀석이 날 바라본다.
그때부터 난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휘잉- 휘잉- 자몽 배가 지나갑니다~”
원래 이렇게 하면 자몽과 사람을 번갈아 봐야 하는데, 왜 친구는 나만 보지...? 그것도 너무나 빤히.
썩은 드립을 너무 많이 쳐서 이제 이것도 안 먹히는 건가...?
“으어으어~! 암초와 충돌합니다. 이, 입 벌리세요~”
그래도 끝까지 꿋꿋하게 해보자. 분명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션씨는 성공했으니까...!
“얌므. 입 응 블를르.”
얌마. 입 안 벌릴래?
누구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쎌까? 응? 이를 꾹 닫고 있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이상한 짓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이젠 자몽을 꼭 먹여보고 싶다.
자몽 향기를 좋아하는 거랑, 자몽 먹는 걸 좋아하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혹시라도 자몽을 먹어보면 맛이 없다는 걸 알고 내 바디샴푸로 다신 장난을 안 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죄인은 입을 벌려라!”
결국 나는 억지로 잇사이로 자몽을 (거의 즙이 된 자몽을) 넣어주었다. 그 쓴 맛이 혀에 느껴지는지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덕분에 내 턱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윽-”
역시 형을 집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려는데 녀석이 이번엔 내 턱을 핥짝거린다.
“아노... 조또 마떼. 저 그 정도로 아프지 않거든요.”
혀를 씹었으면 큰일이었겠지만 아주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아직 골반에 네가 적셔놓은 침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턱이니?
“조또! 토모다치상!!! 조또 마떼!!!”
결국 내가 손으로 휘휘 녀석을 떼어내고 나서야 핥아대는 게 멎었다.
허우적거리다 시선이 닿은 티비에선 호랑이가 주인공 남자앨 덮치려고 자세를 낮추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뭔가 이 자세가 티비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일까.
“.... 솔직히 말해보렴.”
게다가 가까이서 내려다보니 역시 이빨도 굉장히 날카롭고... 그러니까 정말로 호랑이 아닐까 싶지만.
“너 호랑이지... 그치? 어? 응?”
내 턱을 부드럽게 핥던 녀석은 절대 티비 속 호랑이완 다르다.
“아이구, 요즘 따라 너랑 놀다가 내가 많이 다친다네.”
나는 친구를 쓱쓱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낫고 오라고 준 휴가인데 어째 더 다치고 있는 것 같은 건 착각. 은 개뿔.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실!
“힘 조절 좀 하시구려, 친구.”
나는 넘어지면서 박은 뒤통수를 슥슥 문지르며 이젠 다시 자몽 같은 건 먹이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녀석도 내 휴전을 받아들인 건지 다시 편하게 엎드린 자세로 <라이프오브파이>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늠름하고 호랑이다운 옆모습을 보며 까만 눈에 비치는 브라운관을 봤다.
그리고 상상했다.
만약 정말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라면, 저 티비 속에 소년처럼 나도 이 녀석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친구야, 너 나 잡아먹을 거니?”
나는 모기 소리만 하게 물었고 오랜만에 녀석은 웃는 듯한 울음소리로 답했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한 품에 안기던 고집쟁이 어린애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엔 얇고 높은 울음소리가, 이젠 낮고, 어딘가 울림까지 느껴지는 소리가 되어 있었다.
“너가 나 잡아먹으면 나 상처받을 것 같은데...”
나는 이미 녀석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녀석의 호칭처럼 ‘친구’ 말이다.
다른 이름은 별로 지어주고 싶지 않았었다. 이게 가장 이 녀석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난 들어가서 잘래.”
나는 텔레비전 타이머를 맞춰두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약을 한알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영화에 대해 생각하다가 친구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렇게 점점 약 기운이 돌며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라이프오브파이>에서 나온 것처럼 망망대해에 작은 배 하나, 그 안에 나와 친구가 타고 있었다.
친구는 마치 사냥을 하려는 것처럼 나에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낮은 자세를 취했고, 나는 돛대를 잡고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서 뒷걸음질쳤고, 결국엔 배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한 발짝만 뒷걸음질 치면 나는 바다에 빠지고야 만다.
그러나 친구는, 아니, 내 눈 앞의 야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나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 낯선 친구의 모습이, 깨어나서까지 잊혀지지 않아서 나는 또 울고 말았다.
그 영화를 보는 게 아니었다.
*
찝찝한 꿈을 꾼 날, 나는 일부러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쇼핑도 하고 카페에도 갔다가 이모, 이모부한테 전화도 드렸다.
집에서 해도 될 일을 일부러 밖에서 전부 해결 했달까.
“왜 이래 나...”
아침에 일어나 사료를 우득우득 씹어 먹는 소리에 괜히 소름이 돋았고, 내 인기척을 느낀 녀석이 먹다 말고 나를 치켜 올려보자 그것에 또 괜히 겁이 났다.
“그럴 리 없는데... 휴.”
만약에 호랑이였으면 벌써 잡아 먹혔다구. 조금 크고 날카롭고 힘이 쎈, 그런 고양이일 뿐이야.
정말 그럴 뿐인데... 날카로운 눈매와 발톱은 좀. 아니 조금 많이 무섭긴 하다.
만약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게 고양이일까요, 호랑이일까요? 하고 물으면 열이면 열, 다 호랑이라고 할 것만 같다.
“저 왔어요.”
“어? 왜 밖에서 돌아다니고 그래요. 손은 어때요?”
그러다가 또 바보처럼 사료만 먹는 단조로운 친구의 식단이 마음에 걸려 이 곳에 오게 되었다.
“흐흐. 괜찮죠 당연히~ 아참, 오늘은 손님으로 온 거에요~ 우리 고양이한테 사료만 먹이는 게 좀 미안해서... 집에 간식도 있긴 한데... 뭔가 덩치에 안 맞는 달까...?”
“음. 그러면 여기 말고 길 건너서 마트에 가는 게 맞지 싶은데~”
김 간호사님이 길 건너 이마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내가 왠 마트냐는 표정을 짓자 방긋 웃으며 딱 두 자를 말한다.
“생 닭.”
“... 네?”
“좀 살벌하죠~”
네, 좀 많이 살벌한데요? 저는 기껏 해봐야 대형묘 전용 간식 같은 걸 사러 왔을 뿐인데요...?
다 안다는 듯이 살벌하냐고 묻던 김 간호사님은 왼손에 끼어진 반지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며 그저 다시 한번 웃어 보인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냐는 듯.
“잘 먹을까요?”
“그럼요. 고양이가 닭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원래 고양이 닭 먹어요. 그러니까 줘도 돼요.”
네에. 그렇게 애매하게 대답한 나는 사실 속으로 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안 잡아먹히려면 생닭을 줘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너무 겁내지 마요. 어차피 사료도 다 고기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더 신선한 고기를 준다고 생각하면... 좀 편하려나...”
“시, 신선한 고기... 으윽”
왜 나는 이런 생각만 하면 피가 막 튀어 오르고 살점이 뜯어져 있는 닭이 생각나는 걸까.
으으. 아마 이것도 트라우마 중 하나일까.
“일단... 고마워요. 내일 뵈요.”
신선한 공기가 너무나 마시고 싶었다. 먹은 걸 게워낼 것 같은 기분에 인사를 하고 급하게 빠져나왔다.
이 저질 비위. 치킨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생닭이나 치킨이나 같은 거라고는 왜 상상할 수 없는 걸까.
좋아할 거라는 김간호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뭐, 먹으라고 하고 방에 들어가 있으면 되지 뭐.
손질 되어서 토막난 생닭 한 마리를 사는데 몸이 부르르 떨렸다.
으으. 아무래도 당분간 치킨도 못 먹을 것 같다.
“친구. 나 왔어...”
나갈 땐 아침이었는데 이미 8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불이라도 켜고 나갔다 올 걸 그랬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를 보니 괜히 심장이 벌렁거린다.
재빨리 거실이랑 부엌, 들어가지도 않을 방까지 불을 켠 다음 눈도 안 마주치고 부엌으로 향했다.
“내가 오늘... 특별한 걸 줄게.”
포장된 비닐을 뜯으면서 살색 닭의 살이 보이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으으... 못하겠어... 아아. 못하겠다...”
머릿속에서 빨간 불꽃놀이가 펑- 펑- 터지는 기분이다.
이제까지 내가 티비에서 봤었던, 아니면 그냥 불행하게도 우연히 길을 가다 봤던 정육점의 살들,
도로 가에 있는 야생동물의 시체, 치과에 가서 이를 뽑았을 때 느꼈던 비릿한 피의 맛,
며칠 전 찢어졌던 내 손바닥, 내 머리를 따라 흐르던 검고 뜨거운 피, 피, 피...!
“하아... 하아...”
언제 넘어졌을까. 나는 손으로 땅을 짚고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공황상태에 이르기 직전의 느낌이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패닉이다. 그러나 이 곳엔 날 병원 응급실로 신고해 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흐으..... 흡.....하.....”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쉬어 보려고 노력해 보아도 쉽지가 않다. 바닥에 물을 쏟았었던 걸까.
시선을 올려 바닥을 짚고 있던 왼손을 보니 붕대 너머로 피가 새어나와 바닥을 천천히 적시고 있다. 이
렇게 계속 흘러나와서 난 죽고 말거야.
“아니야... 후우... 괘, 괜찮아...하아....”
죽지 않을 거라는 걸, 바닥에 피가 묻을 정도의 출혈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 상상은 내 피가 바다처럼 흘러 나는 그 안에서 둥둥 떠다닐 지경이 된다.
아아...
바다.
“으... 영화 씨..!”
그 영화를 보는 게 아니었다.
그 붉은 바다 위에 낡은 배가 있고 나는 위태롭게 끄트머리에 서 있다. 맞은 편 끄트머리엔 친구가 서 있다.
“..흐으.. 친구야...”
비린내가 점점 심해진다. 다른 냄새들은 사라지고 생닭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코를 찔러 머리가 아플 정도로 역해진다.
욱- 욱- 토기가 쏠려오고 나는 헛구역질을 계속한다.
“비린내... 비린내가... 욱-”
바닥에 엎드려 거실 쪽으로 기어가는 내 눈에 거실 한 가운데에 동상처럼 굳어 있는 친구가 의 단단한 네 발이 보인다.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조금 더 고개를 들면 짙고 까만 눈동자가 보일 텐데...
그 눈을 보고 웃어주어야 하는데...
“나 잡아... 먹을 거야?”
내 입이 제멋대로 나불거린다. 고개를 힘겹게 들어 녀석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 녀석은 파이다.
사나운 호랑이여서 날 잡아먹고 말 것이다.
“제발... 날 잡아 먹을 것처럼 보지 마.”
그것을 마지막으로 여자는 온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바닥에 엎어졌고,
짐승은 무방비의 여자를 보고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서 여자를 바라보았다.
집 안에 미미한 비린 냄새가 풍겼지만, 후각이 뛰어난 짐승으로선 그 냄새를 참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짐승은 한참을 여자를 바라보다 자신의 뭉툭한 두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숨기고 있을 뿐, 날카로운 발톱도 있는 발이다.
이 발로는 여자를 옮기지도, 치료해 주지도 못할 것이다.
크르릉-
집 안을 울릴 정도로 커다란 포효 소리가 들렸고 짐승이 천장으로 높게 뛰어 오르더니 두 발로 착지했다.
사뿐히.
하얗고 가지런한, 사람의 두 발로 말이다.
“......”
몸은 살구빛이 돌았고 머리는 흑갈색이었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완전한 사람의 모습 같았지만
꼬리뼈에서 끝이 나야 할 엉덩이엔 꼬리가 하나, 그리고 2개만 있으면 적당할 귀는 머리에 두 개가 더 솟아 있었다.
남자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삐져나와 있는 귀를 아주 잠깐 만지고 얼굴 한 쪽을 찌푸렸다.
"또 실패냐..."
징그러운 걸 유난히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주인이었다.
깨어나서 이 모습을 보기 전에 푹신한 침대로 옮겨야지.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가볍게 여자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고 가만히 서서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 나 저런 거 안 먹어도 되니까... 무리하지 마요.”
낮은 울림과 깜깜한 어둠에서 안정을 느낀다고. 남자의 아버지는 말했다.
남자가 태어나서부터 남자의 아버지는 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15년 전 치료를 해주었었다는 아이가 있었는데 여러 트라우마로 힘들어 했었다고.
'별로 저랑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남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자신의 반려로 그런 연약한 인간을 추천하는 것인지를.
그리고 상상했다. 피도, 병원도 징그러운 것도, 심지어 갈비뼈와 내장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동물도 못 만지게 된 여자라면,
거의 폐인이 아닐까 하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남자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어린 고양의 모습이던 남자를 여자에게로 보냈다.
고양이는 반김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예상과 달랐던 여자의 모습에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한 거지?'
여자는 너무나 '정상'으로 보였다.
여자는 평범하게 일을 하며, 평범하게 인간관계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다 고쳐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었던 남자는, 그런 모습을 보며 처음엔 화가 났다.
나름대로 반려가 될 상대이니 고민했고, 걱정도 했었으니까. 조금 길고, 깊게 말이다.
'으으. 나 동물 못 만지는데...'
그러나 여자에게 아직 남아 있는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남자는 슬프면서도 몹시 기뻤다.
'음... 부드러워.'
처음으로 여자가 자신을 통해서 편안함을 느끼는 얼굴을 봤을 때, 남자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자를 만나기도 전부터 자신은 여자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음을.
“그러니까 난 절대 안 죽여요.”
호랑이인 자신을 ‘호랑이’를 보는 시선으로 보더라도 상관없었다.
언젠가 이 강한 여자가 그것조차도 이겨낼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에. 그래서 지금은 가슴이 아프지만 참을 수 있었다.
남자는 다섯 개로 갈라진 손가락을 서서히 들어 이마에 붙어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닿지도 않은 것처럼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무서우면 날 묶어놔도 되요.”
그래도 되니까, 절대로 나를 버리지만 말아요.
남자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 어질러진 부엌을 정리했다.
뜯어져 있는 닭은 봉지 채 산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에 연하게 묻은 피가 남자의 후각을 자극했지만 그것은 먹이로서의 자극이 아닌, 어떤 감정적인 자극이었다.
촤르르
그리고 남자는 소파의 틈 아래에서 단단해 보이는 체인을 꺼내들었다. 언제가 한번쯤 목에 걸어보았던 줄이다.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변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남자는 신이 나서 여자가 일하는 곳에 갔었다.
그날 주인은 인간의 모습의 날보고 웃어주었는데....
철컥-
아마 이런 기괴한 모습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또 다른 트라우마로 남아버릴지도 모르지.
이런 모습을 보여줄 바엔 호랑이의 모습이 백번이고 천번이고 낫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포효 소리가 들렸다.
짐승의 목엔 철컹거리는 체인이 감겨 있었고, 그 것을 하고 마음이 편해졌는지 짐승은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나 밤늦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짐승의 모든 신경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새근거리는 소리가 나는 방 안 말이다.
*
잠결인지, 꿈속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진한 자몽향이 코끝에 닿았다.
또 바디샴푸로 장난을 친 걸까. 이 녀석.
“친..구. 호온...난다..?”
오랜만에 녀석과 장난치는 꿈을 꿨다. 왜 내가 이 녀석을 무서워했더라.
아참, 그 영화.
파이가 떠올랐다. 이젠 그 파이와 친구가 겹쳐 보이지 않았다. 향기부터가 다른 녀석이었다.
“자모..옹...”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자몽 향기가 가득했다. 처음 보는 어떤 남자가 나에게 자몽 바디 세트를 선물해주는 꿈을 꿨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꿈속에서 웃었고.
“하..하...”
웃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참 기분이 좋아지는 꿈이 아닐 수 없다.
자몽 세트라니...ㅎ...헿...
++++
아 이것이 로맨스여 호러여...?
몇몇 독자님들께서 호러맨스냐고 초반에 물으셨을 때,
저는 이렇게 무섭게 써질 줄은 모르고 로맨스라고 했었었죠ㅋㅋㅋㅋ
근데 지금 보니까 약간 호러적인 부분이 있네요?
많이 무서운 건 아니죠? ^ㅡ^ ?? (무섭나?)
작가가 현생에 치여서 댓글을 잘 못 달아드리고 있어요
근데 하나하나 다 정독하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하실 말들 편안히 해주시면 됩니다~.~!
글잡에서 연재하는 건 이 04편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이제 메일링으로 이제까지 썼던 분량과, 결말까지를 보내드릴게요
암호닉은 정리하고 그런 거 없어요~
아래에서 빠지신 분들이나,
새로 신청하실 분들
꼭꼭
[~~~]
이렇게 적어주세욤!
글마무리해서 며칠 내로 메일링 하겠다는 글로 돌아올게욤~
그럼 그동안 몸 건강하시구 현생 안녕하시고 덕질 평안하시길...!
>암호닉<
짐니
러폽
밍
오전정국
계란후라이
참기름
국쓰
밤식빵
소다
유다안
정전국
책가방
나비
0523
나의별
꾸기밥
도손
꾸꾸
814
본시걸
오로라
달과6펜스
흥흥
흥탄♥
랄라
젤리밥
미니미니
콩콩
링링뿌
민트초코맛치약
호석이두마리치킨
안돼
사랑둥이
요괴
슙뚜뚜루쓥쓥섀도
콜라에몽
브라우니달
수저
달빈
이끼친구
핑몬핑몬핑몬업
파랑토끼
빡찌
뱁새
란덕손
꾸깃꾸깃
0818
윤맹
라온하제
열꽃
꾸쮸뿌쮸
윤기야
슈가와~
삼다수
슈가꾹릿
가나다
쿡
쩌리
가온
감자
공육이오
피치피치
종이심장
구화관
달빈
꾹이
침침보고눈이침침
해콩
리프
라즈베리
솔트말고슈가
즌증구기
호이둘리
시걸
햄찌맘
지미니
즈여돕이
꽁꽁꼬
즌정꾹이
꾸꾸
피그렛
뚜르르
뾰로롱♥
먹고죽자
아야
푸후후야
진진♥
미유
전정꾸기꾸깃한 종이
스트릿
쩡부
금수
218
정쿠다스
♥꾸꾸♥
장꾸짱꾸장꾸
간장계란밥
4124
찌몬
감자탕
호비호비
비오템
슴살아카
녹차마카롱
매리
바나나우유
맴매때찌
정근
4124
뚜르르
아침2
윤슬
0320
민디민디
숩숩이
0330
제이
달달한비
(중복은 신경쓰지 마시고 빠진 분들만 재신청해주세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