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활발한 성격이었다.
항상 친구들을 주도하여 놀기를 좋아했고 어디서든 혼자 있는 법이 없었다.
그런 내가 입을 열기 무서워 한 것은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어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드라마 속 주인이라도 된 것 같은 암담함에 휩싸였다.
모든 드라마에서 그러하듯 내가 가장 슬펐고 내가 가장 힘들었다.
평소에는 연락도 뜸하던 먼 친척들이 찾아와 한숨을 푹푹 쉬어대며 어린 나를 위로했고 나는 그게 싫었다.
그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내라고 할 때 그 위선된 손을 보기 좋게 쳐내고 싶었지만 멍하니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네.'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유난히 선한 어머니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 모습은 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잔상이 남아 가끔 내 눈가를 뜨겁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나는 시골에 내려가 요양을 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내가 명문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랬던 가족들은 나를 뜯어말렸다.
하지만 어린 날의 패기였는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난 어머니 곁에 남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가족을 모두 서울에 두고 단 둘만 당시엔 버스도 잘 다니지 않던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갔었다.
소년, 그리고 지금
지금 나는 이미 그 곳에서 유명인사였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은 새로 이사온 우리 모자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그 때의 난 그들과 섞이고 싶지 않았다.
뼛속까지 서울 토박이였던 나는 그런 것에 대한 오만같은 것이 있었다.
이사온 첫 날 이장님의 방문에도 나는 억지로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들의 사투리도, 지저분한 옷차림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날 일부러 거실을 피해 내 방에 갇혀 있었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다니던 학교와는 다르게 그 학교는 3층 밖에 없는 작은 건물이었고 학생수는 서울 학교의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첫날 나는 학교를 늦게 나갔다.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 아는 척 할까봐, 그게 무서워서였다.
무테의 두꺼운 안경을 낀 선생님은 30명 남짓 되는 인원의 반에 데려갔다.
새 학년을 맞아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나를 보고 조용해졌었다.
나는 그게 싫어 부러 아이들 쪽은 보지도 않고 선생님 옆에 따라섰다.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다. 도경수, 자기소개해."
서울에서 전학 왔고 이름은 도경수인 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인데
그 전부를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소개를 하라는 선생님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바보처럼 서있었다.
내 모습에 아이들이 점점 쑥덕대기 시작했다.
나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에 귀가 빨개졌다.
그 때, 뒷문이 열리고 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16살치고는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아이였다.
순식간에 나를 향했던 시선이 그 아이에게로 바뀌었다.
나는 왠지 모를 배신감이나 열등감 같은 것에 그 아이를 고깝게 쳐다봤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보고 김종인이라 불렀고 그 아이에게 시간을 잘 지키라며 잔소리를 했다.
그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딱거리며 남는 자리에 앉아버렸다.
머리가 좋았던 나는 그 아이가 내 짝이 될 것이란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남은 한 자리는 그 아이의 옆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역시나 그 아이의 옆자리에 앉게 됐고 어딘가 아니꼽게 느껴졌다.
-
그 애는 나를 못살게 굴었다.
체육시간에 그 애가 나를 향해 던진 공에 맞을 때도 많았고 내 책상 서랍에 쓰레기나 벌레들을 집어넣을 때도 많았다.
아무리 총명하다고 칭찬을 듣던 나였어도 그 애가 나를 왜 싫어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별로 알려들지 않았다.
나도 그 애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나를 괴롭힐 때마다 아무 표정없이 지나쳤다.
그 애는 그럴 때마다 꽤나 분한 듯이 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고소했던 것은 아니었다.
난 정말 그 애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날 끝까지 굳게 닫혀있을 것 같던 그 애의 입이 열렸다.
"너희 엄마 암이라며?"
나는 우리 엄마 이야기가 그 애 입에서 나온 것이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렇게라도 엮이는 것이 싫어 참았다.
나는 그 다음 그 애의 입에서 나올 말을 예상했다.
전염병 취급을 하며 나를 놀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는 의자를 뒤로 까딱거리며 말했다.
"힘들겠네."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조금 동요했었다.
잠시 그 애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냥 연필을 들어 문제집에 끄적였다.
대신 고개를 숙여 몰래 그 애의 다리를 훔쳐봤다.
아슬아슬하게 까딱이는 의자에 움직이던 다리가 이내 멈췄다.
그 애는 그렇게 일어나 교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 애의 뒷모습도 보지 못했다.
왜 쓸데없이 참견이야.
삐딱하게 생각했던 나는 책상에 엎어져 누워버렸다.
이상하게 그 애는 그날부터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
학교에는 정말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지금 서울의 학교처럼 질서있게 세워진 것이 아닌 자연이 뿌려놓은 생명들이었다.
나는 친구도 없이 학교 생활을 하며 유일하게 즐겼던 것이 나무를 보는 것이었다.
벚나무나 은행나무는 한 철이었지만 하루 하루 모습을 바꾸며 나를 즐겁게 했다.
그 때는 늦봄 정도였다.
벚꽃잎이 낙화하며 바닥을 눈처럼 물들였고 나는 그 잎을 뭉개는 것이 싫어 부러 잎이 적은 쪽으로만 걸어다녔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벚꽃은 생명을 다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왜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짧게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우리 엄마와 같다고 느낀 후부터 떨어지는 잎을 보기 무서워졌다.
그 좋아하던 일이 싫어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애써 앙상해져가는 벚나무를 피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의 심부름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집에 갔을 저녁 시간에 학교를 나선 적이 있었다.
평소라면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에 파묻혀 무시하듯 지나가면 될 길이었는데
왜인지 그 길에 세워진 벚나무들을 보지 않으면 그들의 임종을 지키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벚나무를 봤다.
나를 훨씬 뛰어넘었던 큰 벚나무는 꽃잎들을 다 떨궈버리고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었다.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흐르는 눈물을 아무리 닦아내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아 벚나무에 기대어 앉아 목놓아 울어버렸다.
"왜 우냐?"
그 때 들린 목소리에 나는 창피함이 앞서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애였다.
나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그 애가 가버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애는 신기한걸 보기라도 한듯 나를 쳐다보더니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것이 싫어 조금 떨어져 앉았지만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결국 나는 참다 참다 먼저 그 애에게 말했다.
"가."
그 애는 우스꽝스러운 내 코막힌 목소리에도 웃지 않았다.
그 애는 내 말에 몸을 일으켜 교복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울지마."
그 애는 그렇게 뒤돌아 갔고 다음날 내 책상 서랍에는 벚꽃잎이 여러장 들어있었다.
-
그렇다고 그 애와 내가 친해졌다거나 심심한 농담을 건넨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애는 더이상 내 책상 서랍 속에 그 더러운 벌레들을 넣어놓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을 때, 자주 우리집에 놀러오던 옆집 아줌마가 밤이 다 되도록 엄마와 수다를 떨었었다.
나는 그 아줌마가 빨리 집에 가길 바랬지만 밖이 어둠으로 가득 찰 때까지 아줌마는 가지 않고 있었다.
아줌마의 목소리는 방정맞고 주책없었다.
나는 도저히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거실로 나가 티비를 켰다.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아이돌 그룹이 나온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별 감흥없이 티비 화면만 멍하니 보고있었다.
그 때 나는 마치 내 이름을 들은 것처럼 주방에서 흘러 나오는 엄마와 아줌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종인이라고 아주 불쌍한 애 하나 있지."
나는 내가 아는 그 애가 맞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했다.
맞았다. 그 애의 이름은 김종인이었다.
나는 리모컨을 들어 티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어미는 중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죽고 아비는 술고래야."
나는 그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보다 불쌍한 애가 있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 물을 따라 마셨다.
아줌마는 내가 오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걔만 보면 아주 안쓰러워. 원래 착하고 명랑한 애였는데 제 어미 죽고부터는 말썽만 피우더라고."
그러니까 나는 조금 덜 불쌍한 아이였고 그 애는 조금 더 불쌍한 아이였다.
나는 그 말을 더이상 듣지 못하고 집을 나와버렸다.
엄마는 늦은 시간에 어딜 가냐며 소리쳤고 나는 산책을 간다고 핑계를 댔다.
마을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가로등조차 드문드문 위치해 있었다.
나는 조금 무서웠지만 보이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한여름이었지만 쌀쌀하게 느껴졌었다. 한참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나는 땅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다가와 내 팔을 낚아채 일으켰다.
나는 너무 놀라 잡힌 팔을 급히 빼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찌푸리며 자세히 살폈다.
그 애였다.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그 애를 무시하고 집 쪽으로 발을 돌려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그 애도 나를 따라 걸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그 애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 애도 발을 멈췄다.
"따라오지마."
나는 그 아이에게 말하고 다시 돌아 걸었다.
그런데 그 애는 내 말을 들은건지 아닌지 나를 또 따라왔다.
나는 발을 멈추고 뒤돌아 그 애를 고깝게 째려봤다.
"따라오지 말라니까!"
"위험해."
난 그 애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애는 나에게 몇 발자국 다가왔다.
"데려다 줄게."
나는 어둠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 애와 함께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그 애를 따라 걷기만 했다.
그렇게 걷던 그 애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손을 쳐낼 수가 없었다.
그 애는 이따금 잡은 손을 풀러 손에 묻은 땀을 제 옷에 벅벅 닦아내고 다시 잡았다.
나는 그 거칠고 축축한 손을 잡고 그렇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