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씨발 진짜... 쪼끄만 기집애가 까다롭긴..."
있는대로 미간을 찌푸리며 코트깃을 추켜세운 찬열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현관을 나섰다. 사람의 인기척에 반짝- 하고 들어온 현관등이
몇 번 깜빡거리다가 이내 점점 사그라드는 듯 하더니 불시에 꺼져버렸고, 밖은 다시 캄캄한 어둠에 잠겼다.
하여간 이 집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몇 계단 안되는 층계를 걸어 내려가자 매끈하게 윤이나는 찬열의 구두에 바스락거리는 마른 잔디가 밟히며 조용한 한 밤 중에 소음을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별장과 차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해있다는 것만 빼면 경아-와 그 가족-를 새로 이사시켜준 이 집은 마음에 드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낡긴 했지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매달 생활비도 꼬박꼬박 주고 있는데 이 콧대높은 기집애는 도무지 찬열의 마음대로 해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는 모양인지 그 얼굴만 봐도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톡톡 쏘아붙이며 쌀쌀맞게 지나쳐갈 뿐이다.
"에휴... 아주 얼굴값 제대로 하는구만"
하늘에 동그랗게 떠있는 보름달을 바라보다가 마당 앞에 세워놓은 차로 향하려 발걸음을 떼던 찬열은 순간 부스럭-하는 인기척에 그대로 발을
멈춰세웠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귀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잔뜩 청각을 곤두세웠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금
발을 옮기던 그는 이번에는 좀 더 크게, 그리고 길게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변엔 차가운 정적과 시꺼먼
어둠 뿐 사람이나 동물의 형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조금 떨어진 창고 옆의 덤불 속에서 무언가 조그맣게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 찬열이
조심스레 인기척이 난 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고 아래로 숙인 채 점점 가까이 다가가다가
문득 마주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눈에 몸을 굳힌 그가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다. 코트 주머니에 넣은 손에서 진득한 땀이 베어나온다.
흔들리는 시선을 바로하며 그 무언가와 계속 눈을 마주하던 찬열은 주머니에서 떨리는 손을 꺼내 '그것'을 향해 흔들어보였다.
그 손짓에 움찔 몸을 떤 그것은 한동안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물다가 가까이 오라는 듯 계속되는 찬열의 손짓에 서서히, 아주 천천히 덤불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으로 둘러싸여있는 사방이 고요한 시골의 한적한 한 낡은 집, 오직 달빛만이 내려앉은 마당에 드디어 찬열과 그 무언가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뭐..야... 이건..."
한차례 구름이 지나가 달을 가려버려 순간 어둑해졌던 마당은 완전히 걷힌 구름이 흩어지면서 한층 더 밝은 달빛으로 찬열과 그것을 비추었다.
이제 온전히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동물이라기보단 사람의 형태에 가까웠다, 아니 어딜 봐도 사람의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길게 자라 아무렇게나 뻗쳐있는 더러운 머리카락과 온통 시커멓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얼굴을 뒤덮고 있어 간신히 눈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
다 헤지고 찢어지긴 했지만 티쪼가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무언가와 바지도 입고 있었다. 생김새는 사람인 듯 싶었으나 하고 있는 몰골이나
두 발을 딛고 서지 않고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은 동물의 습성과 흡사했다.
"ㅇ..야..."
조그만 찬열의 부름에 반응하듯 으르렁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낸 그것은 경계하듯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찬열을 노려보았다.
혹시 여자들만 산다는 것을 알고 종일 이 집에 숨어있다가 물건을 훔치러 온 좀도둑같은게 아닐까 생각하던 그는 곧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을 접었다.
아무리 봐도 그것의 행세는 좀도둑이라기보단 그냥 떠돌이 거지나 고아같았다. 귀찮기도 하고 그런 것 까지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마음 같아선
그냥 모른 척 차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을 그대로 놔두고 갔다간 경아네 가족에게 위협을 가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여기서 쫓아낸다해도 언제 다시 돌아와서 혹시나 해코지를 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짜증스러움에 뒤로 정갈하게 넘겼던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린 찬열이 신경질적인 발걸음으로 그것의 앞에 다가섰다.
"야, 너 뭔데 이 집에 숨어있어- 어? 길이라도 잃었냐? 응? 너 뭐냐고-"
찬열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대답을 못하는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건지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찬열을 올려다보며 두 눈만 마주하는 그것에 한 번 한숨을 내쉰 그가 앞에 있는 그것의 팔을 움켜쥐고 잡아일으켰다. 찬열을 구부정한 자세로 올려다 보고 있는 그것은 위협적인 모양새와는 다르게 예상 외로 찬열보다 한참은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짜증나게...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너네 집 어디야? 데려다줄... 아니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가자- 경찰서 데려다줄게"
말을 마친 그가 움켜쥐고 있던 팔을 잡아 끌었지만 손쉽게 일으켜세운 것과는 반대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듯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그것에 짜증나는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야, 좋은 말로 할 때 가자, 응? 내가 지금 너 아니어도 무지 짜증이 난 상태거든? 곱게 가자고 할 때 가자?"
다시 한 번 팔을 잡아끌고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따라올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그 모습에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은 찬열이 결국 손을 들어올렸다.
성격대로 머리와 어깨 등 손이 닿는 곳마다 닥치는대로 몇 번 내리치니 둔탁한 소리가 허공을 가로지른다. 한참을 그렇게 구타를 계속하던 찬열이
숨이 차는지 씩씩거리며 들어올렸던 손을 멈추고 몇 번 주물렀다. 그것은 별로 아픈 기색은 없어보였으나 그래도 방금 전보다는 조금 기죽은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좋게 말로 할 때 들어먹으면 좋잖아 새끼야"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찬열의 말에 다시금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려보는 모습에 찬열이 두 눈을 매섭게 치켜뜨곤 씁- 하고 다그치면서
끌어당기자 거부의 몸짓을 보이긴 하지만 이번엔 엉거주춤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어 그 뒤를 따른다. 어느새 세워져있는 차 앞까지 다다라 보조석의
문을 열고 붙잡고 있던 그것을 거칠게 밀어넣은 찬열이 성큼성큼 걸어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생각 외로 힘이 센 그것에 애를 먹은 그가 어느새
이마 위로 베어나온 식은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조석 문을 손톱을 세워 긁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그 모습을 비웃 듯 쳐다봐 준
찬열이 시동을 걸고 핸들로 손을 뻗었다.
"어휴... 진짜 망할 기집애만 아니면... 근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거야 젠장... 야- 씨발, 비싼 차야 손톱으로 긁지마.
긁는다고 안열려 병신아. 아오, 손이야... 말라비틀어진게 힘은 오지게 쎄가지고"
계속되는 그것의 몸짓에 결국 손을 뻗어 안전벨트를 쥔 찬열이 몸부림치는 그것을 힘들게 제압하고 잡아당겨 단단히 고정시켰다.
밖에 있을 때는 바람때문에 잘 몰랐는데 밀폐된 차 안에 있으니 풍겨오는 악취에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은 그가 살짝 창문을 열고 차를 출발시킨다.
"너 씻기는 하고 다니냐? 아오 냄새... 이게 사람새끼한테서 나는 냄새냐? 진짜 가지가지 한다 어휴... 얌전히 좀 있어라, 응?
경찰서까지 좀 조용히 가자? 너 내 차에 냄새 배기만 해봐. 죽여버릴 줄 알아"
* * *
"젠장..."
불이 꺼진 경찰서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있던 찬열이 욕설을 내뱉으며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넘겼다.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무슨 경찰서가
가게도 아니고 문을 닫는건 또 뭔지. 당연히 환하게 불이 켜져있을거라 생각하며 얼마를 달려 도착한 경찰서는 사람의 인기척은 커녕 찬바람만
휑하니 불고 이 동네에는 취객이나 깡패도 없나 24시간 내내 열려있어야할 경찰서가 자정을 조금 넘겼다고 닫혀있는 꼴이라니.
덕분에 눈 앞에 있는 이 녀석만 얼른 넘겨주고 별장으로 돌아가려던 찬열의 계획엔 차질이 생겨버렸다. 마음같아선 그냥 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이 엄동설한에 그대로 버리고 갔다가 까딱 잘못해서 얼어죽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동이 틀 때까지 이 앞에서
언제까지고 경찰서가 열 때 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멀쩡한 내 집 놔두고 왜 이런 녀석 때문에 이 추위에
밖에서 벌벌 떨어야한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되지. 역시 아까 그냥 모른 척 하고 왔어야하는건데- 하고 찬열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기집애 하나 때문에 이런 귀찮은 일을 손수 맡아서 하고 있는건지. 그래봤자 그 쪼그만 기집애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아오 씨발... 진짜 이게 무슨 개같은 꼴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추위에 벌벌 떨던 찬열이 다시 운전석에 올라 창문 밖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문질러 낙서를 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릎을 굽히고 쪼그리고 앉은 자세를 풀지 않은 그것은 여전히 손가락장난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한동안 갈팡질팡 고민하며 입술을 짓이기듯 물어뜯던 찬열이 결국 결심한 모양인지 슬슬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 밝자마자 바로 내다버릴거니까 그런 줄 알아"
할 수 없이 집으로 향하면서도 찬열은 수도없이 이 골칫덩어리를 내다버릴까 말까를 고민했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별장에 도착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려 태울 때와 마찬가지로 팔뚝을 잡고 거칠게 끌어내린 찬열이 잔뜩 몸에 힘을 주고 버티는 그것의 머리를 한 대 갈겨주고
나서야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미련없이 녀석의 팔을 놓고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 후 보일러를 뗀 그가 코트를 벗어
소파에 걸쳐놓고 욕실로 향했다. 대충 손을 씻고 나온 찬열이 아직도 현관 앞에 서서 낯선 듯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며 발을 동동거리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팔을 잡아 집 안으로 이끌었다. 좀 전까지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밝은 빛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대략
열여덟에서 열아홉 정도로 보이는 소년같았다. 물론 냄새나고 더러워서 좀처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대충 풍기는 이미지는 그러했다.
찬열은 방금까지 자신이 썼던 욕실로 향해 그대로 소년을 밀어넣었다.
"냄새나는 너를 그대로 내 집에서 재워줄 순 없으니까, 씻어. 깨끗하게 씻기 전까진 한 발자국도 못나와. 알아들어?"
멀뚱히 서서 고개를 갸웃하고 찬열을 바라보는 소년에 찬열이 연신 욕을 중얼거리며 자신도 욕실 안으로 들어서 소년의 손에 샤워기를 쥐어주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거 가지고 씻으라고"
그대로 쾅-하고 문을 닫은 찬열이 몸을 돌려 뻐근한 어깨를 몇 번 주무르며 소파에 편히 기대앉았다. 나른한 기분에 잠시 잠에 빠질 뻔 했다가
이내 욕실 안에 있을 불청객을 생각해내곤 대충 버리려고 내놨던 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깨끗이 씻었다고 해도 차마 그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다시 입힐 순 없는 노릇이니까. 개중에서 오래되어 버리려고 내놨던 옷들 중 사이즈가 맞을만한 셔츠와 바지를 골라 한 팔에 걸치고 소파로 돌아온 그가 소년이 나오기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물소리는 커녕 인기척 한 번 들리지않아 결국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욕실 앞에 다가간 찬열이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야, 아직 멀었... 뭐하냐 너?"
소년은 찬열이 손에 샤워기를 들려줬던 자세 그대로 문을 향해 서있었다. 그저 어이없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뭐하냐고. 안 씻을거냐고- 너 설마... 씻을 줄 모르냐?"
찬열의 물음에도 여전히 동그란 눈만 멀뚱멀뚱 깜빡거리며 바라보는 모습에 인내심이 폭발한 듯 욕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찬열이
수도꼭지를 돌려 샤워기를 틀었다. 갑작스레 쏟아져나오는 차가운 물에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소년은 곧 따뜻하게 변하는 물에
천천히 떨어지는 물줄기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그대로 손 안에 물을 담아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에 찬열이 얼른 그 손을 막아세웠다.
"어, 어..!! 야, 먹는거 아니야 임마- 씻으라고. 씻어- 옷 다 젖었잖아. 좀 벗고!!"
한 손으로는 샤워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년의 손목을 잡은 그가 이미 젖어버린 옷을 벗기기 위해 붙잡았던 손을 옷으로 가져가자 흠칫-
경계하듯 몸을 움츠리고 방어하는 소년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장난하지 말고 이거 놔라. 응?"
여전히 부동자세인 소년에 짜증이 난 찬열이 결국 그 머리 위로 샤워기를 들어올려 물을 뿌렸다.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에 정신을 못차리는
틈을 타 몸에 달라붙은 더러운 옷을 겨우겨우 벗겨낸 그가 바닥으로 던지듯 옷을 떨궜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는 소년의 모습에 찬열이 들어올렸던
샤워기를 내리고 소년을 바닥에 앉혔다.
"야, 야, 씻으려면 좀 앉아. 앉으라고- 앉아!! 못 알아먹어? 이렇게- 앉으라고. 아 진짜... 가지가지 한다 정말..."
드러난 등에 거품칠을 해주고 물로 깨끗이 헹구기를 수차례 반복하자 진이 빠진 듯 찬열이 벽에 기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거 잡아봐- 잡고, 이렇게... 이렇게 내가 해준 것 처럼 문질러 봐. 아니, 그렇게 말고... 옳지 그렇게. 잘하네-"
급기야 소년의 손에 들고있던 타올을 넘겨준 그가 자신이 했던 것처럼 가르치기 시작하자, 처음엔 도록도록 눈알만 굴리던 녀석이 곧잘 찬열의
행동을 흉내낸다. 그렇게 한차례 상체를 닦아내고 끝까지 움켜쥐고 놓지 않는 바지를 등 몇 대 때려주는 것으로 벗기고 닦아준 뒤 떡이진 머리를
몇 번이나 거품을 내서 감겨주고 세수까지 깨끗하게 씻겨주고나니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듯 굽어진 등이 펴지지 않는 찬열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수건을 들고 나타났다.
"어휴, 이게 무슨 팔자야... 생전 처음보는 이상한 놈 목욕까지 시키고..."
수건으로 온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털어준 뒤 가져다뒀던 새 옷까지 입혀놓고나니 그나마 사람의 모습이 갖춰졌다. 아직도 머리가 길긴
하지만 적어도 더이상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더럽지도 않았고 코를 찌르는 악취도 풍기지 않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소파로 향해 그대로 뻗어버린
찬열이 반쯤 감긴 눈을 떠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키도 한참이나 작고 마른 덕에 입혀놓은 찬열의 옷은 조금 큰 편이었다.
그대로 시선을 올려 멍하니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던 찬열은 순간 번쩍 눈을 떴다. 시커멓고 더러워 눈이 아니면 잘 알아볼 수 없던 얼굴은 오물을
벗겨내고 나니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그랗고 큰 눈과 날렵하게 뻗은 콧대, 그 아래 자리잡은 도톰하고 붉은 입술과 대조되는 흰 피부는
도저히 아까의 더러웠던 소년이라고 볼 수 없게 만들었다.
".... 너 아까 걔 맞냐...? 와 씨, 존나 예쁘네... 남자만 아니면 그 기집애보다 네가 낫다"
본인이 내뱉은 말이 어이가 없었던건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된건지 실없이 푸흐흐 하고 웃던 찬열이 소년을 향해 손을 뻗고 흔들었다.
몇 시간 전, 소년을 처음 봤을 때 처럼.
"이리와"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리며 소년에게 전해지기 무섭게 천천히 두 발을 이용해 찬열에게로 다가간 소년이 서서히 그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한동안 소년과 눈을 마주하던 찬열이 손을 들어올려 그 머리로 향하기 무섭게 흠칫- 몸을 떨었지만 그대로 그 손은 얌전히 소년의 머리 위로
내려앉아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내며 몇 번 이나 쓰다듬기를 반복했다.
"착하네..."
찬열의 손길에 고분고분해진 소년의 눈이 점점 느릿느릿 깜빡거린다.
"근데 넌 이름이 뭐냐 예쁜아?"
뭔가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건 아니었지만 아무런 대꾸없는 그 모습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찬열이 곧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계속 야, 야 거리고 부를 순 없으니 이름이라도 지어줘야겠다 싶어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드디어 이름을 정하기라도 한 듯 두 눈을 휘어접고 소년을 향해 웃어보였다.
"네 이름은 앞으로 경수야. 경, 수. 알겠어?"
입을 크게 움직여 똑바르게 발음하는 찬열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던 소년, 아니 경수가 찬열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역시 환하게 웃어보였다.
예~~~ 전에 늑대소년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썼던 썰인데 묵혀놨던거 가져와봤어요
사실 단편인데 가끔씩 중,하편도 쓰고싶어지는 마음이.... 그러다가 떡설도 찌고...(수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