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거
w.로스트
“.......”
이런 자리를 바로 가시방석 이라고 하는 건가. 여주는 지민이 안내한 빈방으로 들어와 짐을 풀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 문턱에 비스듬히 기대 서있는 지민을 계속해서 흘겨보았다. 처음엔 대충 세입자가 방은 마음에 들어하는 지, 뭐 불편한 건 없는지, 이런 걸 물어보려 서있는 줄 알았는데 지민은 그런 여주의 생각과는 달리 그저 여주가 짐을 푸는 모습만을 조용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결국 여주는 자신의 짐 가방에서 속옷이 든 조그마한 파우치 하나가 손에 잡혔을 때, 그런 지민을 향해 애써 차분한 투로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계속 거기 그렇게 서 계실 건가요?”
“네.”
“아, 그렇... 네?”
능청스럽다 못해 뻔뻔한 지민의 대답이 이어졌다. 여주는 순간 미간을 구겼다가 아차, 하며 입술을 다물었고 지민은 그런 여주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왜요. 불편해요?”
“...아뇨. 뭐 딱히 그런건 아닌데.”
“에이, 지금 표정부터가 불편한데.”
“......”
“불편한 거 있으시면 맘껏 항의하셔도 돼요.”
“아 물론, 집 주인 씨한테.”
그 말을 끝으로 묘한 웃음과 함께 돌아서 나가버린 지민을 여주는 멀뚱히 바라보았다. 혹시 아까 그 여자친구랑 싸웠나. 여주는 조용히 자신의 방 문을 닫고 자신의 속옷들을 정리하며 어딘가 예민해보이는 지민의 얼굴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 맞네. 내가 타이밍이 좀 구리게 들어오긴 했지. 아주 단단히 잘못 짚은 여주의 착각이었다.
“어, 국아.”
ㅡ 이사한 집엔 잘 들어갔어요?
“응. 아직 짐이 다 안 들어와서 딱히 정리 할 게 없네.”
ㅡ 집 주인은, 봤어요?
“어.. 아마도?”
ㅡ 아마도..라뇨?
그렇게 짐 정리를 거의 다 마쳐갈 즈음,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져있던 여주의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발신인은 여주의 후배, 정국이었다. 오늘 이사 짐 옮기는 걸 도와주겠다며 바득바득 우겼던 정국이었지만 전에 살던 집의 평수가 좁아 짐도 몇 안되었을 뿐더러, 오늘 들어온 집이 보다시피 혼자 사는 집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주는 그런 정국을 말리느라 한바탕 고생을 해야했었다.
“계약할 땐 여자였던 집 주인이 남자가 됐어.”
ㅡ ...뭐라고요?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
ㅡ 아니, 선배. 그럼 곧장 나왔어야지 불쑥 그렇게 들어가면 어떡해요!
“이미 짐도 다 뺀걸 어떡해, 그럼.”
ㅡ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 오히려 당사자인 여주보다 더 흥분한 건 정국이었다. 그러게 저번에 자기랑 같이 미리 집 좀 둘러보고 나왔으면 좋지 않았느냐, 아무튼 선배는 김 선배를 너무 믿어서 탈이다, 아무리 집 주인이랑 같이 사는 집이라도 그렇지 월세가 너무 싸다 했다 ㅡ월세가 싼 이유는 단순 지나의 덕심 때문이었다.ㅡ 등등 또 갖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정국의 태도에 여주는 조금씩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자신의 귀에서 멀리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김 선배 소개로 계약한 집 인데 뭔 일 있겠,”
ㅡ 이거 봐. 또, 또, 또!
여기서 두 사람이 말하는 김 선배라 함은,
바로 여주에게 이 집을 소개시켜준 장본인, 김 감독 되시겠다.
남준은 여주가 다니던 대학의 선배였고, 여주를 시나리오 쪽으로 빠지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딱히 소설 말고는 다른 걸 써본 적이 없던 여주에게 ‘소설 말고 시나리오를 써 보는 건 어때? 나 그럼 꼭 한번 네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 한 편 만들어보고 싶은데.’ 라는 주옥같은 멘트를 던지며 여주를 시나리오 쪽으로 입성하게 만들었다. 여주는 그런 남준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물론 연애 감정이 아닌, 존경의 감정으로. 그 사실은 여주의 주변 지인이라 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남준 또한 그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유독 여주를 아끼고 예뻐했다.
ㅡ 진짜 선배는 너무 걱정이 없어서 문제야. 알아요?
“그래. 넌 너무 걱정이 많아서 문제고.”
암튼 내가 알아서 잘 알아볼테니까 넌 걱정말고 얼른 작품 퇴고나 한 번 더해. 그럼 끊는다? 여주는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정국의 외침을 일절 무시하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정국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여주는 지금 매우 여유로운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한 때는 남자들이 대부분인 고시원 생활도 잘만 버텨냈던 여주였으니까. 이 이상 뭔들 못하랴, 싶은 패기도 있었고 게다가 이 집도 두 사람이 살기엔 꽤나 넓은 평수였기 때문에 딱히 자주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았던 게 사실이었다.
“...방에 계시나.”
하지만 그래도 일단 물어보는 게 맞겠지, 싶어 여주는 벌러덩 눕혔던 몸을 일으켰다. 방 밖으로 나와보니 거실은 고요했고 굳게 닫힌 여러 개의 방 문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주는 어느 방부터 노크를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살짝 열려있는 하나의 방 문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발소리를 낮춰 그 방 문 앞으로 다가간 여주가 벌어진 문 틈새를 살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커다란 스피커와 전자피아노, 웬 음악 장비들만이 듬성듬성 보일 뿐 정작 자신이 찾던 지민은 보이지 않았다.
“뭐해요, 거기서?”
그러다가도 여주는 자신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지민의 음성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건지 푹 젖은 머리에 흰 수건 하나를 얹어놓은 지민이 보였다. ..아, 죄송해요. 전 여기 계신 줄 알고. 자신의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하는 여주의 모습에 지민이 무심히 여주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곤 여주의 옆구리 쪽으로 손을 뻗어 열려있던 자신의 작업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쿵, 소리와 함께 작업실 문이 굳게 닫혔다. 난 왜 찾았는데요. 여전히 문고리를 잡은 채 여주를 내려다 보고 있는 지민에게서 짙은 스킨 냄가 풍겨져 오고 있었다.
“그, 여쭤볼 게 좀...”
“왜 남자냐고요?”
여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장 치고 들어오는 지민의 목소리였다. 여주는 묵묵히 고개를 들어 지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참 일찍도 물어보시네. 다 큰 숙녀 분이 겂도 없이.”
지민의 앞머리에 맺혀있던 작은 물방울이 지민의 콧잔등으로 툭, 떨어졌다. 지민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여주에게서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내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한 지민이 머리에 걸쳐놓았던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며 식탁 위에 있던 냉수 한 잔을 들이켰다.
“그 쪽이랑 계약 한 거, 우리 누나에요. 내가 아니라.”
“......”
“지금은 사업때문에 미국에 가 있고, 한 3년 지나야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뭐, 못 믿겠으면 계약서에 이름 한번 확인해 보시던 지. 지민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젖은 수건을 대충 목에 걸었다. 여주는 그런 지민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그 동안은 그 쪽이 집 주인이신 거네요? 여주의 물음에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그 정적을 깨트린 건 지민이 터트린 작은 웃음 소리였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
“그 쪽 말대로 집 주인이 필요해서 나를 여기 앉혀 놓은 건지,”
“아니면 그냥 집 지킬 개가 필요했던건지.”
거의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지민을 보던 여주가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지민이 갈라진 자신의 앞머리를 대충 위로 쓸어넘겼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랑 같이 살기 불편하시면 맘껏 항의하셔도 돼요.”
“......”
“저는 괜찮으니까.”
지민은 얼른 여주가 지나에게 한 통이라도 항의전화를 넣어주기를 바랐다. ‘아무리 그래도 세입자가 불편하다고 하면 세입자를 쫓아내겠지, 설마 지 친동생을 쫓아내겠어?’ 이게 바로 지민의 생각이었으니까. 지민은 여주를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지민의 발목을 잡은 건 뜬금없는 여주의 한마디였다.
“점심 드셨어요?”
괜찮으시면 짜장면 같이 드실래요? 방으로 향하던 지민의 발이 멈추고 지민은 지금 저 여자가 뭐라나, 싶은 생각에 일단 표정부터 구겼다. 여전히 여주에게서 등을 돌린 채였다.
“저는 제가 알아서 챙겨 먹겠습니다.”
“냉장고 텅 비었던데요.”
“그니까 제가 알아서,”
“시킬게요?”
일 인분만 배달 시키기엔 좀 뭐해서. 지민이 결국 방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고 여주를 돌아보았다. 그런 지민을 향해 여주가 보란듯이 주변 중국집 번호를 검색한 자신의 휴대폰 액정 화면을 달랑달랑 흔들어보였다.
진짜 귀찮게 구는 벌이네.
지민이 지긋이 눈을 감으며 입술을 짓이겼다.
-
“이건 제가 사는 거에요.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것도 있고, 또 죄송한 것도 있고.. 뭐, 겸사겸사.”
“죄송한 거?”
여주는 지민을 향해 이것처것 많은 것을 캐물었다. 나이는 몇 살인지, 이름은 뭔지, 또 하는 일은 무엇인지 등등. 동시에 지민 또한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여주의 프로필에 대해서 대충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말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저거였다. 죄송? 지민이 짜장면을 비비다 말고 고개를 들어 건너편에 앉은 여주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길 꺼려한다는 걸 눈치 챘나 싶은 생각과 동시에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모르는 것도 이상하다는 두 생각이 동시에 지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자친구 분이랑 싸우셨잖아요, 저 때문에.”
하지만 정작 들려온 대답이라곤 저런 엉뚱한 대답뿐이었다. 그것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아주 유연한 투로. 나무젓가락을 양 손에 한 짝씩 쥔 채 짜장면을 이리저리 열심히도 비비던 여주가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모습이 지민은 그저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괜한 헛웃음마저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아낼 정도로.
“싸운 적 없어요.”
“그 쪽 때문은 더 아니고.”
그리고 애초에 여자친구부터 틀렸잖아. 나 아직 솔론데. 지민의 연이은 대답에 여주는 뭔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잠시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묵묵히 짜장면을 씹었다. 시나리오 작가라더니 망상도 대단하네. 지민이 생각했다.
“그럼 아까 그 여자는요?”
“그냥 아는 동생.”
“아, 그럼 아직 썸... 뭐, 그런건가?”
“......”
“왜, 요즘은 다들 그런다면서요. 연애하기 전에 썸부터 타고.”
그렇게 여주는 짜장면을 먹는 내내 지민을 향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내던졌다. 지민이 보기엔 뭐 저런 쓸데없는 걸 묻나, 싶었겠지만 여주는 아니었다. 얼마 전, 정국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나서였다.
‘선배 작품엔 왜 사랑 얘기가 안 나와요? 요즘은 티브이 드라마만 봐도 의사들이 환자 고치다 눈 맞고, 사극에서 수청 들다가 눈 맞고 그러던데.’
답은 아주 간단했다. 여주의 연애경험이 별로 없었으니까. 스물 일곱 통 틀어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사겨본 두 번의 연애경험이 여주의 연애의 전부였다. 그래서 지민에겐 쓸데없게만 보이는 저 질문들이 여주에겐 그 어떤 질문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했다. 혹시 모를 나중의 작품을 위해서.
“근데 아까부터 나한테 궁금한 게 되게 많으시네.”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혼자 쫑알거리는 여주가 슬슬 귀찮아진 지민은 되려 짖궃게 저런 장난만 쳐보였다. 대충 자신이 이런 장난을 치면 그저 민망한 표정을 짓고 조용히 짜장면 그릇에 코를 박을 여주를 상상한 지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럼요.”
“......”
“좋은 사람이 될 지도 모르는데요. 당연히 관심 있어야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들려온 여주의 대답 뿐이었다.
“......”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진 건 지민 쪽이었다. 여자한테 나쁜새끼라는 소린 들어봤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것도 처음보는 여자한테라면 더더욱.
여기서 여주에게 좋은 사람이라 함은 단순히 좋은 캐릭터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그 사람의 느낌과 분위기, 성격부터 분석하고 보는 버릇이 생겨버린 여주였는데 당연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지민에게는 그저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민이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앞에 앉은 여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지민을 향해 여주는 그저 싱긋, 말간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
으아 이번 편 쓰다가 어제 새벽에 갑자기 알람이 떠서 봤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꿈인줄 알았어요ㅠㅠㅠㅠㅠㅠ
진짜 다 여러분 덕분이에요ㅠㅠㅠㅠㅠㅠ댓글 하나하나 읽으면서 진짜 한분한분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ㅠㅠㅠㅠ초록글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
아 그리고 얼른 2화 들고 오려고 노력했는데 제가 글을 후딱후딱 쓰지를 못해서.. 계속 고치고, 또 고치고..
제 부족한 글 솜씨를 탓해주세여... 매번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애정하는 암호닉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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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