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와 같이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앞 골목에서 누군가 있다는 느낌을 받자마자 뒤통수에 느껴진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으스스한 기운이 풍기는 낯선 곳에 와있었다.
내 두 손발은 꽁꽁 묶여 있었고 입 마저 혹여나 소리 지를까 싶었는지 청테이프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축축한 느낌이 싫어 꿈틀거리며 벗어나려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도데체 여긴 어디이며 날 납치한 사람은 누구인가.
두려움에 벌벌 떨고있으려니 웅장한 철문이 끼익,하고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얼굴을 쳐다보며 씨익 웃는 그를 보며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얼마전 앞집에 이사 온 청년이었다.
예의도 바르고 싹싹해서 어른들께 항상 칭찬을 듣는,나도 그저 착한 청년인 줄 알고 있었던 남자였다.
"쉬잇.조용히 하면 이거 떼줄게."
내 볼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소름이 끼쳤지만 살기 위해 알았다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가 그런 내모습에 만족스러웠는지 청테이프를 떼주었고 입이 트이자 마자 나는 애원했다.
살려주세요,제발 살려주세요.
그는 울며 애원하는 내가 흥미로운지 그저 웃으며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살려주세요.뭐든 들어드릴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부탁이예요.
목이 메여 뭉개지는 발음으로 띄엄띄엄 말하자 그가 웃었다.
그동안 마을에서 봐 온 순수한 웃음으로 웃었다.
원하는건,무엇이든지?
그는 확인하듯 나에게 되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를 만족시켜봐.네가 하는 것에 따라서 너를 살려줄 수도,죽일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