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엔 항상 종현이 존재했다. 그는 때로 여인의 모습을 한채로 첫사랑의 아픔에 눈물흘리기도 하고, 부끄러울적이면 콧잔등을 긁적이는 버릇을 그대로 가진 순박한 시골청년이 되기도 한다. 온통 김종현뿐인 글을 써내며 나는 내앞에서 울던 종현을, 내게 안겨 웃음짓던 종현을 떠올리곤 한다. 어느순간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린 그의 잔상은 아직도 남아 나를 움직이곤했다.
지금,너를
written 낭만
아저씨- 아저씨 어디계세요??
딱 기분이 좋을만큼 따스한 노을을 등지고 써내려가는 글씨, 그 종이위에 붉은빛이 물들때면 어김없이 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사각 종이위를 지나다니는 연필소리가 뭍히며 네가 우당탕 지하실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소리가 그 위를 덮었고, 그제야 안경을 벗으면 볼을 발그스름하게 붉힌 네가 내 앞에 서서 아침의 그 햇살만큼 밝게 웃었다.
오늘 바깥이 되게 더워요. 버스정류장이 조금만 가까우면 더 좋을텐데 그쵸?
아저씨 집은 걷고 또 걸어야되는 되게 깊숙한데에 있어서 힘들어요-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곤 울상을 짓는 얼굴이 우스웠다. 저 조그만 머리통이며 때글때글 굴리는 커단 눈동자가 무슨생각을 하고있는지 너무 잘 읽히는 까닭이었다. 데리러갈게.이 한마디를 듣고싶어 부루퉁 입술을 내밀고있었겠지 싶어 조금 골려주고싶은 맘이 순간 일었지만 이내 새하얀 반팔셔츠 아래로 보이는 낭창한 팔이 헥헥 가쁜숨을 쉬는것같아 빙긋 웃으며 내일부턴 그럼 정류장에서 전화해. 한마디를 해주었다.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는 네 얼굴에 빛이 퍼진다. 그제야 손에든 연필을 소리나지않게 내려놓고 두어번 손짓으로 너를 부르니 금새 수줍은 얼굴을 하고는 쭈뼛쭈뼛 걸음을옮겨 다가오기에, 냉큼 손목을 잡곤 허리를 끌어당겼다. 답삭 안긴채로 마주한 네 눈에 내가 온전히 가득 들어찼다. 너는 늘 보아도 아름다웠다. 퇴색하고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에 나는 늘 그렇게 취했다.
-아저씨가 전에 그랬잖아요, 뾰족한 연필은 슬프다고.
-응 그랬지.
-아저씨 말때문에 오늘 학교에서 연필만 보다가 되게 혼났어요.
그래서 나도 연필이 슬퍼요. 아저씨가 왜 슬픈지 나는 알수가 없어서, 아무리 연필을 봐도 아저씨맘에 내가 들어가진 못하는거같아서 그래서 나도 연필이 슬퍼요. 열아홉인 나보다 열아홉이나 많은 아저씨 속에 한번이라도 들어가보고싶은데 그게 되게 어렵다, 그쵸. 나 바본가봐요. 시큰거리는지 콧잔등을 한번 찌푸린 종현이 약간은 처연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 말에 어떤 대답을 주어야할지 몰라 그저 하릴없이 네 얼굴을 따라 시선을 옮겨갔다.
너를 대하는것이 꼭 글을쓰는것같다. 어떤 단어가 좋을지 애써 골라낸 그 말이 내 온전한 뜻을 그대로 담아 닿을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괴로워하는것이 연필을 들어 사각사각 원고지에 흔적을 남겨가는 글쓰는것과 꼭 같았다. 마음이 마음 그대로 전해지기를 염원하는것이 꼭 닮아있다. 어느새 필통에 꽂혀 이리저리 머리를 내밀고있던 연필한자루를 둥글둥글 굴려대는 손가락을 쥐었다. 자그마한 네 손이 내 손안으로 알맞게 들어찼다. 모난곳하나 없이 둥근 손을 조금 힘주어 붙잡곤 연필을 빼내었다. 허전한 느낌에서인지 의문을 담은 눈이 나를 향했다. 땀에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내어주다 종현의 볼을 한번 쓸었다. 열아홉의 너,
-냉장고에 니가 사다놓은 음식들이 가득해. 읽다가 잠들어서 소파밑에 던져놓은 만화책들 하며, 커플머그컵이라고 샀다가 설겆이하면서 깨먹은 짝잃은 컵 하나도 여기있네, 여기들어있는 커피는 집에서 누나가 내려마시는 원두 슬쩍해왔다고 눈 반짝거리면서 자랑하던 그거고.
-아저씨.
-내집에, 니가 여기저기 이렇게 빼곡히 차있는데.
왜 내속에 들어가려고 그렇게 안달이 났어, 응? 앉아있는 내 무릎 사이에 세워뒀던 너를 올려보다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내 손은 너의 발그레한 뺨을 감싸쥔채였다. 종현아- 네가 슬픈게 아냐. 네가 세상에 나타나기전 그 열아홉 해의 시간, 그 시간동안의 내가 슬픈거야. 그 시간을 열심히 걸어서 니가 왔는데 지금은 온통 행복인데 왜자꾸 슬플까 너는.
다만 내가 걱정하는건 한가지였다. 열아홉살인 네가 꼬박 네가 살아왔던만큼의 시간이 흘러서 나만큼 어른이 되어서도 네가 지금만큼 나를 사랑하고있을지. 설령 사랑이 아니게 되더라도 행여나 지금처럼 매일 나를 찾지 않아도 좋으니 구석 한켠에 묻어두지말고 먼지쌓이지 않게, 바래지 않게 틈틈히 꺼내봐주었으면 싶었다. 어쩌면 정말 바보같고 슬픈건 서른 여덟의 나,
신기하기도 하지. 내 눈을 읽어내기라도 한듯 너는 어느새 내도록 슬펐던 눈을 감추고 나를 마주했다. 너에게 할 말을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그것들이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는걸 문득 깨달았다. 어떤 글로도 말로도 표현하지 않았던것을 내 눈을통해 읽어낸 네가 조심스레 내게 입을 맞추었다. 파르르 떨리는 네 속눈썹이 내 뺨을 간지럽혔다. 간지러움은 얼굴에서 목구멍으로 또 목을 통해 심장께로 번져갔다. 그 간질거림을 참지못해 너를 으스러질듯 껴안고 나는 다시한번 생각했다. 읽고싶어할 필요도없고 들어오고싶어 슬플필요도 없다고. 너는,
너는 그 자체로 이미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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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이걸 어케 이어서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