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짝사랑
w. ☆★☆
초등학생 때, 우리 엄마랑 정말 친한 친구분이 계셨다.
어찌나 두 분이 친하셨냐면, 같은 해에 결혼하고, 같은 해에 아이를 가져, 같은 해에 아이를 낳기를 약속했을 정도로 친하셨다고 한다.
남편분들은 무슨 죄야! 연애 기간은 서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진정한 짝을 찾을 때까지 엄마와 그 친구분─이모라고 편하게 쓰겠다.─은
서로 기다려 주었고, 둘 도 없을 짝이 나타나자 넷이서 서로 결혼 날짜를 정하셨다고 한다.
비록 같은 날에 하실 수는 없으셨지만, 엄마와 이모는 같은 달에 같은 장소에서 서로가 사랑하는 남편과 백년가약을 맺으셨다.
우리 엄마와, 그 이모는 서로 아이를 낳았을 때 성별이 달리 태어나면 결혼을 꼭 시키자며 항상 그렇게 약속하셨다고 하셨고,
만약 같은 성별로 태어난다면 두 분의 사이처럼 둘 도 없는 친구사이로 만들자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단다.
그렇게, 같은 해에 태어난 엄마의 아이는 바로 나였고,
이모의 아이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의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정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아이의 아빠께서 다른 나라 사람이었기에─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다른 나라로 갔다고 했다.
중국으로.
그 아이는 반은 한국인, 반은 중국인인 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생에 들어가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한번도 그 아이를 볼 수가 없었다.
아, 간간히 한국에 오시던 이모와는 볼 수 있었지만.
내가 중국에 가도, 이모와는 볼 수 있었지만 그 아이와는 볼 수가 없었다.
그 때마다 항상, 내게, "아, 이쁜 여주랑 우리 아들이랑 빨리 만나게 해 줘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셨다.
솔직히 나는, 어릴 때에는 엄마와 이모께서 그렇게 노랠 부르던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있었고,
그 아이를 만나게 해 달라고 그렇게나 조르던 적도 많았다.
그 아이와는 왜 볼 수가 없었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모랑 같이 들어오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어렴풋이, 어릴 적 엄마께로부터 그 아이의 이름 두 글자를 들었던 때에는…무슨 심정인지는 몰라도,
설레임에 잠 못 이루고 밤을 꼬박 넘겨, 다음 날 유치원에서 하루종일 잠만 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루한.
새벽의 사슴이라니,
그 아이의 이름은, 넘칠 만큼 아름다워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이름 만으로 나는 그 아이에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 수 있었다.
간간히 보내주던 이모로부터의 편지와 함께 있던 사진 속에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남자아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랑 같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같았다.
이모의 편지 말고도, 이모의 편지 다음 장엔 아주 가끔 그 아이의 편지 역시 들어있었는데,
무슨 숙제를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중국어 뿐이었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는 그 편지를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었다.
답장을 보낼 때 엄마께서는 그 아이의 사진에 답을 하듯─예의있게 나의 사진도 보내야 한다며 내 사진도 빼놓지 않으셨는데,
나는 그 때마다 유치원, 초등학생 때에는 공주 풍의 드레스를 꺼내입고, 머리도 양갈래로 묶어달라고 하며─굳이 사진을 새로 찍어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 아이에게 어울릴 만큼 나도 예뻐야했다고 생각했다.
답장은,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이 무엇일지 잘 모르겠어서, 쓰지 않았다.
그렇게 편지를 일방적으로 주고받았는데도, 그 아이와 나는 한 마디도 나눠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이모께서 말하시기를, 중국에서 많이 바쁘다고 했다.
도대체 뭘 하길래.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꼬박꼬박 날아오던 이모의 편지와 그 아이의 사진에서는 그 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사춘기 시절의 철없던 반항심인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게 서러워서인지,
더 이상 내 사진을 같이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왠지 내가, 부족해 보이기도 했다.
지래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 그렇게 잘생겼는데─여자친구 쯤은 있겠지.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 뭐 그런거, 걔는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
괜히, 신경쓰지 말자.
근데 나는, 누구 때문에 나 좋다는 애들 있어도─남자친구 사귀지도 않는데.
그래, 나도 나 좋다는 애들 많아!
.
.
.
어느 날 엄마께서 물었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17년이 되는 시간동안, 나는 부모님이 지어준 운명의 상대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가끔 편지가 올 때마다, 그 아이가 써내려간 알 수 없는 뜻의 편지 역시 같이 보여주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자 내가 어릴 적부터 모아두었던 그 아이의 편지를 보관해 두는 곳에 말 없이 보관하실 뿐이었다.
사진 역시 내가 보려하지 않자, 엄마는 마찬가지로 사진도 따로 보관하셨다.
보고싶지만, 그래도 왠지 보고싶지 않았다.
보면 나 혼자만 미련이 생길까봐.
그리고, 중학생 때 만난 남자친구와도 한창 잘 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왜 요즘은 사진 같이 안 보내줘?"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어서, 내 지갑에 자리하던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찍었던 내 증명사진을 던지듯이 툭, 내려놓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몇 주 뒤, 엄마는 웃으며 이모에게로부터 편지가 왔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게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증명사진 크기의 종이에는─사진의 뒷면이었다.─ 또박또박한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예쁘다.'
홀리듯 사진을 앞면으로 뒤집어보니, 그 아이의 증명사진이었다.
처음으로 그 아이가 한글을 쓴 것을 보았다.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누가? 내가?
억지로 무시하려했던 심장이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나의 지갑에는 나의 사진 대신 그 아이의 사진이 자리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께 답장을 쓰고싶다고 말했다.
받는 이는 이모의 성함이 아닌,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한국어로 한 번, 중국어로 한 번.
그리고 편지를 적어내려갔다.
루한, 안녕. 나는 김여주라고 해.
내가 알 수 없는 글로 나에게 몇 년이고 편지를 썼지만, 나는 그 말이 뭔지 잘 모르겠어.
나는 네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알고싶어.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 네가 내게 가르쳐주지 않을래?
우리,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서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아.
나는 그런데. 너는 아닐까?
나는 네가 보고싶어, 루한.
몇 번이고 적고싶은 그 아이의 이름,
밤마다 남 몰래 적어갔던 그 아이의 이름,
왜 만날 수 없는지 알 수 없던 그 아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그 아이에게로 부터 편지는 오지 않았다.
.
.
.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나는 여느 때 처럼 더위에 찌들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지이잉─
치마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액정 화면에는, ♡엄마♡라고 쓰여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엄마께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여주야, 빨리…집으로 와……."
.
.
.
.
중국이었다. 나 말고 모든 사람들이 전부 알 수 없는 단어를 한다.
그리고 내 앞에는,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아이의 얼굴이 걸려있는 사진이 있었다.
나는 너를, 18년의 시간동안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채, 너를 보내버렸다.
너는, 사진만을 바라보며 생각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아픈 아이였다.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던 이유 역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는, 일방적으로 내게 편지를 보내며 내게 갈구하고 있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가졌던 너에 대한 마음을.
넌, 부끄러운 나머지 한글로 써내려갈 수 없어 늘 내가 모르게 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왔다고 했다.
18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아이의 소원은 아프다는 사실을 내게로부터 숨기는 것이었다.
엄마들끼리 맺은 운명의 상대. 그 아이는 그 상대인 내가 실망할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빨리 낫기를 매일 밤마다 기도했다.
그래서 사진 속에 그 아이는 항상 웃는 사진들 뿐이었던 걸까?
사진 속에 유난히 말랐던 너를 보고 내가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픈건 상관 없다고, 내가 먼저 너를 만나러 갔어야 했는데.
그 아이가 내게 보냈던 증명사진은,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한국의 교복을 처음으로 입고 찍었다고 했다.
이모께서 내 두 손을 잡고, 우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함께 타오르던 네가 아끼는 물건 가운데에는, 나의 사진들 뿐이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낸 네게 보낸 편지까지 있었다.
이모는 내게 늘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루한, 빨리 여주한테 보여줘야 하는데!"
나는 그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네가 아프다는 사실 조차.
엄마와 이모께서는, 어느 날인가 부터 나의 운명에 상대에 대해 꿈울 꿔오는 내게─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으셨다고 했다.
원망스러웠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를 위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난, 18년 동안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했던 너를, 사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내게 10년 넘게 보내던 편지 한 장 한 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언젠가, 나의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면,
그 땐 내가 너를 만나러 갈게.
그 아이가 보내오던 한 두줄 간결한 문장의 편지는, 항상 아름다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가 보내오던 편지를 전부 다 해석할 수 있게 되자, 나는 이제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마지막 편지를 꺼내들었다.
이모께서 전해주신, 내가 펼쳐보지 않았던,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 하지만 내게 결코 보내려 하지 않았다는 편지를.
정말 아프게 되고, 1년 동안은 펜조차 손에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그 아이가 '예쁘다'고 적어준 그 아이의 증명사진을 답장을 했을 때
편지봉투의 윗 부분을 뜯어내고, 접혀있던 편지를 펼쳐보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예쁜 글씨로 적혀져 있던─한글로 적힌 그 아이의 편지.
여주야, 안녕.
루한이야.
처음으로 너의 편지를 받고서,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네가 나의 이름을 써 주었다니. 나는 아마 최고로 행복한 날인지도 몰라.
살아있음에 처음으로 감사했어.
아니, 나는 네 존재만으로도 항상 하늘에 감사했지.
나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날 수 없었지만, 네가 나를 일방적으로 원망할 수 밖에 없겠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너를 사랑해.
너의 목소리가 뭔지 궁금하다. 나는 네가 너무나 궁금해.
여주야, 너를 알고싶어.
내가 두 눈을 감기 전에 너를 내 두 눈에 담아볼 수 있을까?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사랑해, 여주야. 그리고 고마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줘서.
내가 너무 부족한 아이라, 나는 너를 만날 수가 없어.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어.
3년이 있으면 내가 성인이 될 텐데도, 아직까지 나는 철이 없나봐.
무조건적으로 너는 나를 보며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이유는 뭘까?
지금 까지 어머니께로부터 들었던 너의 이야기를 보면, 너의 사진을 보면, 전혀 그럴 아이가 아니란걸 알지만.
그냥 나의 욕심이야. 나는 너를 마주하고 싶은데도,
마주하고 싶지가 않아.
너무 두려워, 너를 만나는 것이.
너를 만나는 것을 상상하면 정말로 기쁠 것 같은데, 너를 만나는게 너무 두려워.
나를 보고, 초라해서 온 몸에 뼈대밖에 남지 않은 나를 보고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서.
나를 싫어할까봐 두려워, 여주야.
마주한 적이 없는데도 어느센가 너를 그리는 나를 보면.
가끔은 너희 어머님과 우리 어머니께서 왜 이런 약속을 하셨는지 원망스럽기도 해.
나도, 보고싶다.
만약, 내가 너를 만나지 못한 채 하늘로 가게 된다면,
보고싶은 너와 한번도 마주하지 못한 대신에, 나는 하늘의 별이 되어 너를 영원히 지켜줄 게.
그리고 만약, 하늘의 기적이 내려와 내가 너를 만나러 갈 수 있다면,
너는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답해줄 수 있을까?
루한, 너의 이름이 무척이나 예쁘다는 이야기를 전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서로, 일방적인 짝사랑에 답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평생을 가도 이루어 질 수가 없을,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일방적인 짝사랑 |
수정 없이 써내려간 조각글이라 앞 뒤가 많이 맞지 않겠네요. 혹시나 이 글에 기분 상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ㅠㅡㅠ 루한, 사랑해요♡ |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루한] 일방적인 짝사랑 10
11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루한] 일방적인 짝사랑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f/a/9/fa908133459fdce965c5e09f433b8cb5.jpg)
![[루한] 일방적인 짝사랑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1/3/413a14d7366b66cf5a855067d68b5fe4.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