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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The Moon 전체글ll조회 472l 1

 

 

 

 

녀의 이야기

                                                    W. The Moon

 

 

 

 

우린 처음부터 너무 달랐다.

좋아하는 음식, 옷을 고르는 취향, 선호하는 색, 듣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장르.

심지어 좋아하는 애완동물도 달라 나는 강아지, 그는 고양이를 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나 다른 남녀 두 명이 사랑을 했었다니….

 

 

 

그는 아직도 내 방 침대에 누워있다. 미동도 없이, 나에게 등을 돌린채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잠든 그의 머리칼을 매만지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손을 떨구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무방비 상태였던 목으로 차가운 공기가 급작스럽게 들어와 콜록- 하는 마른 기침이 터져나왔다. 건조하고, 차갑다. 내 방 안에 그득하게 들어찬 공기들은 이미 차게 식어버린지 오래였고, 은연 중에 감돌던 온기조차 이젠 활기를 잃어 바닥에 내려 앉아버렸다.

 

춥진 않았다.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아무 것도.

 

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대한 그에게 맞춰줬지만 그는 그런 내 행동이 성에 차지 않는 듯 했다. 결국, 이 공기와 같이 급속도로 얼어붙은 우리의 사랑은 끝내 서로의 마음마저 단단하게 얼려버렸고, 그는 나보다도 더 매섭게 얼어갔다. 내 잘못은 아니다. 이건 순전 그의 잘못이다.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건 작년 겨울이었다. 흰 눈이 하늘에서 나풀나풀 내려와 차갑게 언 땅에 사뿐히 자신의 몸을 뉘이던 그 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러나 그는 제일 좋아하는 색인 붉은색의 목도리를 내 생일 선물로 건넨 그는 선심 썼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어."

 

 

 

그 때, 난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난 그의 모든 취향을 알고 있는데… 왜 그는 내 취향을 하나도 모르는거지?

순간, 그가 준 목도리 위에 놓였던 내 손에 힘이 들어갔고, 잠시 숨을 고르던 나는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 없어."

 

 

 

난 조용히 그 목도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맘 같아선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에 내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주위의 시선이 있었기에 차마 그러지 못했던 나는 이를 악문채 울음을 삼키며 한겨울 차디찬 바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흰 눈들을 짓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 날 그에게선 미안하다는 전화 한 통 조차 없었다. 그렇게 나와 그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난 그를 한동안 내 머릿 속에서 지워버렸다.

 

차라리 안 보고 사는게 나을 뻔 했다. 그로 부터 일주일 뒤, 일에 지쳐 잠시 머리를 식히러 간 카페에서 마주친 그는 웬 처음보는 여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날 알아본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나갈 수 없었고, 난 그렇게 무기력하게 그의 목소리에 잡혀버리고 말았다.

 

 

 

"내 여자 친구야. 인사해."

 

 

 

난 내심 그가 실수한 것이기를 바랐다.

날 가리키려는 것을 실수로 그녀를 가리킨 거라고.

그녀에게 날 소개 하려는 것을 실수로 나에게 그녀를 소개시킨 거라고.

난 애써 옅게 미소지으며 그를 올려다 봤지만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고, 그의 손은 정확히 그 여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분 나쁘다.

 

다시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몸을 돌려 그 카페를 나왔다.

그렇게 그가 잔인하게 날 내친 그 날, 엉엉 울며 집으로 향하던 내 처량한 구둣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내 침대 위에 누워 숨소리도 없이 잘 자고 있었다.

 

나쁜 놈.

 

침대에 걸터 앉아있던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러자 그 반동으로 인해 그의 몸이 살짝 들썩였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 나온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사실, 오늘 그를 우리 집으로 불러낸 건 나였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씩 때문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무슨 대답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꼭 물어보고 싶었다.

 

 

 

"날 사랑하긴 한거야?"

 

 

 

차라리 대답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 도 없이 했다. 그래야 내 마음에 좀 더 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널 사랑했냐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난 그 소리를 세 번이나 듣고나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인내. 그것은 인내였다. 내 심장을 지탱하고 있던 인내란 세 가닥의 줄이 끊어지자 허공에 뜬 심장은 곧바로 깊은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심장은 날카로운 바람에 이곳 저곳이 찢겨나가 순식간에 메말라 버렸고,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바스라져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텅 비어버린 가슴 안에 흩날렸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끝까지 나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이가 바드득 갈리고 손이 떨려왔다. 참을 수 없다. 아니, 참기 싫다. 그래서, 난 잠시 이성의 끈을 놓기로 했다.

그는 끝까지 이기적 이었다. 내 마음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리고 나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않았으면서 떠나는 순간마저 자신이 좋아하던 색으로 날 물들이고 가버렸다. 잠시 한숨을 뱉은 나는 눈을 새롭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거실 바닥. 말끔했던 거실 바닥에 붉은색의 차갑게 식은 카펫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다.

소파. 내가 앉아있는 이 흰 소파에는 붉은색의 얼룩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벽지. 단색의 벽지에 운치있는 붉은색의 비가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붉게 물든 내 손. 잘게 경련하는 손가락 곳곳에 묻은 붉은색은 점점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붉은색이다. 그는 거실을 모두 붉은색으로 물들인 것으로도 모자라 내 침대까지도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을 것이다. 느릿하고도 빠른. 유하고도 정적인 이 붉은색은 내 몸까지 집어 삼켜버렸으니까.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되어버렸다.

 

 

난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있던 칼을 집어 그대로 소파 위에 내던져 놓고는 그 옆의 붉은 서랍을 열어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탁- 탁- 몇 번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었다. 그가 좋아하는 붉은색…. 그 붉은색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 흩어져 있다. 꼿꼿하게 몸을 세운 붉은 화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라이터를 끄고 내 방을 향해 나있는 붉은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런 그를 응시하며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역한 붉은색의 향기가 진동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것도 그의 향기다. 그가 몸속에 숨기고 다니던, 내가 참아내고 받아들여야 할 그의 향기였다.

찰박찰박-. 붉은색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 바닥에 맨발이 닿자 조금은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찐득 거리면서도 미끌거리는 그 느낌이 퍽 좋지 않았던 나는 미간을 구기고 투덜거렸다. 이런, 내가 좋아하는 카펫도 물들어버렸네…. 몸을 숙여 붉게 물들어가는 카펫을 반 쯤 접어 넘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돌려 내 방 한 쪽 벽면을 가득하게 메운 그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는 모든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름모를 지나가던 행인들과.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였던 사람들과.

그 수많은 사진들 속에 내가 같이 있는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건 모두 내가 찍은 거니까. 그를 알기 위해 소비했던 내 오랜 시간들의 산물이니까.

 

 

 

"이렇게 정성을 쏟아부었는데…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천천히 사진을 매만지던 나는 그의 밝은 미소가 담긴 사진 한 장을 뜯어냈다.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이었다.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옆에 붙어있는 -그러나 사진의 얼굴 부분은 칼로 무참히 난도질되어 알아볼 수 없는- 그의 여자친구는 흰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런, 이건 그의 취향이 아니다. 그는 붉은색을 좋아한다. 난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사진 가장자리에 불을 붙였다. 아, 이제 좀 괜찮다. 사진 속의 그녀는 붉은색으로 활활 불타다 못해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가 되어버린 사진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재는 붉은 카펫에 스며들어 그 모습을 감췄다.

 

 

 

"그러고 보니… 내 방도 흰색인데…."

 

 

 

난 내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벽을 그득하게 메운 사진들에 불을 붙였다. 모든 사진들이. 아니, 내 추억들이 그가 좋아하는 색으로 활활 불타 올랐다. 추억들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화염은 그대로 내 방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커튼으로, 천장으로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화염은 내 방의 추위를 따뜻한 공기로 바꿔주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난 모든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화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려 침대로 걸어갔고, 붉게 물들어버린 침대에 누워 내 체온과는 달리 차게 식어버린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시선을 올려 그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봤다.

이젠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그 침묵의 평온한 얼굴은 아무 표정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잠들기 전에 내가 만들어준 목에 새로이 난 새로운 입은 옅게 웃고 있었다.

 

 

 

우리 이제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어. 같이 가자.

 

 

 

난 옅게 웃으며 눈을 감았고, 이윽고 차게 얼어버린 우리의 몸을 녹여줄 따뜻한 온기가 나의 몸을 집어삼켰다.

 

 

 

 

**

 

 

장르가.. 뭔지 구분이 안 가서 그냥 스릴러 붙였습니다. 단편입니다.

 

간단한 결말 해석 해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스토커입니다. 오랜 기간 끝에 남자와 친해지긴 했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여자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살게 됩니다.

결국,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기자 분노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남자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자살합니다.

 

현재 연재 중인 '잠든 자의 이야기' 는 계속해서 자유 연재할 예정이구요, 종종 이렇게 간단한 단편으로도 자주 찾아뵐 예정입니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모쪼록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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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진짜 대박이에요....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잘 읽고가요
11년 전
독자2
우오옹...대박 글솜씨라능..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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