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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온앤오프 샤이니
The Moon 전체글ll조회 257l

 

 

 

 

투둑― 툭―.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장대비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특유의 먼지 냄새가 공기 중에 감돌기 시작하자 은연한 찬 기운이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왔고, 그 비 냄새를 맡은 시연은 쓰고 있던 원고를 내팽겨 치고 거실로 달려 나갔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오는 구나! 거실 발코니 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 마신 시연은 창유리를 연신 두들기는 빗줄기를 보며 베시시 웃었다.

 

 

 

“대박!”

 

 

 

  어릴 적부터 비오는 것을 좋아했던 시연은 비가 올 때의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을 좋아했다. 도심 속의 답답한 먼지가 깨끗한 빗방울에 씻겨 내려가 맑은 공기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것들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 했고, 쏴아- 하는 시원한 빗소리가 느릿하게 부유하는 공기를 울리며 사방에 퍼질 때는 그 묘한 박자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 걸까. 잿빛으로 물든 하늘에서 바삐 걸음을 옮기는 먹색 구름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연은 가볍게 눈을 감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공기와 여린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시린 바람까지. 비가 올 때의 모든 것이 좋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만끽하던 시연은 눈을 뜨고 창밖으로 손을 뻗어 찬 기운이 흐는 투명한 빗방울들을 받아내며 집안에 있을 수안을 불렀다.

 

 

 

“수안씨! 비와요!”

“알고 있어요…….”

 

 

 

  안 그래도 몇 시간 전부터 죽겠으니까 좀 조용히 해줄래요? 그 말은 속으로 삼긴 채 살아 있다는 표시로 무기력하게 손을 흔들어 보인 수안은 다시 거실 바닥에 축 늘어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수안은 시연과는 달리 비가 오는 날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비가 오기 전부터 푹푹 쑤셔대는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있었고, 공기를 그득하게 채운 습기가 안 그래도 힘겨운 그의 몸을 더 세게 짓눌렀다. 기상청보다 빠르고 정확한 우리 동네의 살아있는 기상청! 어릴 적부터 쭉 달고 살아온 그의 별명이었다. 비가 오기 전부터 몸상태가 최악으로 변해버리는 통에 중요한 시험 날에 비가 와 시험을 제대로 망친 적이 여러 번 이었고, 장마철에는 집 안에서도 기어다닐 정도로 이곳저곳이 푹푹 쑤셔 잡혀있던 약속을 다 취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정도로 비에 민감했던 수안은 이미 비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거실 한복판에 널부러진 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뇨.”

“수안씨, 그거 알아요?”

“….”

“이 비, 내일까지 쭉 내린대요.”

“젠장.”

 

 

 

  바닥에 누운 채 헛웃음을 진 수안은 제 머리를 부여잡고는 괴로운 듯 몸을 웅크렸다. 어깨고 무릎이고 허리고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이건 진짜 지옥이야.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 끝내는 거실 탁자에 다리를 부딪힌 수안은 아픈 곳을 붙잡고 다시 데굴데굴 구르다 이번 주말은 꼼짝없이 날리게 됐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시연은 그저 미소 띤 얼굴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집에 있는 건 예의가 아니지.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밝게 웃은 시연은 얼마 전에 사온 새 우산을 생각하며 이젠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있는 수안을 향해 달려갔다.

 

 

 

“수안씨, 같이 나갈래요?”

“이 꼴을 보고도?”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더 아파요. 빨리 나가요, 네?”

 

 

 

  이 여자 날 죽일 작정이다. 눈을 꽉 감으며 속으로 중얼거린 수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쏟아져 내리는 빗속을 걸을 생각에 괴로운 그의 두 어깨는 힘없이 축 쳐져 있었다. 그런 수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밝게 웃으며 수안의 팔을 끌어당기는 시연은 빨리 나가자는 말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

 

 

 

 

  장대비 내리는 공원의 숲은 비를 맞이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크게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물웅덩이의 첨벙거리는 소리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진흙의 찰박이는 소리. 투명한 빗방울들이 나뭇잎이나 풀숲, 잔디밭에 떨어져 부서지며 나는 빗소리가 그득하게 울리는 맑은 공기는 찬 기운을 머금은 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창한 날의 하늘과 같은 하늘색 우비와 비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그녀의 생일날 수안이 선물한 민트색 레인 부츠를 신은 시연은 길거리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만 골라 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뒷모습만 보면 꼭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비가 오는게 그렇게 좋을까?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니는 시연과는 달리 식욕을 잃은 좀비마냥 아무런 의지 없이 무기력하게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수안의 운동화는 이미 갈색 흙탕물이 잔뜩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아, 좀 더 낡은 거 신고 나올걸 그랬나. 더러워져 가는 제 운동화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 수안은 제자리에 서서 발을 구르며 운동화에 묻은 진흙을 탈탈 털어냈다.

 

 

 

“아, 좀 천천히 가요!”

“수안씨가 느린거거든요? 왜 이렇게 느려요?”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시연씨가 이걸 못 겪어봐서 그렇지 이건 진짜…… 으어어…….”

 

 

 

  말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옷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몸을 움츠린 수안은 입고 있던 파란색 가디건을 더 단단하게 여미며 속이 상한 듯 입을 삐죽 내밀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속에는 긴팔 입으라니까. 옷을 고르는 와중에 긴팔을 건네주자 가디건 입을 때 힘들다며 끝내 흰 반팔을 찾아 입은 탓에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수안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 시연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다 자신의 옆에 있던 풀숲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뭐 하는 거지? 시연이 쪼그려 앉자 그녀가 입고 있던 치마 끝자락이 물웅덩이에 닿아 젖어가는 것을 보고 미간을 구긴 수안은 빠르게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똑같이 쪼그려 앉고는 젖은 치마 끝을 쭉 짜서 제대로 정돈해주며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연에게 말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요?”

“여기 달팽이 있어요.”

“달팽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난데. 달팽이의 찐득한 진액이 떠올라 벌써부터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것 같았던 수안은 진저리를 치며 팔을 쓸어내렸고, 그런 수안을 힐끗 바라 본 시연은 베시시 웃으며 달팽이를 바라봤다. 초록빛이 그득한 풀숲 사이에 솟아오른 회색 블록에 베이지 색 등껍질을 가진 달팽이들이 느릿느릿하게 기어가고 있었다. 건조할 것 같은데……. 풀숲에 가려서 그런지 물기 없는 블록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들이 걱정스러웠던 시연은 우산을 그 쪽으로 기울여 빗물을 떨어뜨려 주었고, 그런 시연을 바라 본 수안은 피식 웃으며 우산을 앞으로 기울인 탓에 비에 젖어가는 그녀의 긴 머리를 앞으로 넘겨줬다.

 

 

 

“수안씨.”

“예?”

“귀엽죠?”

“어아아악!”

 

 

 

  수안이 달팽이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시연은 장난기가 발동해 달팽이 한 마리를 집어 들고 수안이 고개를 돌리자 그 앞에 그것을 들이밀었고, 눈앞에 달팽이가 다가오자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뺀 수안은 뒤로 넘어질 뻔한 것을 바닥에 손을 짚어 힘겹게 버텨내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리쳤다.

 

 

 

“시연씨!”

“남자가 뭐 이런 거 가지고 놀라요? 에이, 남자답지 못하네.”

“아니, 그건 누가 봐도 놀라요! 어후, 진짜 깜짝 놀랐…….”

“이거 봐요, 이렇게 톡- 건드리면 쏙- 들어가잖아요. 귀엽지 않아요?”

 

 

 

  아뇨, 전혀요. 달팽이를 계속해서 손으로 건드리며 해맑게 웃어 보이는 시연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수안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달팽이를 관찰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푸스스 웃었다. 어린아이 같은 밝은 미소가 참 잘 어울린다. 그 미소가 수안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마음에 들었던 웃음. 부드럽게 휘어진 눈꼬리와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를 힐끗 바라 본 수안은 잠시 제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돌려 시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연씨.”

“네?”

 

 

 

  의문이 가득담긴 눈을 하고 고개를 돌린 시연의 입술에 무언가가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싱긋 웃어 보인 수안은 멍하니 굳어 있는 시연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이러면 좀 남자다워 보여요?”

 

 

 

  푸스스 웃는 수안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울리자 급작스러운 뽀뽀에 당황해 붉게 달아오른 볼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인 시연은 달팽이를 조심스럽게 블록 위에 내려놓고 우산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은 채 아무 말없이 풀숲만 내려다봤고,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안은 자신이 쓰고 있던 노란색 우산을 접은 뒤에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탈탈 털어내며 시연의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갔다.

 

 

 

“괜히 우산 두 개 들고 나왔다. 그죠?”

“……깜짝 놀랐잖아요.”

“나 먼저 놀래킨게 누군데.”

 

 

 

  투덜거리던 수안은 우산 손잡이를 뺏어들고는 접은 우산을 시연에게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수안을 따라 일어난 시연은 바람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대충 정리하고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이러다 어디 잠기는 거 아닌가 몰라. 어느새 비 때문에 생길 피해를 걱정하는 여유를 찾은 수안은 시연의 어깨를 한 팔로 부드럽게 감싸 안고는 시연의 어깨에 비가 떨어지지 않게 우산을 그녀의 쪽으로 기울이며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쭉 비가 싫었는데, 그 지긋지긋하던 비가 오늘은 좀 마음에 든다. 하늘을 보며 하- 하고 숨을 내쉰 수안은 싱긋 웃었다.

 

 

 

 

***

 

어제 올렸던 글에 문제가 보여서 재업로드 합니다~

이곳저곳 손을 대다보니 분량이 조금 늘었네요 ㅎㅎ

결론은... 커플지옥 솔로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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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헣헣....내주변에는 저런남자가 없으니.......ㅎㅎㅎㅎㅎ이런...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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