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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곳은 알 수 없는 들판이었다. 이것도 하나의 꿈이겠거니, 그동안 꿔왔던 꿈처럼 눈뜨면 사라져버릴 어쩌면 기억도 나지 않을 흔한 꿈이지 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찰나 광활한 들판 위에 서있던 나는 나를 겨냥한 누군가의 음성에 뒤를 돌았다.
"여기 있으면 안 돼"
"얼른 돌아가"
밑도 끝도 없이 돌아가라니. 하지만 서두르는 어투로 나에게 말을 건넨 그 소년은 가까이 다가와 다시 한번 말했다.
"박지원 맞지? 인간인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데려다줄게. 얼른 가자"
처음 본 소년이 나의 손을 잡으려 한다. 현실이었다면 누구냐는 물음이 먼저였겠지만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믿을 사람은 이 소년뿐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챈 나는 하는 수없이 손을 내줬다.
"근데 여기 어디에요? 절 어떻게 아세요?"
"여긴 신들의 세계야. 인간이 오면 안 돼"
다짜고짜 신들의 세계라니 이제 하다 하다 별 꿈을 다 꾼다고 생각했다. 이 꿈은 또 어떻게 끝이 나려나.
소년은 내 손을 잡고 한참을 급하게 들판을 내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던 소년이 잠시 멈춰서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덧 들판에 노을이 지고 저녁의 색이 들판을 물들이고 있었다.
소년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듯 머리를 헝클며 잡았던 내 손을 놓은 채 주머니를 뒤적거려 빨간 팔찌를 찾아냈다.
그리고 곧장 지원이의 손목에 팔찌를 채우려 하자 가쁜 숨을 몰아쉬던 지원이 놀란 듯 팔을 빼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저녁이 되면 파수꾼이 침입자를 찾으러 다녀. 이곳에선 인간이 발견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돼. 넌 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긴 또 하나의 세계야.
여기서 사라지면 네 세계에서도 넌 없어져. 그러기 전에 이 팔찌가 널 지킬 거야. 그리고 나도"
그저 깨어나면 되는 꿈인 줄 알았는데 내가 사라진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지원이의 반응이 시간을 지체하려 하자 소년은 지원이의 손목에 서두르듯 빨간 팔찌를 채웠다.
영문도 모르게 지원이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 그리고 같은 팔찌를 차고 있는 소년이 지원이의 손을 다시 맞잡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지원이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영영 꿈에서 깰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젓고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정신을 차리다 문득 소년이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그리고 단박에 내가 지원인 것을 알아챘는지 궁금해졌다.
"그쪽 이름이 뭐예요? 그쪽도 인간인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예요? 아니 이제 전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해찬. 이게 내 이름이야 진짜 이름은 아니고. 난 네가 있는 세계로 갈 수 없어. 이름을 뺏겼거든."
이름이면 이름인 거지 진짜 이름은 아니라는 해찬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이름을 누구한테 뺏겼다는 건지 서글픈 눈을 한 해찬이 말했다.
"그냥 난 여기서 유일하게 널 아는 사람이야. 내가 널 너의 세계로 데려다줄 거야."
지원이의 눈을 보며 해찬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