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쟤 13살 차이나는 아저씨랑 연애한대
"너 요즘 끝나면 바로 집가?"
"어떻게 알았어?"
예주가 눈치는 어찌나 빠른지 바로 맞춘다. 어떻게 맞췄냐는 내 말에 예주가 말한다.
"맨날 남친분께서 데리러 오셨잖아? 근데 요즘은 잠잠하길래.. 엊그제부터 버스타고 가는 것 같던데 너."
"…그냥 버스 타고싶어질 수도 있지 뭐."
"버스 절대 안 타는 년이 무슨 버스가 타고싶어? 대단한 년.. 뷔페 조질래?"
"안 조질래."
"왜!!!!!!!!!!!"
"그냥 안 끌려."
"뷔페가 안 끌려? 너 혹시.. 얼마전에 건강검진 받았냐?"
"뭐래."
"설마 죽을병이래!??!"
"뭐래 미친.."
엊그제 그와 헤어지고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루에 전화 두통 정도는 했지만
얼굴을 못 본다는 것은 내게 꽤 괴로운 일이었다.
이건 백퍼 맞다.
"예주야."
"뭐."
"아저씨가 나한테 권태기 온 것 같아."
"권태기!?!?!?!?"
고개를 끄덕이는데 예주 표정이 너무 리얼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갑자기 왜 권태기? 왜?"
"그냥.. 요즘 아저씨 행동도 그렇고."
"……"
"끝나고 버스 탄 것도 다.. 아저씨가 만나잔 소리도 없고, 데리러 온다는 소리도 없어서 그냥 집 간 거였어."
"……"
"내가 뭐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없었다. 아.. 설마 그때 그가 친구들이랑 같이 밤새서 술마신 날..
내가 너무 뭐라고 해서 그거 때문에 내가 질린 건가.
책상 위로 핸드폰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었고, 예주가 '남친인데!?'하고 소리치기에 나도 모르게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오는 전화였다. 얼른 받으라며 내 팔뚝을 밀어내는 예주에 난 긴장한듯 전화를 받았다.
"네, 아저씨."
- 응. 나 지금 일어났어.
"뭐하다가 지금 일어났어요..? 지금 1시인데."
- 어제 좀 늦게 잤더니.. 점심은 먹었어?
"아직요.."
- 왜 아직 안 먹었어? 점심시간 아니야?
"입맛이 없어서요.. 아저씨도 얼른 밥 먹어야죠."
- 응.
"……."
- 몇시에 끝나?
"…네?"
- 데리러 갈게.
"진짜요!?.. 오늘.. 5시요!!"
별것도 아닌데.. 오늘 보자는 말이 이렇게 좋을까.
풀이 죽어있다가 갑자기 신나서 해맑게 웃으니, 예주가 킬미힐미냐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예주랑 같이 내려가다가 예주는 택시 탄다며 가버렸고, 나는 저 멀리 그를 바라보았다.
차에 기대어 팔짱을 낀채로 서서 나를 바라보는데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서 마구 달려가니 그가 웃으며 날 바라본다.
이틀만인가.. 몇주만에 본 것 같은데 되게..
"오늘도 완전 잘생겼네 아저씨!"
"이러고 학교 왔어?"
이러고..? 내 상태가 어떤데? 고갤 숙여 내 상태를 보자 아.. 나 오늘 늦잠도 자고,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츄리닝 차림에 부시시한 머리로 왔었지..
"왜요..? 너무 이상하죠.. 설마 정떨어졌어요!?"
"이런 걸로 뭔 정이 떨어져? 귀여워."
"그렇담 뭐.. 근데 아저씨."
"응?"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응? 하고 나를 내려다보는데 하고싶었던 말들이 쏙- 하고 들어가버렸다.
서운해서 하려던 말들 말고.. 오늘은 나답지 않은 말을 그에게 해본다.
"안아도 돼요?"
"…그럼."
이런 말은 처음 해보는 거라, 그도 조금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를 꼭 안고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 오늘 꼭 그를 안아야겠다.
"며칠 굶으셨어요?"
"아저씨랑 먹으니까 완전 맛있는데 어떡해요."
"천천히 먹어. 체할라."
"아, 우리 다음에 만나면 초밥 먹어요! 초밥 먹고싶다. 내일이나 모레 콜!?"
이틀내내 밥 잘 못먹던 내가 갑자기 입맛이 돌아 미친듯이 밥을 먹고있다.
나와는 다르게 밥을 잘 못먹는 그에게 왜 못먹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표정이 별로 좋지않기에..
내가 간섭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밥 먹는 내내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못 듣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싫어졌냐 물어보는 게 문제인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냐고 말해줄 때까지 물어보는 게 맞는 걸까.
밥을 다 먹고 자연스레 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평소같았으면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아주곤 했는데.. 그때와 같이 오늘도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냥.."
"…응?"
"집 갈래요."
"……."
"집 가서 쉴래요."
"…그럴래?"
오랜만에 보는 거니, 조금만 더 있다 가라는 말을 해줄줄 알았던 그는 집에 간다는 내 말에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바라던 반응은 저게 아닌데.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집에 가기 싫은데.. 그가 더 보고싶은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무슨 일 있어?"
그건 내가 묻고싶은 말이었다.
평소엔 항상 아저씨 집에 간다는 말만 하던 내가 집가서 쉰다니까 이상하기는 했나보다.
"아니요. 그냥.."
"……"
"기분이 안 좋아서요."
"기분이."
"……."
"왜 안 좋을까."
"……."
"응?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그럼 집에서 어머님께서 뭐라 하셔?"
"…아니요."
아저씨 때문이라고 말도 못 하는 내가 정말 짜증났다.
기분이 안 좋다고 말 했으면서도 나는 그의 눈치를 보고있다.
"그럼 왜 기분이 안 좋아?"
"가만히 있다보면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되게."
"내일은 뭐해요 아저씨?"
"아무것도 안 해. 아침에 데리러 올게."
"아침에 피곤할텐데 그냥 자구.. 끝나고 아저씨 집으로 갈게요."
"안 피곤해."
"괜찮아요 진짜..!"
"그래, 그럼.."
"……."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이렇게 몇분을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그가 멈췄고, 나는 '갈게요!'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하고서 차에서 내린다.
그때와는 다르게 오늘은 내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가지않고 나를 지켜봐주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가 진짜 내게 권태기가 온 것 같아서.
"야 너 왜 지각?"
"늦잠 잤어."
"그렇다고.... 점심시간에 학교를 오냐.."
"미안.. 밥 혼자 먹었겠네."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먹었어?"
"샌드위치 먹었지."
"……."
결국 밤에 잠도 못 잤다. 그렇게 헤어지고 연락 하나 안 온 게 너무 무섭고 서러워서 잠이 안 왔다.
힘 없는 내가 걱정되는지 예주가 셀카를 찍다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남친 만나서 뭐했냐..?"
"그냥.. 예주야."
"예.. 언니."
"권태기 온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
"…일단은 연락이 뜸해지고."
"……."
"눈도 잘 안마주치고.."
"……."
"아무래도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많이 하겠지?
아, 스킨쉽도 엄~청 안 해. 내 전남친이 권태기 왔을때 딱 이랬어."
"…….'
"보고싶단 말도 안 하고, 그냥 집 간다는 말에 잡지도 않고 혼자 보내고."
다 내 얘기인 것 같아서 또 슬퍼졌다. 울려고 울먹거리면 예주가 워워! 하고 놀란듯 눈을 크게 뜬다.
"권태기 아니겠지! 뭔 일이 있는 거겠지.. 얼마 전에 봤을 때도 널 더 사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는데."
"네가 못봐서 그래. 이번주 내내 나 잘 쳐다보지도 않고, 만나자는 소리도 안 하고.."
학교가 끝나고 멍때리며 버스타러 가는데 '김석류' 익숙란 목소리에 고갤 돌려보니
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왜 있어요 아저씨?"
"데리러 왔지."
"제가 아저씨 집에 간다고 했잖아요..!"
"그냥 데리러 오고 싶어서."
"……."
"초밥 먹자."
"초밥이요? 웬 초밥.."
"초밥 먹자며. 어제."
"…아."
그의 집에 들어가 식탁 위에 초밥을 올려놓고선 그가 말한다.
"먹고있어."
"아저씨는요?"
"난 점심을 잘못 먹어서 그런가 속이 안 좋네."
"……."
"너 좋아하는 것만 사왔어. 운동하고 왔더니 찝찝해서.. 씻고 올게."
"…저 혼자 먹으라구요?"
그가 나를 뒤로한채로 씻으러 욕실로 들어섰고, 나는 뻘쭘하게 앉아서 멍을 때린다.
평소에 좋아하던 초밥도 오늘따라 너무 먹기 싫었다.
같이 먹는 것도 아니고.. 혼자 먹으라는 건 무슨 이상한 소리야 진짜..
"…왜 안 먹고있어?"
씻고 나와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털며 내게 다가 온 그가 왜 먹지 않았냐고 묻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혼자 다 먹어요."
"남기면 되지."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
"같이 먹어야죠, 이걸 제가 왜 혼자 먹어요. 나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한단 말이에요."
"아, 미안. 같이 먹을까 그럼?"
"아니요."
"……."
"아저씨 속 안 좋다면서요 먹지 마요. 그냥 나도 안 먹을래요."
"배 고프잖아."
"안 고파요."
"초밥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게..!"
"……."
"그냥 오롯이 초밥이 먹고싶어서 한 소리가 아니잖아요."
"……."
"아저씨랑 또 만나고 싶고, 만나서 같이 먹고싶어서 한 말이었어요."
"……."
"저도 별로 먹고싶지 않아요. 안 먹을래요 그냥."
"그래. 알았어."
그가 젖은 수건을 의자에 걸쳐놓고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듯 방에 들어간다.
그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소파에 앉아서 재밌지도 않은 예능을 보고있는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내 어깨를 감싸서는 토닥여주었고, 그가 나를 갑자기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다.
"왜요..?"
"예뻐서."
"…아저씨가 더 예뻐요."
"남자한테 예쁘다는 좀 그렇네."
"…치."
"졸려?"
"조금요.."
"들어가서 자자."
"…아저씨 얼굴 더 보려구요. 요즘 너무 못봤어."
"……"
이런 행동을 보면 또 나를 사랑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나를 자꾸만 헷갈리게 하는 그가 미웠다.
"나는 네가 결혼식 안갈 줄 알았는데.. 괜찮겠냐?"
"10년은 훨씬 더 지난 일인데 뭐."
"그래도 이미주면 꽤 너한텐 큰 존재잖아."
"그랬었지."
"석류는? 알아?"
"아니. 그냥 친구라고만 알고있어."
"……."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 결혼식이라 말하기도 싫고,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지금은 사랑하지도 않고."
"하긴.. 10년도 지난 일이고.. 결혼하는데 뭐. 내가 보기엔 이미주 쟤보다 석류가 더 예뻐."
"참나.."
"웃기냐..ㅋㅋㅋ 진짜 석류가 더 예뻐. 일단 비쥬얼 적으로는 이미주가 딸리지."
"그건 나도 알지."
동욱과 재욱이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섰고, 재욱과 미주의 사이를 알던 사람들은 재욱을 보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재욱은 축의금을 내고서 곧 바로 시작되는 결혼식을 불편하게 끝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
재욱이 신랑 신부 입장을 보고선 아무 말도 없이 식장에서 빠져나가자, 동욱이 힐끔 뒤 돌아 재욱을 확인하고선 혼잣말을 한다.
"대단하네.. 나같으면 못 오는데."
"네 애인 오늘 결혼식 갔겠네?"
"어떻게 알았어??"
"남길이아저씨도 갔으니까."
"…남길이아저씨?"
"어.. 어!? 어.. 그게.. 음..어.."
"따로 만나???????????????????????????????????????"
예주가 당황한듯 눈을 굴리다가 곧 나를 바라보며 에라 모르겠다 대답한다.
"그래! 만난다!"
"어떻게? 엥? 그럼 사귀는 거야!?"
"아니?"
"그럼?"
"섹.."
"섹................."
"섹파..."
"뭐!?!?!?!?!?!?!"
너무 현실적으로 놀라버렸다. 입을 틀어막고 한참 있으니, 예주가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말한다.
"근데 너 멘탈 괜찮냐?"
"뭔 멘탈..?"
"네 애인 첫사랑 결혼식이라잖아."
"뭐?"
"…엥? 몰랐어?"
"…누가 그래?"
"남..길..아..저..ㅆ.."
"……"
"나는 당연히 알고있는 줄 알았는데.."
"…참나 진짜."
"…야 울어?"
"…어이가 없어서."
"……."
"진짜.."
저녁이 되어서 재욱은 석류에게 전화를 걸려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자 아무 의심없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오빠 오늘 결혼식 왔었어?
"…응."
- 왜 얼굴도 안 비추고 가!?
"우리가."
- …….
"얼굴 비추고 인사할 사이는 아니잖아."
-…오빠 보고싶었는데.
"이미주."
- …….
"결혼 했으면, 행복하게 잘 살아. 그리고 나 애인있어."
- …….
"너보다 예쁘고, 너보다 훨씬 착하고."
- …….
"네 결혼식 갔다오니까 더 확실하게 느껴졌어. 내가 왜 결혼식을 갈까 말까 망설였나 싶더라."
- …….
"그럴 시간에 지금 애인한테나 더 잘해줄 걸. 시간이 다 아깝더라."
-…….
"앞으로 어떤 일이던 연락 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어차피 차단 할 거지만."
- 나는 오빠 결혼식 못갈 거야.
"그래."
- 다신 못 볼 건데도?
"응. 지금 애인 때문에 너 생각 하나도 안 나. 그 정도로 넌 나한테 크지 않아."
- …….
"할 말 없으면 끊을게."
재욱은 전화를 끊고서 맥주 한캔을 꺼내 몇모금 마시고선 창밖을 보았다.
벌써 이미 양주 몇잔 마신듯 재욱은 정신이 없어보였다.
"……."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채 창밖만 보던 재욱은 소파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나는 술냄새에 재욱이 속으로 생각한다.
석류가 싫어한텐데.. 허공을 보고선 한숨을 한 번더 쉰 재욱이 핸드폰을 켜, 갤러리에 들어가 석류의 사진을 본다.
"……."
그러다 얼른 석류에게 전화를 건 재욱이 석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말한다.
"어디야."
- …….
"보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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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르겠다! 둘다 이해가서! 모르겠다! 난 모르겠다! ㄴ모르겠다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