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여성 아이돌 붐의 끝을 말한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말해지던 것이다.
2NE1은 ‘Come Back Home’으로 ‘어떤 완성’을 추구하고, 소녀시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포미닛은 이미 작년 ‘이름이 뭐예요?’를 통해 급진적 선회를 도모했다.
원더걸스는 중도에 탈퇴했던 선미가 솔로로 컴백했고, 예은은 정글을 탐험하고 있으며, 선예는 선교자와 어머니의 역할을 탐험하는 모양이다.
카라의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2007년 원더걸스와 함께 일어난 여성 아이돌 붐은,
이미 죽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확인사살마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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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남성 아이돌 시대의 전개를 예측한다.
그런데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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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러 가자면, ‘원더걸스가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되었나?’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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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중음악계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수많은 여성 아이돌이 즉시 (다른 숱한 테마들을 버려두고) 소울-디스코와 글리터, 미러볼, 분장실, 댄서를 꿈꾸는 소녀 등의 이미지를 프리셋처럼 가져와 쏟아부은 것이다.
또한 오늘날 소울-훵크와 이를 연상시키는 브라스 사운드가 어떤 ‘음악성’이나 ‘음악적 성숙’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것도 이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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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원더걸스의 화려한 경이의 시대(‘Wonder Years’)는 애매한 전설로 남았다.
JYP 개인에게 있어 원더걸스는 어쩌면 납득할 수 없는 신탁 같은 뼈저림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원더걸스의 커리어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JYP와 원더걸스 본인들만은 아닐 터, 누구라도 “그 시절 좋았지” 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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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당시의 원더걸스는 매력이 입증된 모델이고, 입증된 쾌감을 재현하는 것은 팝 음악에서 결코 금기가 아니라 때론 오히려 미덕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원더걸스 레퍼런싱은 과연 아름다운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우리에게 원더걸스는 (이미) 존경과 흠모, 영향을 선포할 모범적 클래식인가.
혹은 원더걸스가 아닌 그 누구라도, 케이팝에 정전의 옹립은 필요한가.
이는 어떤 의미에선 미8군에서 성장한 신중현에 대한 한국 록의 헌사와 겹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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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이 상실한, 혹은 가져본 적 없는 뿌리와 정통성은 우리를 ‘상상의 이상향’ 영미권에 대한 변방의식 속에 위치시켜왔다.
뭘 해도 ‘짝퉁’이란 의식 말이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근본 없음’이야말로 제3세계의 프레임을 비로소 벗어나는 저력인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의 질문은 바뀐다.
원더걸스 레퍼런싱은 ‘근본 없는’ 일인가, 혹은 ‘상상의 근본’에 대한 욕망인가.
전자라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혹 부정적이라 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후자라면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허위의 굴레가 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음악을 찾는 것이 오덕스럽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혹시, 그보다도 ‘못난’ 짓이 시작되고 있지는 않은가.
http://idology.kr/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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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는 무대 위에서 더는 노래를 열창하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거나 하는 일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케이팝 씬에서 가장 독보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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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갈 수 없을 음악적 혁신의 잠재력이 이 음반의 몇 대목에서 보이는 단초에 있다고 본다.
원더걸스는 정말로 '원더'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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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들이 걷는 길은 정도(正道)다.
익숙한 바탕에 새로운 형식을 더하면서 과거와 현재 모두를 아우르려 하고, 단순한 재현보다 창작의 새 출발에 대한 고민이 깊게 배어 나온다.
조금 늦더라도 기본부터 천천히 밟아가는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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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이며 진취적.
타 걸그룹, 혹은 아이돌 전체로 그 대상을 넓힌다해도 이 단어가 그들보다 어울리는 이가 있을까 싶다
최근의 행보가 놀랍다.
정말 노래 제목대로, 아니 그룹 이름대로 가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