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던 날, 반마다 교과서를 배분해준다고 교과서 한 뭉텅이를 4층까지 계단으로 옮기던 날. 당시에 난 자존심만 세서 힘들어 죽겠는데 안 힘들다고 혼자 낑낑 올라가고 있었거든 그런데 네가 내 손에 교과서 훌쩍 들고 가벼운 거 내 손에 들려줬잖아 그때 너한테 미안하고 고마우면서 또 엄청 설렜어 친하진 않았어도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그 날 이후로 네가 너무 신경쓰였어 수업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너 훔쳐 보기 바빴어 그러다 널 좋아한다고 그냥 인정했어 당연히 고백은 절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네가 동물 잠옷 입고 춤추던 모습도 아직 생각나고, 빼빼로데이 전 날엔 네가 좋아하는 빼빼로 사다주겠다고 동네 마트 다 돌아다닌 기억도 난다ㅋㅋㅋ 심지어 빼빼로데이날에 네가 회색 후드집업 입고 온 것도 기억해 평소에는 검정색 후드집업만 입고 다녔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그거 하나 변한 건데 그땐 너 보고 심장 완전 터지는 줄 알았어 안 그래도 너한테 빼빼로 전해줄 생각으로 머리 복잡했는데... 그래도 복잡했던 것치고는 큰 실수 없이 전해줘서 다행이었어 자리에 와서 떨리는 심장 가라앉히는데 네가 내 자리 와서 빼빼로 줘서 가라앉히긴 커녕 더 뛰었지 고맙다고 받았는데 나중에 정신차리고 보니 아몬드 빼빼로더라 나 아몬드 알러지 있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네가 준 빼빼로를 어떻게 안 먹겠어 그냥 먹었지 그날 기도 부어서 종일 기침했던 거 빼면 참 행복했던 날이었어 소풍날도 기억나 놀이공원에서 우연히라도 같은 놀이기구 탈 수 있길 어찌나 바랐는지 그 바람 통했는지 우연히 만나서 너랑 같은 놀이기구까지 탔잖아 지금까지도 그 놀이기구는 제일 재밌었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어 그 이후론 그 놀이기구를 안 타서 더 그런가봐 맞다 너 좋아하는 거 인정한 날부터 거의 매일 일기 썼는데 어느 날엔 엄마한테 그 일기장 들켜서 혼나는 꿈도 꿨어 그땐 동성, 여잘 좋아하는 게 많이 양심에 찔렸나봐 웃기지 음 그냥 이제는 네가 뭐 하고 사는지도 몰라서, 그때의 내 마음을 그 누구한테도 말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꼭 주저리 다 얘기해보고 싶었어. 많이 좋아했고, 정말 순수하게 네 웃는 모습 하나에 가슴 설레서 나도 아무도 몰래 웃을 정도로 좋아했어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어 언젠간. 잘 지내고 있길 바라 행복하길 바라고 그리고 앞으로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