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스물일곱인 남성입니다 부모님과 나이 터울이 꽤 나는 여동생 둘이 있는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그냥 부모님께 받은 게 너무 없었어요 아빠 혼자 돈 벌어오시고 엄마는 아팠어서 전업주부셨고 해서 돈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원이나 과외 한번 못 하고 문제집 사서 혼자 공부했어요 아빠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지만 엄마는 공부 좀 했던 분이라 제가 공부하길 바랬고, 평소엔 다정했지만 공부하다가 졸면 책을 다 찢어버릴 때도 있었고 과목별로 점수가 다르면 잘 나온 걸 칭찬하는 게 아니라 못한 걸로 혼만 냈죠 다른 동갑인 친척 친구랑 비교하면서 혼내고... 그래도 주변 친구 엄마들이 저는 학원도 안 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 얘기하면 으쓱해하는 그냥 그런 분이였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가본 적도 거의 없고 노래방을 나쁜 애들만 가는 곳이라고 해서 성인이 돼서 처음 갔다고 하면 말 다했죠 또 공부도 공부인데, 그냥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제 외적인 거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초등학교 때부터도 옷도 제대로 안 사주고 그래서 친구들한테 놀림받고 다니고 중학교 땐 그게 더 심해서 반 친구들에게 꽤 크게 왕따도 당했어요 메이커 신발이나 바지, 가방, 패딩 이런 거 진짜 하나씩만 있어도 될 텐데 아무것도 안 사주고 반 애들은 거지면서 늘 욕하고 괴롭히고 저는 저대로 그래도 공부는 잘 하니까 자존감은 높았는데 늘 애들에게 무시만 당하니까 그게 너무 괴롭고 슬펐어요 머리스타일도 공부하는 애가 그런 거 신경쓰면 안된다면서 늘 스포츠 아니면 반삭, 진짜 아예 스스로 꾸밀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살았죠 늘 남들에게 무시만 당하는 것 같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잔뜩인데 물질적으로 너무 궁핍하니 정말 채워지지가 않더라구요 그 욕구가 수능을 치고 서울로 갈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 지원이 전혀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부산대 상경계로 진학했고 수능 치고도 바로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 벌고 등록금 내고 하다가 상경계는 제가 좋아하던 진로는 아니었는데 거기다가 이젠 알바를 하면 제가 그렇게 결핍되었던 외적인 것부터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 학교 다니면서도 야간 알바를 병행했고 학점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반수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가 워낙 완강해 결국 2학년 때 부모님 몰래 혼자 공부했어요 그 때도 공부에는 돈이 필요하니까 편의점 야간 주 5일동안 하면서 낮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설상가상으로 외갓댁에서 통학했었는데 외조부모님 두분 다 아프셔서 공부 마치고 돌아오면 두분 병원 모시고 가고, 하루에 두 세시간 자면서 그냥 그렇게 살았어요 결국 수능날엔 몸이 아파서 치러가지도 못했죠 군대는 가야 했는데 운이 좋게도 카투사에 붙어서, 가기 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노가다부터 공장 또 다니다가 군대에 갔습니다 저보다 학벌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저도 그 친구들만큼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좋은 대학에 가서 내 길을 찾아나가기 훨씬 좋았을 텐데, 그게 너무너무 서러웠어요 전역하고도 계속 방황했습니다 중간에 쉬었던 것들부터 학교 복학해도 커리큘럼을 따라가지는 못하겠고 결국 또 2년 가까이 휴학하고 공장에 다니다가 최근 퇴사했는데 소비 습관이 제대로 안 잡혀있다 보니 친구들이랑 술부터 여행 호캉스 같은 좋아하는 것들에 탐닉하니까 돈을 모으기는 커녕 카드빚이 1000만원이 넘게 쌓였어요 이제는 돌아가서 공부를 하고 진짜 진로를 찾아야 하는데, 앞으로 3년 가까이 또 어떻게 돈 없이 학교를 다닐지, 지금 카드빚은 또 어떻게 갚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제 자신이 너무 미성숙한 거 같아서 화가나다가도 그냥 막막하고 부모님도 원망스럽고 섭섭하고 온갖 마음이 다 교차해요 외국어를 배우는 걸 좋아해서 외교관 시험을 칠 생각인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그렇다고 이렇게 공부해놓곤 이런 공장이나 몸 쓰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보니까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제 동생들은 저보다는 훨씬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요 여자애들이고 첫째인 저를 워낙 엄하게 키웠다 보니 동생들은 오냐오냐에 학교 등록금부터 생활비도 좀 지원해 주고 저는 아직 제 길도 못 찾았지만, 부모님 생신 같을 때엔 호텔 뷔페에서 제 돈으로 가족들 식사도 자주 하고 이번 여름 휴가때엔 가족들 2박3일 여행 숙소만 100만원정도 잡고 제가 다 부담했고요 근데 뭐 고마워는 하는 것 같지만 제게 너무 관심이 없고 조금도 지원 안 해주려는 게 그게 너무 섭섭합니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거니 내려놔야 되는 건 아는데 그냥 지금처럼 힘들 땐 자꾸 그런 생각만 나요 ㅠㅠ 공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집안이 어려워서 어릴 때부터 혼자 열심히 살면서 벌써 부모님 부양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그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공부라는 건 부모님의 도움이 정말 없다시피 하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저 꿋꿋이 혼자 잘 해 나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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