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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머쓱) 이번에는 유명작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 1. 설렘이라니, 그 단어는 이름마저도 꽃잎처럼 부드러웠다. 유음인 리을이 설과 렘 사이에서 입천장을 긁으면서 부딪치고, 단어는 꼭 파들파들 떨리는 이파리처럼 발음된다. 그 달콤하고 연약한 감정들은 그가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억지로 억누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불쑥 튀어나와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들을 수는 부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선뜻 반길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 2. 염병할, 첫사랑이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인가. 배신감과 서러움이 뒤엉킨 단단한 덩어리가 뒤통수를 가격하고,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 취향 아니었고.” 무미건조한 음성이 허공에 선명하게 퍼져 나갔다. 그 순간 막이 씌워진 것처럼 주변이 차단되고 혼잡한 소음들이 잦아들었다. 소리가 사라진 무성의 공간에서 공의 말이 물결처럼 밀려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한참 늦게 말을 인식한 수가 귀를 의심하며 퍼뜩 고개를 들자 공은 기꺼이 눈을 맞춰 왔다. 거만하고 매혹적인 얼굴이었다.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본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육식 동물처럼 느긋하고 위험했다. 그에 홀려, 커다란 손이 시야를 가리고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마를 툭 밀고 아래로 떨어진 손가락이 신발 코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간단한 손짓에 왜 심장이 아릴 정도로 벌컥대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 취향이고.” - 3. “왜 그 집이에요? 막 영화 보면 애인한테 엄청 화려한 고층 아파트나 오피스텔 사 주고 그러던데요. 전세금은 안 올리셨지만 어쨌든 저는 원금 안 돌려받았으니까 공짜도 아니고.” “주면 받고? 딱 한 마디만 해. 너 구마다 집 가질 수 있어.” “서울 안에만 구가 20개도 넘어요.” “그래, 아직도 내가 구멍가게 사장으로 보인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 “그게 중요해? 그래, 계속 그렇게 한 척해. 너 진짜 대단한 새/끼야. 나 생전 처음 속아 봐.” “속인 적 없어요. 정말 제가 두 분 사이에서 정보 쥐고 줄다리기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제가 그렇게 영악한 사람이에요? 애초에 전무님이 그렇게 접근하면 넘어오기나 하는 사람이냐고요!” “넘어갔잖아!” 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공의 안색이 점점 더 형편없이 무너졌다. 놀라 굳어 있는 수를 향해 싸늘하게 이어 말했다. “내가 병/신처럼 넘어갔잖아.” - 4. “개가 될게요. 엎드려서 짖을게요!” 엎드리기 위해 몸을 굽히던 수의 상체는 공의 손에 팔을 붙잡혀 벌떡 일으켜 세워졌다. 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자 공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누굴 변태 새/끼로 만들려고 작정했습니까?” “공이 왜 변태예요, 잘못한 건 난데. 난 약속을 지키려고…….” “새파랗게 어린 애 침대로 끌어들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칠 지경이니까, 이상한 짓으로 자극하지 말아요.” “그럼 나 용서해 줄 거예요?” “아니요.” “그럼 짖을래요.” - 5. “나, 꽃을 따로 좋아한 적은 없는데.” “어? 꽃 싫어해요? 아, 그러게. 가져가기 귀찮으려나?” 당혹감을 띠고 나온 말에 수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줘서… 아니, 꽃다발을. 하….” “선배?” “꽃을… 너한테 처음 받아 봤어. 내 취향 같은 거 물어봤었지.” * “내 취향을 네가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아. 장미 빼고는 이름도 모르겠는데, 그냥… 세상에서 이게 제일 예쁜 것 같아.” - 6. 네 말이 맞아.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찾아오리라는 낙관이 볕처럼 드는 순간이 있더라도,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거라는 비관이 한 보 앞서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죽고 싶어지겠지. 그럼에도 나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으로 살 것이다. 사람의 다정함을 간직한 채, 정다움을 믿으며, 아름다운 압화처럼 간직한 채로, 소중하고 연약한 책갈피처럼, 그것이 인간다운 것이고 인간적인 것임을 믿으면서, 그렇게 살 거다. 설사 나의 앞날이 궁금하지 않더라도. 나는 숙제처럼 오늘을 풀어내고 내일을 기다릴 거야. 그러니 나는 깨어 있을 것이다. 이 어둡고 황막한 대지에 오직 나의 이 두 다리로 서 있을 것이다. - 7. “설마요. 그런데 그런 것도 다 기억해요? 사람이 왜 이렇게 마음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세요.” - 나 A형이라서 그래. 순간 수가 언성을 높였다. “A형이 뭐요. 설마 과학적 근거라고는 하등 없는 혈액형별 성격론을 신봉하시는 건가요? 공 님도 결국 바넘 효과를 맹신하는 사람이었네. 진짜 실망이다.” - 자기, A형이지? “네.” - 8. “바람 쐬고 오겠습니다.” “바람을… 쐬신다고요?” 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코트를 한쪽 어깨에 어중간하게 걸친 채로 문고리를 돌렸다. 반쯤 문밖으로 발을 내뻗던 그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문을 닫기 직전, 공은 미지근하게 희석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수할까 봐요.” - 9. “저녁때 올 거야?” ―오늘 안 돼. “아침에 잔뜩 장 봐 놨어. 형 올 줄 알고. 개/새/끼야.”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수는 불만 어린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장만 봐 놓고 요리는 나 시키면서 무슨 앙탈이야. 내일 갈게. 욕이 앙탈로 들리는 것을 보니 그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왜 못 오는데? 저녁만 먹고 가, 그럼.” ―당직이야. “지난번에도 당직이랬잖아. 당직이 원래 그렇게 자주 하는 거야?” ―누구 대신 서 주는 거야. “형 호구야?” - 10. “OO랑 사귀면서도…….” “…….” “애타는 눈으로 나를 봤잖아.” “…….” “내 앞에서 OO 입술을 비비면서도 너는 나를 쳐다봤어.” “…….” “너는 OO 사랑한 적 없어.” *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정말 버림받은 개/새/끼처럼 그를 쳐다봤던 모양이다. 숨기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잘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혹은 사실은 숨기고 싶지 않았던가. 그래, 나는 OO 사랑한 적 없어. 너한테 미쳐서 걜 사랑할 겨를도 없었어. - 11. 뒤쪽의 벤치에는 가죽 장갑이 한 켤레 남아 있었다. 그 신사가 저에게 주고 간 것인가 싶어 얼어붙은 손에 잠시 껴 봤으나 혹시 누가 잃어버린 물건일까,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놨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가져가더라도 자신보다 더 춥고 가난한 이가 줍기를. - 12. “제목. 잎사귀.” 다행히도 수는 미동이 없었다. “‘벽에 잎사귀라고 쓰고 사는 사람이 있어’” 공의 말끝이 살짝 떨렸다. “‘나는 평생 잎사귀 없이 살았어 잎사귀를 한 번 보면 잎사귀가 아주 중요해져 잎사귀는 잎사귀이기 때문에 중요해 알량하고 처량하지 않으려면’” * “‘그래서 나도 잎사귀라고 썼어 잎사귀라고 쓰고 나서 나한테도 잎사귀가 생겼어’” 소리 내 읽자 갑자기 가슴이 벅찼다. “‘이젠 내 밑으로 다 알량하고 처량해졌지 하하’” - 다 적고 보니 압도적으로 많은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참고로 내가 말하는 유명작은 익쏘방에서 상대적으로 언급이 많은 편인 작품이야!!! (주관적) 다들 자기 전에 재밌게 풀고 기분 좋게 잠들길 바라🖤 혹시 궁금한 작품있음 댓글 남겨줘 정답 공개 후에 삐삐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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