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요오미, 나랑 잠깐 얘기 괜찮을까?”
봄철 예선을 앞두고 한창 훈련과 연습을 반복 중이던 사쿠사를 잠깐 밖으로 불러낸 닝. 늦여름이지만 초가을과 겹쳐 일교차가 심해진 탓에 어둑한 저녁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 꽤나 날이 춥다. 급한 마음에 겉옷 없이 하복만 입고 저를 찾아온 닝을 흘긋 보고 혹여나 감기에 들지는 않을까, 춥지는 않을까 걱정하머 본인의 져지를 챙겨와서는 닝의 어깨 위에 살포시 걸쳐 주며 말을 건네는 사쿠사.
“응.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닝.”
"아, 나 키요한테 줄 게 있거든."
꽉 쥐고 있던 작은 주먹 속에 무언가가 보인다.
"요즘 여자애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오마모리 주는 게 유행이라고 해서..."
"곧 있으면 봄철 대회잖아. 별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키요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서... 생긴 건 조금 엉성해도 받아 주면 좋겠어."
요즘 운동부들 사이에서 오마모리를 받는 게 한창 유행이라고는 들었지만 다른 동료들이 여자 친구에게 오마모리를 받았다고 자랑했을 때 큰 관심은 없었어도 닝에게는 내심 받아보고 싶었던 사쿠사. 이렇게 갑작스레 깜찍한 오마모리를 선물 받아 행복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지만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 본다.
"... 아, 이거 닝 닮아서 그런가 너무 귀여운데. 고마워, 닝.“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쿠사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티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한껏 달아오른 귀가 사쿠사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 주고 있다. 닝은 내심 사쿠사가 티는 안 내도 좋아해 주고 있는 것 같아 뿌듯.
닝과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붙잡고 있다 마지못해 체육관으로 돌아와서 포커페이스로 닝이 만들어준 오마모리를 은근슬쩍 자랑해 보이는 사쿠사. 동료들은 그런 사쿠사의 속보이는 짓에 얘도 사람이긴 하구나 생각하며 속아 넘어가 준다.
"여어, 사쿠사. 그 오마모리 닝한테 선물 받았나 봐? 좋겠네.“
하면서 원하는대로 관심 가져 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 끄덕끄덕 세상 소중하다는 듯 품에 꼬옥 안고서는 하루 종일 주머니 속 오마모리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사쿠사.
2. 오아카와 토오루
“토오루. 나한테 손 줘 봐, 얼른.“
”짠! 내가 열심히 준비한 선물이야.“
에에-! 이게 뭐야, 닝쨩. 하면서 한껏 놀란 표정을 짓는 오이카와. 며칠 있으면 개최될 봄철 예선 대회에 출전할 오이카와를 생각하며 닝은 밤을 꼬박 새워 정성스레 오마모리를 만들었다.
"이거 말야... 내가 토오루 생각하면서 밤새 만든 오마모리야, 나 완전 짱이지."
"헤에-, 닝쨩. 하루 종일 오이카와 씨 생각만 하는구나?"
하면서 눈꼬리 접으며 능글맞게 웃는 오이카와. 부끄럽다는 듯 대답 없이 고개를 휙 돌리고는 대충 그런 거 아니거든! 하며 새침하게 대답하는 닝에 오이카와가 닝 앞에 눈높이 맞춰 허리 굽히고 서서 눈 마주치며 살며시 웃는다.
"이 오이카와 씨도 말이야, 하루 종일 닝쨩 생각만 하느라 너무너무 바빠."
“처음에는 나만 닝쨩 생각하는 줄 알고 조금 슬플 뻔했는데. 알고 보니까 우리 진짜 운명이었나 봐, 응?“
예쁜 오마모리 고마워, 닝쨩. 하면서 이마랑 볼에 번갈아가며 가볍게 뽀뽀 쪽쪽쪽 해 주는 오이카와에 닝은 처음에 한두 번은 그냥 받아주다가 결국은 계속 입술 갖다 대는 오이카와를 끝내 밀어내고 교실로 도망가 버린다. 그런 닝의 뒷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한참 멍하니 바라보며 푼수처럼 웃는 오이카와.
그리고 그런 오이카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이와쨩.
“...? 쿠소카와, 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건데.”
3. 카게야마 토비오
“저기 토비오, 지금 잠깐 나와 줄 수 있을까?”
인터하이 전국 대회 준비로 정신없이 연습만 주야장천 달리던 카게야마에게 닝이 체육관 문 앞에 바짝 서서 드링크를 마시는 카게야마에게 슬며시 말을 건넨다. 쉬지 않고 꼬박 반나절을 연습에만 매진한 탓일까, 카게야마의 목을 타고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흐른다. 땀에 흠뻑 적셔진 카게야마에게 혹시 몰라 준비해 온 타올을 건네며 닝은 마저 말을 이어간다.
“저번 인터하이 현 예선 통과해서 이번에는 전국 대회에 출전하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다름이 아니라... 사실 토비오한테는 이런 거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줄까 말까 고민 엄청 많이 했는데.“
평소의 당돌한 닝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카게야마는 그런 닝이 신선하면서도 오늘따라 더욱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여 저도 모르게 웃음이 푸흐흐 새어 나온다.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닝 선배가 주는 건데요. 솔직히 딱히 필요 없는 거라고 해도 상관 없지만요.“
”그래서 우리 닝 선배가 저한테 손수 주고 싶은 게 뭘까요.”
카게야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 위에는 닝을 닮은 듯한 아기자기한 오마모리가 놓였다. 오마모리를 처음 보는 사람마냥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듯 꿀떨어지는 눈으로 한참을 오마모리를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던 카게야마.
“... 닝 선배, 선배는 말이에요. 안 그래도 귀여운데 왜 또 이렇게 귀여운 짓만 골라서 거예요, 네?“
“저 앞으로 이거 없이는 경기 못 할 것 같은데, 어떡하실래요. 닝 선배가 평생 저 책임져요.“
카게야마는 닝을 품에 와락 안고서는 한참을 놓아주지 않고 그대로 닝 귀와 볼에 가볍게 입맞춤 해 주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닝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렇게 한참 닝을 제 품에 가두어두던 카게야마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닝을 보내준 후에 오마모리를 양손으로 소중하게 받쳐들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런 카게야마에게 히나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을 걸어온다.
“헤에, 카게야마 군. 웬 오마모리야? 딱히 필요 없어 보이는데 그냥 나 주라!”
토스 미스로 카게야마의 뒷통수를 가격했을 때도 이런 표정은 아니었을 텐데. 순간적으로 변한 카게야마의 싸늘한 표정에 겁을 잔뜩 먹은 히나타에게 카게야마는 최후의 일격을 날리게 된다.
“... 허어? 안타깝게도 히나타 보게가 가지고 싶다고 막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만.“
“나한테 배구만큼 소중한 거라서.”
괜한 성질까지 한바탕 부리고 난 후에야 손바닥 위에 놓인 자그마한 오마모리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닝을 떠올리게 된 카게야마의 목덜미가 새빨간 토마토처럼 익어간다. 사랑이란 이런 걸까, 처음으로 간질간질하게 기분 좋은 울렁거림을 경험하게 되는 카게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