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까진 그나마 주변 애들이랑 그럭저럭 잘 어울리면서 나름 행복하게 살았었음. 문제는 중1때부터였음. 그때 내가 중2병이 좀 빨리왔는지는 몰라도, 흔히 말해서 '나대는 찐따'처럼 행동하고 다님. 수업시간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상한 드립 치고, 싫다는 애들한테 계속 들러붙고.
외모도 전혀 관리 안해서 여드름 투성이 얼굴+안 감아서 떡진 머리+작은 뿔테 네모 안경+이틀에 한 번 씻어서 냄새 나는 몸을 가진 거의 환장의 콜라보 급으로 하고 다님.
이러다보니까 자연스래 ㅇㅇ반에서 찐따 하면 생각나는 사람처럼 되버려서 친구 없이 다니게 됨. 가끔 반 일진들한테 맞거나(심하게 맞은 건 아님) 놀림당하다보니 자존감도 쭉 떨어지고, 덕분에 지금까지 지속되는 말더듬 증세까지 얻음. 그때 그 새끼들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음. 가끔 길 가다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더라. 정작 걔네들은 나 보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인사하고 잘 지내냐고 얘기 건냄.
그렇게 살던 나는 2학기 기말이 끝난 날, 나만 빼고 삼삼오오 모여서 피시방 가고 학교 근처 번화가인 대학로로 놀러가고 하는 애들을 보면서 내 인생이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뒤늦게 직감함. 그때 한창 즐겨하던 인터넷 커뮤인 디시위키라는 곳에서 우연히 찐따 문서를 보게 됐는데, 거기 써 있던 찐따 특징이랑 내가 정확히 일치하는걸 알게 됨.
그때 좀 많이 충격 먹고 내가 생각한 내 문제점을 방학 동안 하나하나 고치기 시작함. 머리 감기랑 샤워는 무조건 하루에 한 번은 하고, 여드름은 비누세수로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함. 안경도 그때 유행하던 크고 동그란 안경으로 바꾸고 멸치인 체형 바꾸려고 많이 먹고 집 근처 격투기 도장에서 운동도 시작함.
어쨌든 중2 개학할 때쯤 되니까 최소한 겉으로는 볼 만 하게 변했고 개학해서 새로운 반의 새 친구들이랑 행복하게 학교생활하는 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중1때 쌓았던 찐따라는 이미지는 변함이 없었고, 나는 중2때도 혼자 다니게 됨. 다행히 중1때랑 다르게 대놓고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어서 걍 투명인간 1이었음.
사실 내가 딱히 먼저 애들한테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중1때 나대다가 이렇게 된 기억이 너무 심하게 남아있어서 그냥 누가 가뭄에 콩 나듯 말 걸면 거기에 답하기만 함. 그러다 학기 초에 동아리 모집할 때 영화 감상부에 들어갔었는데, 그게 내 인생에서 신의 한 수가 되어버림. 거기서 다른 반 친구들 몇 명을 만났는데 걔네는 내가 말을 더듬음에도 놀리지 않고 잘 대해줬고,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친구라는 걸 사귐.
하지만 걔네는 어디까지나 동아리 안에서만 노는 친구 였을 뿐 우리 교실에서 난 여전히 외톨이였음. 그래도 1주일에 한 번 동아리 활동하는 2시간 만큼은 행복했음.
그렇게 중3으로 올라갔는데, 새로운 반으로 들어가니까 동아리에서 사귄 친구 중 2명이 같은 반이 되었음. 나는 그 친구들이랑 중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밥을 먹어봤고, 처음으로 무리 지어서 같이 다니며 시험 끝나고 대학로나 피시방으로 놀러가봤음. 거진 3년만에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걸 느꼈다.
이 친구들이랑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하면서 가끔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함. 1월 1일때도 얘네랑 만나서 술 먹었었음. 하여튼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좋은 친구들임.
고등학교는 근처에 있는 남고로 들어감. 그 동아리 친구 중 1명도 같이 들어갔는데, 타이밍 참 뭣같게도 코로나가 터져버림. 덕분에 6월인가? 까지 집에서만 온라인 수업하는데 진짜 았음. 학교 개학하고 나서는 다행히 새로 친구 몇 명을 사귀어서 같이 다녔고, 학원에서 처음으로 여자인 친구도 사겨보게 됨(애인 말고 사친). 지금 빼면 중3~고1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다.
문제는 고2때 터져버림. 새로운 반으로 들어가는데, 중1때 나를 괴롭힌 새끼 중 1명이 같은 반이 됨. 걔가 정신을 차렸는진 몰라도 나를 괴롭히진 않았는데, 보는 것 만으로 스스로가 움츠러들고 그랬음. 고1때 친해진 애들과도 싹 다 다른 반 됐고, 걔를 보고 더 심해진 말더듬까지 쓰리 콤보로 겹쳐서 동아리에서 그나마 친해진 애들 말고는 혼자 다녔음.
고3때도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 않음. 고2때 얻은 문제점+입시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불안장애가 터졌고, 덕분에 심할 때는 집에서 거의 맨날 엄마한테 매달려서 불안하다고 울고 급기야 정신과에 가서 약물치료까지 함. 이때 내 국어과외쌤이 은인이었는데, 그 쌤도 고3 졸업한지 얼마 안 된 분이라 고3이 힘든 걸 잘 알고 계셨고, 성격도 좋은 분이라 내 성적도 올려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위로해주심. 솔직히 이 선생님이 나한테 해주신 게 한 두번이 아니라 본표 감수하고라도 나중에 따로 글이라도 쓰고 싶다. 우리 부모님도 아직까지 그 선생님이 내 인생에 은인이라고 하고 수능 보고 마지막 수업 하던 날에 보너스로 1달 치 과외비를 더 챙겨주심.
엄마, 과외쌤, 중3때 친구들의 도움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공부를 이어나갔고, 수능 당일엔 원래 맞던 성적보단 쬐끔 망하긴 했지만 인서울 중위권 공대에 합격함. 살면서 부모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건 처음 봤음. 엄마는 말 그대로 나 끌어안고 우시고 아빠는 퇴근 길에 마트에서 한우 사오셔서 집에서 구워 먹으면서 파티함.
다만 아쉬운 건 내 중3때 친구들 중 1명 빼고는 재수를 하게 됨. 이 친구들은 공부를 그닥 잘하지는 않아서 결국 대부분 지방사립대를 갔고 1명만 지거국으로 갔더라.
이왕 대학교에 들어가는 김에 외모관리 좀 더 해봐야지 하고 렌즈를 끼게 됐고, 내가 봐도 내 외모가 한 1.5배는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여드름이랑 피부 트러블도 그때 기점으로 거의 완전히 사라졌고.
대학교 들어가서는 말 더듬, 중1때 이후로 조용해진 성격 때문에 막 인싸는 되지 못해도 주변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그럭저럭 다니고 있고, 비록 서로의 사정 때문에 사귀지는 않았지만 나 좋다는 여자도 생기고 학업적인 목표도 이루는 등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불안장애도 대학교 붙으니까 거짓말같이 사라짐. 지금은 약도 끊었고 오히려 이걸로 신검 때 공익 판정을 받음. 대외적으론 눈 때문에 받았다고 거짓말 하고 다니고 이건 가족들 말고 아무도 모름.
아무리 자신이 생각하기에 본인 상황이 안 좋아도, 인생이 망한 것 같아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살아가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하고 싶음. 나 같은 사람도 했으니까. 읽어주셔서 고맙고 이만 이야기 마무리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