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의 난’으로 불리던 하이브-어도어 분쟁이 하이브의 어도어 이사회 장악으로 일단락된 가운데 이번 사태를 두고 하이브가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도입한 멀티 레이블 체제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하는 말들이 나온다.
| 완벽한 수직계열화 추구한 하이브
하이브의 멀티레이블은 모회사인 하이브가 자회사인 주요 레이블을 수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는 게임업계의 개발 스튜디오 자회사 체제와 유사하다.
실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첫 기자회견이 진행된 4월 25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게임 라운지에는 ‘게임업계가 망한 스토리가 그대로 있네’, ‘게임업계와 똑같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들은 현재의 하이브 구조와 사업 진행 방식을 두고 한국의 게임사와 같다고 봤다.
게임 스튜디오의 경우 자회사별로 각각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러다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게임 출시 후 시장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담당 인력을 다른 프로젝트로 전환배치하거나 권고사직한다. 다만 차이는 하이브가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자회사 권고사직과 함께 폐업한 사례가 없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 "어도어만 예외네"
하이브는 각 레이블별로 7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주요 레이블 이사회는 모두 본사(하이브) 임원진으로 구성된다.
특히 빅히트뮤직(방탄소년단·투모로우바이투게더)과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세븐틴·프로미스나인·투어스), 쏘스뮤직(르세라핌), 빌리프랩(엔하이픈·아일릿), 케이오지 엔터테인먼트(지코·보이넥스트도어) 등 하이브의 주요 레이블 대표에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박지원 하이브 대표 측 인물이 차지하고 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만이 하이브의 완벽한 수직계열화 구조 속 유일한 결점인 셈이다.
하이브의 레이블별 지배구조와 경영진, 이사회 구성은 레이블별 자율 경영이 사실상 힘든 구조다. 주주총회, 이사회를 통해 회사의 경영상 판단을 의결해야 하는 모든 사안은 어도어를 포함한 레이블 전부가 다 본사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셈이다.
| 기묘한 구조에서 나온 3가지 논란
하이브의 지배구조상 문제는 명확하다. 수직형 지배구조로 구성된 멀티 레이블 체제를 통해 어떻게 레이블별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나온 어도어, 빅히트뮤직,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3가지 논란이 각각 다르다는 것도 체제가 불안정한 증거로 보인다.
우선 어도어 논란은 민희진의 난으로 불린 이번 사태를 말한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독립 시도 정황을 포착했다며 그를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어도어는 다른 레이블과 달리 하이브가 직접 출자해 설립한 법인이고 대표가 자사 지분 18%를 보유한 유일한 레이블이다. 다른 레이블보다 어도어에 많은 자율성을 보장한 셈이다.
빅히트뮤직 논란은 방탄소년단(BTS) 진의 ‘허그(포옹)회’ 응모 기준을 둘러싼 사건을 말한다. 빅히트뮤직은 6월 2일 위버스 공지사항을 통해 진이 군 제대 후 처음으로 팬을 대면하는 이벤트 ‘2024 FESTA’ 1부를 아티스트 본인의 요청에 따라 1000명의 팬을 직접 포옹 또는 악수하는 행사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해당 행사 응모 기준이 ‘응모 기간 중 위버스샵을 통해 2022년 6월 프루프(Proof) 음반 이후에 발매된 BTS 역대 음반 구매 및 이벤트 응모 완료 고객’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빅히트뮤직이 진의 팬덤에 진의 음반을 제외한 다른 BTS 멤버 솔로 음반까지 구매를 강제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기간 진의 솔로 음반은 2022년 10월 발매돼 100만장 이상 판매된 ‘디 애스트로넛(The Astronaut)’뿐이다.
이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2차 기자회견에서 ‘음반 밀어내기’ 관련 질의응답이 오간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하이브가 빅히트뮤직의 세세한 의사결정 과정에 모두 관여했다면 민희진 대표와 갈등 상황 중에 이 같은 논란이 생겨서는 안 되는 셈이다. 오히려 하이브가 빅히트뮤직의 자율 경영을 너무 보장하고 있어서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논란은 또 다르다. 6월 3일부터 글로벌 플로버 연합은 하이브 용산사옥 앞에서 트럭시위 및 근조화환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다혜 전 빅히트뮤직 부대표가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취임하고 2022년 말부터 프로미스나인을 위한 회사의 기본적인 지원이 대폭 축소 또는 중단됐다는 이유다.
플로버 연합은 이다혜 대표가 모회사 하이브의 지령을 받아 이 같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이다혜 대표 취임 직후까지만 해도 음반 판매량 등 주요 사업지표가 상승세여서다. 이들은 보통 기업이 연초에 미리 사업계획을 세우므로 2022년 3월 취임한 이다혜 대표가 2022년 말부터 경영상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봤다.
실제 이다혜 대표 취임 후에 발매된 음반 ‘언락 마이 월드(Unlock My world)’는 프로모션 콘텐츠 개수가 이전 음반 대비 절반쯤으로 줄었다. 지난해 기준 프로미스나인 공식 유튜브 영상 개수 및 길이도 모두 2022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자신이 자회사 사장 이전에 어도어 대표라면서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한다”며 “빅히트뮤직은 모회사 하이브가 모든 경영 행위에 실제로 잘 관여한다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다혜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하락세가 아니라 상승세인 아티스트 지원을 줄이면서 항의를 받고 있다”며 “하이브 멀티 레이블 체제가 빈틈투성이인 건 확실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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