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욕설(辱說). 사전적 의미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숱한 말보다 간결한 욕설 한 마디가 더 정확하게 감정과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하죠.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편한 지인들과 용인된 자리에서 주고받는 욕설은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불편함을 주기보다는 ‘시원한 일침’으로 읽히기도 하죠.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보죠. 한 홈쇼핑의 간판 쇼호스트였던 정모 씨는 지난해 초 욕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화장품 판매 생방송 도중 매진을 달성했지만, 방송을 조기 종료할 수 없다며 "XX, 나 놀러 가려고 그랬는데"라며 욕설을 내뱉었죠. 제작진이 이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사과와 정정을 요구했지만, 정씨는 "예능처럼 봐달라. 홈쇼핑도 예능시대가 오면 안 되느냐"고도 오히려 당당한 자세를 취했는데요.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를 문제 삼는 민원이 접수됐고, 방심위 광고심의소위원회는 해당 방송에 대해 법정 제재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해당 홈쇼핑은 정 씨에게 자사 방송 무기한 금지 처분을 결정했죠.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정 씨가 또 다른 홈쇼핑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시청자들은 불매 의사를 밝히며 반발했는데요. 결국 이 홈쇼핑 역시 부랴부랴 "출연 안하기로 했다"고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왜 갑자기 욕설 논란을 꺼내냐고요? 최근 공적인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욕설을 내뱉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큰 불을 지핀 이는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인데요. 민 대표는 지난 4월 기자회견을 열고 모기업 하이브 경영진을 성토하는 과정에서 "들"이라고 외쳤죠. 또한 "씨X X끼"란 표현 뿐만 아니라 "맞다이로 들어와" 등 상식적인 시선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가감없이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이 기자회견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 방송사들이 생중계했던 터라 여과없이 대중에게 노출됐죠. 뉴진스의 팬들 중 상당수가 10대 임을 고려할 때 미성년자들이 이런 욕설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입니다.
최근 가수 겸 배우 비비 역시 부적절한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죠. 축제 시즌을 맞아 비비는 한 대학교 축제에 초대받았는데요. 그는 자신의 히트곡인 ‘나쁜X’를 부르기 전 "학교 재밌어요? 학교 싫은 사람? 학교 X같은 사람?"이라고 운을 뗀 후 "여기는 욕해도 되나, 내가 나쁜X 하면 미친X이라고 해달라"고 외쳤습니다.
원래 비비의 ‘나쁜X’은 비속어가 난무하는 노래이긴 합니다. 그래서 그 흥을 돋우는 과정에서 비비가 수위높은 멘트를 하곤 하는데요. 그래서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개인 SNS를 통해 "분위기 신나게 하려고 ‘나쁜 X’ 노래하기 전에 하는 악동 같은 멘트가 항상 있었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너무 흥이 돋아서 평소 하던 멘트가 잘못 나간 것 같다, 죄송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 예쁘게 봐달라, 항상 감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비비의 행동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요. 비비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평소 캐릭터를 놓고 봤을 때,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두둔 의견도 적지 않죠.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해당 대학에 다니는 모든 재학생이 비비를 알 순 없는데요. 아울러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학교 X같은 사람?"이라며 호응을 이끌어내는 비비의 언행에 눈살부터 찌푸렸을 법합니다.
이 ‘막말 대잔치’에는 배우 고준희가 합류했는데요. 지난 11일 공개된 한 영상에서 고준희는 과거 ‘버닝썬 게이트’에 이름이 연루됐던 때를 떠올리며 억울함을 토로했죠. 그 과정에서 가해자들을 향해 "X놈의 "이라고 수위 높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는데요. 그는 "저는 버닝썬이 어딨는지 모르고, 가본 적도 없다. 몇 년동안 저는 아니라고 얘기를 계속 해왔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재차 특정 인물에 대해 "X놈의 XX"라고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고준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그가 느꼈을 심적 고통은 꽤 컸을 텐데요. 그렇다고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콘텐츠에서 상스러운 말을 쓰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죠. 오히려 이 영상을 보며 공감대를 형성하던 이들이 갑작스러운 욕설에 반감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입니다. 앞선 쇼호스트 정 씨의 제재 사례처럼 방송법의 범주 안에 있는 프로그램의 경우 통제가 가능하죠. 하지만 유튜브를 비롯해 각종 SNS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속 욕설 및 비속어는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는데요. 이를 악용해 ‘욕하는 것’이 마치 ‘쿨한 것’처럼 선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입니다. 아직 정서적 발달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유명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는 욕설은 "아∼ 이래도 되는구나"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데요. 교복 입은 아이들이 길거리를 지나며 친구들과 주고받는 욕설에 깜짝 깜짝 놀란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건 결코 ‘꼰대 마인드’가 아니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자세, 그리고 안 해야 할 언행은 하지 않는 하는 자제력. 이는 ‘꼰대’가 아니라 ‘어른’이 갖출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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