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위약금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소속사인 어도어와 하이브에게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며 계약을 깨겠다는 사람은 당연히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반면에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말로만으로는 멀쩡한 계약을 없던 일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뉴진스는 어도어와 하이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면 공이 소속사로 넘어가는데, 어도어도 당장은 소송을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어도어에게 뉴진스는 절대적인 자산이기 때문이다. 뉴진스가 나가면 회사가 망할 판이다. 그래서 소송 대응은커녕 어도어는 지금 뉴진스 홍보에 나서며 뉴진스의 내년 활동계획까지 짜고 있다고 한다.
최근 어도어가 뉴진스의 최후통첩에 보낸 응답서도 거의 뉴진스에게 매달리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이니 당장 소송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에게도 뉴진스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뉴진스에게 저자세다. 뉴진스가 최근 하이브에게 각을 세워왔고 계약해지 선언까지 했어도 뉴진스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계약해지 선언을 했어도 이렇다 할 변화 없이 뉴진스는 예정된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된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케이팝 업계에도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이런 혼란을 계속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 뉴진스가 깔끔하게 소송을 제기해서 이기면 사태는 간단히 정리된다. 뉴진스는 당당하게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어도어와 하이브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증거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당당하면 소송을 걸어서 그걸 인정받으면 된다. 어도어와 하이브의 잘못이 확인되면 위약금을 내지 않고 계약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뉴진스 이름도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원래 뉴진스라는 팀과 이름이 모두 하이브의 자산이다. 뉴진스 팀원들이 계약을 깨도 뉴진스 이름의 권리는 여전히 하이브에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 하이브의 잘못이 확인되어 하이브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뉴진스는 국민적 성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론의 질타에 부담을 느낀 하이브가 뉴진스 이름까지 멤버들에게 넘겨줄 수 있다. 위약금 없는 계약해지와 이름 사용권까지, 뉴진스 멤버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할 방법이 바로 소송이다. 보통 억울하고 당당한 쪽에서 소송을 걸어 억울함을 푼다. 당당하지 못한 쪽은 섣불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금 당당하게 소속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으니 당연히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소송을 안 하면서 혼란을 지속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완전한 계약해지 등을 얻어낼 시점을 늦춘단 말인가? 이러면 말은 당당하게 했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당당함을 법정에서 인정받을 자신이 없어서 소송을 못 건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그것 외에는 소송을 피할 이유가 없다.
앞에서 이 사태로 인해 케이팝 업계에 불안이 가중된다고 했다. 아티스트가 법적인 부담도 없이 손쉽게 말로만 계약해지를 선언해도 되는 풍토라면, 어떻게 큰돈을 투자해서 아티스트를 키울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 전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나라에선 말로만 계약해지를 선언하면 되는 것인가?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도 뉴진스가 소송을 걸어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거기에서 소속사의 잘못을 인정받으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케이팝 기획사들은 안심하고 영업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현 상황에서 언론이 '묘수를 냈다, 허를 찔렀다'라는 식으로 뉴진스의 기행을 정당화하는 듯한 기사들을 내는 건 문제다. 앞으로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묘수를 내고 허를 찔렀다가는 케이팝 업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 언론은 당연히 뉴진스가 정도를 가도록 도와야 한다. 당당하게 소송에서 그들의 주장을 인정받는 것이 뉴진스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다. 그러면 온갖 억측과 비난에서 벗어나고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https://naver.me/GI3R3m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