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LASSIC IDOL
아이돌과 음악성은 별개의 단어일까? 평론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 음악평론가들에게 아이돌의 음반은
‘불가촉천민’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음악을 굳이 거론하려 하지 않았고, 실제로 얘기할 만한 ‘꺼리’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음악평론가들이 앞다투어 TV와 신문, 잡지를 통해 아이돌 문화와 음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음악에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으면 ‘쿨하지 못해 미안’한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돌 음악의 질적 향상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테디, 쿠시, 켄지, 용감한 형제, 신사동 호랭이, 지누(히치하이커) 등 젊은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는 분명 잘 만들었고, 이런 웰-메이드 음악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음악평론가들이 음악적으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돌 음반은 어떤 것일까?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평론가 10명에게 음반(EP 이상)을 5장씩 골라줄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를 합산해 상위 5장의 음반을 꼽았다.
참여한 분들: 강일권, 김윤하, 김작가, 김학선, 서정민갑, 이경준, 이대화, 이민희, 차우진, 최지선
1.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 (2009)
가요를 들으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선 그것을 열등하게, 하급으로 취급하던 사람들에게 통렬한 카운터펀치를 날린 수작. 매끈하고 세련된 편곡과 당장에라도 댄스판을 벌여야 할 것 같은 그루브를 가진 시그너처 송 ‘아브라카다브라’는 단숨에 시건방춤을 전국에 유행시켰으며 2009년 최고의 싱글 중 하나가 되었다. 그야말로 잘 빠진 송라이팅의 승리요, 노래를 만든 지누와 이민수가 거둔 쾌거이기도 했다. 후속타였던 ‘Sign’ 역시 부채춤이라는 재미있는 안무와 흥겨운 리듬감을 앞세워 많은 인기를 모았다. 그 외 다른 지점들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었으나, 이처럼 막강한 원투 펀치를 가졌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이 있었느냐는 점에서 음반은 후한 점수를 획득했다. 그에 힘입어 앨범은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을 거머쥐는 영예까지 얻었다.
(이경준/ 음악평론가)
2. 투애니원(2NE1) <1st Mini Album>(2009)
2009년의 여름을 기억한다. ‘여자 빅뱅’, 혹은 빅뱅의 수혜를 받는다는 오해는 딱 이 EP를 내기 전까지만이었다. 투애니원은 이 첫 번째 EP와 함께 2009년 여름과 가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투애니원은 그동안 등장했던 ‘예쁘장한’ 걸 그룹들과는 다른 에너지가 있었다. 그 에너지가 아니었다면 같은 강렬한 싱글이 이들에게 그렇게 잘 어울릴 순 없었을 것이다. 테디와 쿠시가 만들어낸, 힙합과 일렉트로닉을 오가는 트렌디한 비트와 멤버 각자의 개성이 어우러진 이 EP는 좋은 싱글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아이엠이 투애니원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기사가 허튼 ‘언플’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EP가 그만한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선/ 웹진 <보다> 편집장)
3. 보아(BoA) (2002)
월반한 천재와 다를 것 없었던 보아의 십대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낸 앨범. 오리콘에 제대로 입성해 ‘국위 선양’이라는 거창한 전제로, 데뷔 이후 양산된 여러 굶주린 안티를 일순간 열혈 애국자로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 사실상 앨범의 성과이기 이전에 대표곡 ‘No. 1’의 성과였을 텐데, 좌우간 이로써 보아는 한일 양국이 모두 동의하는 넘버원이 되었다. 드문드문 경쾌한 진행이 있고(후속곡 ‘My Sweeite’), 깊이의 가창력을 선보이기도 하지만(발라드 ‘My Ginie’), 앨범은 대체로 의 노선을 따른다. 당시 유행하던 브리트니 풍의 미국 팝, 그리고 부단한 연구를 거쳤을 일본의 댄스곡을 레퍼런스로 삼은 셈. 실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프로그래밍과 서글픈 듯 안정된 멜로디가 팽팽하게 앨범의 전반을 채우고 있다.
(이민희/ 음악평론가)
4. 태양 (2008)
2000년대 중반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해 아이돌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린 그룹
빅뱅. 그 중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건
지-드래곤과 탑이었다. 무려 송라이팅이 가능한 아이돌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패션 아이콘 지-드래곤과 훤칠한 외모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탑을 둘러싼 소란들 속에서, 태양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첫 미니 앨범 을 발표한다. 모두가 놀랐다. 다섯 명 사이에 있을 때에는 그저 평범해만 보이던 이 보컬리스트가 가진 재능이 이 정도일 줄이야. 한국이 아닌 본토의 누군가를 데려와야만 비교가 가능할 넘치는 끼와 매력은 앞으로 10년을 바라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맹세컨대, “내가 바람피워도 너는 절대 피우지 마”라는 씨도 안 먹히는 노랫말은 오로지 태양이기에 가능했다. (김윤하/ 음악애호가)
5. 샤이니(Shinee) (2009)
‘누난 너무 예뻐’라든가 ‘산소 같은 너’를 부를 때의 샤이니는 그저 ‘연상녀를 위한 맞춤 아이돌’의 이미지였을 뿐이다. 적어도 ‘링딩동’을 부르기 전까진 말이다. 이전 곡들이 크리스 브라운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다면 이 앨범 이후, 그러니까 2009년 말부터 샤이니의 음악은 릴 존이나 루다 크리스 등에 더 근접했다. 말랑한 알앤비 팝에서 직설적인 더티 사우스 힙합 비트를 적용한 음악적 변화는 샤이니를 무성적인 소년들에서 자기과시적인 남자로 바꿔놓았다. 특히 ‘링딩동’과 ‘Jojo’는 아프리카 리듬과 1980년대 하우스 비트를 21세기적으로 변용한 가요의 모범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데 유영진과 켄지가 수용한 레퍼런스의 범위를 가늠할 만한 예로 적절할 것이다. (차우진/ 음악평론가)
WRITER_김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