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워지는 날씨. 바야흐로 호러 시즌이다.
최근엔 여름이 되면 당연히 공포영화 대여섯 편 쯤은 선을 보이지만
사실 한국 극장가에서 공포영화가 시즌 트렌드로 자리 잡은 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1998년 [여고괴담] 이후에 생겨난 일이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죽어 있던 한국의 공포영화 장르는 여고괴담을 계기로 부활했다.
20위 여고괴담
피 흘리는 교실 장면
이 한스러운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은영(이미연)과 지오(김규리)가 부둥켜안고 있는 교실에선 교실 벽을 흥건히 적시는 피가 흐른다.
이것은 긴 세월 동안 학교를 맴돌았던 원혼에 대한 위로의 눈물일까?
2등만 하던 그 아이는 유령이 되어 다시 학교를 찾았고, 고개를 돌려 관객을 쳐다본다.
19위 얼굴 없는 미녀
얼굴 없는 미녀 장면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만들어진, 얼굴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한쪽 눈과
한쪽 측면만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석원의 환각이겠지만 너무나 생생한 비주얼이다.
18위 스승의 은혜
지하실 장면
토끼 가면을 쓴 연쇄살인마의 첫 희생자는 세호(여현수)였고
해변에서 사냥하듯 세호를 포획한 살인마는 지하실에서 끔찍한 고문을 시작한다.
커터 칼도 무서운데 뜨거운 물까지 들이 붓는 한국영화에선 보기 드문 '쎈' 장면이었다.
17위 불신지옥
신 내림 장면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인 불신지옥(2009)은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있지만 신 들린 소녀 소진(심은경)의 이미지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소진은 작두가 아닌 의자 등받이 위에 서서 말한다.
"이제 죽겠네. 너희들 다 죽는다고..."
소녀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한다.
16위 기담
아사코 악몽 장면
데뷔작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정가 형제(정식, 정범식)의 기담(2007)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세 개의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아사코(고주연)가
죽은 엄마(박지아)의 끔찍한 모습과 대면하는 악몽 장면은 잊을 수 없다.
15위 검은 집
지하실 장면
기시 유스케의 원작을 신태라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마치 도살장과도 같은 신이화(유선)의 지하실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준오(황정민)는 자동차 열쇠로 이화의 눈을 찌른다.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지만, 그녀 역시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다.
하지만 눈에 박힌 자동차 열쇠를 서서히 빼내는 그녀의 모습엔, 알 수 없는 악마의 기운도 느껴진다.
14위 분홍신
오프닝 장면
한국 공포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 중 하나는 분홍신의 시작이다.
지하철 역에 놓여 있는 분홍신 한 켤레.
두 명의 여고생은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는데, 그 신발은 신은 학생은 결국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압축적이면서도 영화의 테마인 '탐욕'과 그 대가를 효율적으로 전하는 임팩트 있는 장면이다.
13위 령
지원 집 장면
모든 악몽 같은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 지원(김하늘)은 집으로 돌아와
포근한 엄마(김해숙) 품에 안기는데 엄마는 갑자기 싸늘한 어조로 말한다.
"끝나긴 뭐가 끝났다는 거야. 이제 시작인데..."
그러면서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고 물을 토해내기 시작하는 엄마.
'물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중견배우 김해숙의 신 내린 듯한 연기는 놀라움 이상의 놀라움을 보여준다.
12위 장화, 홍련
악몽 장면
숱한 명장면을 지닌 김지운 감독의 2003년 작품이다.
수미(임수정)의 악몽에 나타난 검은 옷에 긴 머리의 피 흘리는 귀신은
호러 영화의 전형적인 귀신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빠른 편집과 사운드 효과를
수반하지 않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극도의 공포감을 자아낸다.
마치 거인처럼 수미를 압도하는 귀신.
수미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11위 여고괴담 2
지붕 장면
장화, 홍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호러 영화인 이 영화 역시 수많은 명장면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 중 하나는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이 함께 있는 공간인 지붕에서의 이미지다.
그들에겐 유일한 해방의 공간이었을 그곳을 잘 묘사하였다.
10위 4인용 식탁
투신 자살 장면
투신 자살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면?
그것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몽일 것이다.
영화 속의 정연(전지현)은 그 악몽을 경험한다.
그것도 슬로 모션 속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이후 그녀의 내면은 조금씩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9위 소름
모텔 장면
윤종찬 감독의 소름(2001)은 잔인한 살육, 끔찍한 유령과 난도질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으스스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특히 이 영화는 배우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후반 부에 롱 쇼트로 5분 25초 동안 이어지는
롱 테이크 신은 선영(장진영)과 용현(김명민)의 관계가 어떻게 붕괴되며 어떤 결말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관등성명 장면
이 영화의 절정 부분은, 모두가 미쳐가는 상황 속에서 관등성명을 대라는
최 중위(감우성)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이어지는 장면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그리고 한 구석에서 무전기는 치직거리며 피를 흘리고 있다.
전쟁의 공포스러운 사연을 이처럼 잘 표현한 장면은 흔치 않다.
마지막 장면
한국 공포영화에 수많은 반전이 있었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처럼
논리적이면서도 관객을 미로 속으로 빠뜨리는 엔딩은 많지 않았다.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왜곡시키고 정반대의 세계를 제시하는 거울의 세계.
거울과 거울이 반영하는 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세계는 과연 어느 곳일까?
영혼 결혼식 장면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의미의 제목이지만, 기담의 이미지들은
기이함과 섬뜩함과 아름다움이 조합된 독특한 결을 지니고 있다.
영혼 결혼식 장면도 마찬가지다.
시체 보관소에서 귀신에 의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빨려들어간 정남(진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 결혼식의 신랑이 되고, 이 환상 같은 사건은 그의 인생을 지배한다.
마지막 장면
하지원을 단숨에 호러 퀸의 자리에 앉혔으며, 안병기 감독이라는 호러 전문가를
소개한 이 영화는 세흘이 흐른 지금 보아도 꽤 무섭게 볼 수 있는 공포영화다.
특히 경아(하지원)의 역습이 시작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영주(은서우) 가 나오는 모든 장면
수많은 아역 배우들이 호러 장르를 거쳐갔지만 [폰]에서 영주 역을 맡은 은서우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배우는 없다.
여섯 살 꼬마의 연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눈빛과 뉘앙스와 강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 은서우.
안병기 감독의 두 번째 호러로, [가위]보다 임팩트가 덜할 뻔했던 이 영화는 은서우에 의해 구원 받는다.
3위 여고괴담 2
아수라장 장면
학교 안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며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는 그 광경을, 효신(박예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 본다.
공동 연출을 맡은 김태용 감독과 민규동 감독은 데뷔작에서, 신인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대담한 비주얼과 장면들을 연출하는데 이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1999년 당시 매끄럽지 못했던 컴퓨터그래픽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 아우라는 대단하다.
2위 장화, 홍련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
"혹시?" 혹은 "설마?"의 심정으로 이 장면까지 영화를 봤던 관객에게
다가온 반전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슬픈 감정의 그 무엇이었다.
수미(임수정)에게 수연(문근영)은 어떤 존재였을까?
진실이 밝혀진 후, 조금씩 흔들리는 카메라 안에서 보여주는
문근영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지니고 있다.
1위 여고괴담
학교 복도 장면
"쿵!쿵!쿵!쿵!" 심장을 울리는 듯한 이 소리는, 아마도 한국 공포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사운드일 것이다.
은영(이미연)에게 빠른 구분 동작으로 다가오는 재이(최강희).
당시 극장에서 수많은 여학생들의 비명을 만들어낸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모방되었지만 여고괴담의 그 복도만큼 무섭진 못했다.
이 장면을 뛰어넘는 한국 공포영화의 명장면은 과연 언제 나올 수 있을까?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