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준 / 항복
넋 놓고 당신을 보았다.
이러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이미 천둥 같은 잔상은 가슴에 아로새겨
당신을 잊고자 하는 이 내 단념을
부단히도 무찔러
항복시켰다.
서덕준 / 먼지
먼지가 날아 네 어깨에 앉았다.
순간 저 먼지라도 되고 싶었던
내가 너무도 한심스러웠으나
생각해보니 이미 네게
나는 한 올의 먼지일 터니
상관 없겠구나, 싶었다.
서덕준 / 공복
끼니도 거르며 눈물만 씹어본들
슬픔 한 숟갈 떠 넘기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내가 사랑을 논하나.
서덕준 / 선율
가로등 불빛이 달처럼 번지는 밤
나를 웃게도 울게도 하는 노래처럼
당신이란,
악보의 다섯 감각 위로 뿌려진 음표처럼
나를 수놓는 완벽한 선율이어라.
서덕준 / 버들잎
나그네가 혹여나 체할까
찬 물 위로 띄우는 버들잎처럼
나도 위태로이 범람하는 당신 생에 뛰어들리라.
서덕준 / 추돌
길 가다 어깨만 스쳐도 미안해하는 당신은
어찌 내 마음으로 있는 힘껏 밀어닥쳐놓고는
어떠한 말 하나 없이 매정하게
나의 모퉁이를 돌아 나가시나요.
서덕준 / 호흡
당신이 나의 들숨과 날숨이라면
그 사이 찰나의 멈춤은
당신을 향한 나의 숨 멎는 사랑이어라.
서덕준 / 부싯돌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한 사내는
수국 가득 핀 길가에서 한 처녀와 마주치는 순간
딱, 하고 마음에 불꽃이 일었음을 느꼈다.
사랑이었다.
서덕준 / 냉혈인간
너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리쬐는 햇살마저도 차갑다.
이상 서덕준 시인님 덕후였습니다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