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앵, 으애앵!
" 아이고, 딸래미입니더. 어르신. "
" 지미랄! 가시나라꼬? 꼬추가 아이고? 아니 남들 다 잘만 낳는 걸 와 못 낳노?
줄줄이 가시나만 몇이고, 작정하고 우리 집안 대를 끊으러 왔나, 망할 년! "
" 말씀을 그리 하십니꺼, 아가 함 안아보이소-. "
" 머라카노, 그기 뭐 좋은 일이라고 안아볼끼고? 아구지 들어갈 밥 한 술이 아깝다! 에이, 퉤. "
축복 대신 저주를 받으며 태어난 아기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건지 목이 찢어져라 울고 있었다.
한 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러워 침묵을 지키는 나머지 가족들이 그 탓에 더욱 어색해 보였다.
할아버지가 대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가신 후에야 아기를 위해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 노래가 아침마다 들리던 시절 어느 봄날,
막냇동생이 처음 태어난 날이었다.
ㅡ
" 까꿍- 헤헤, 웃는 거 봐라. "
작은 손바닥을 꼼지락대며 방실대는 동생 옆으로 학교 다녀온 언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불은 젖을 무심히 물린 뒤 방구석에 멍하니 앉아계신 어머니 대신 놀아주는 건 언니들과 내 몫이었다.
딸 낳고, 또 딸 낳고- 줄줄이 여섯 자매를 낳는데만 자그마치 십오년.
그렇게 아들바라기로 살았건만 끝내 막내까지 계집이었다.
그 말인즉슨 할아버지의 구박도 그만큼 더해졌단 얘기였다.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컸던 아버지의 타박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을 못 낳는 죄로 괴로움을 당해온 탓에 어머니는 자신이 배 아파 낳아놓고도 우리를 심심하게 대하셨다.
우리 자매는 그 때문에 우리끼리 어르고 달래며 엄마 대신 부모 노릇까지도 해야했다.
탕탕,
" 누가 대낮부터 문을 잠가놨노! 산사람 사는 집 맞나! 문 퍼뜩 안 여나! "
할아버지 호통소리에 큰언니가 맨발로 벌떡 뛰어나가고, 나와 언니들은 동생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 다녀오셨어예. "
" 문 잠가놓지마라고 몇 번 말하드노. 사람 말을 왜 안 듣노! 집 어른도 못 들어오게 해놓고 안에서 너거끼리
무슨 수작질이고! 으이! "
" 죄송합니더, 앞으로 조심할게예. "
" 고마 치아라. 아 근데 집에 초상 났나? 할애비가 왔는데 오셨냐는 말 한 마디 하는 년들이 없어!
식구가 몇인데. 와 다들 껌껌무소식이고! 이 집 년들이 죄를 지어서 제 발 저리는 모양이제! "
그 말이 당혹스러워 인사라도 할까 싶어 문을 나서려하자 언니 몇 몇의 손이 내 옷자락을 꽉 쥐곤
나가지 못 하도록 했다. 방 안에 하아, 하아 하는 우리 자매의 숨결만이 촉촉히 쌓이고 있었다.
낮에 약주를 드시고 오시면 늘 트집을 잡아 분풀이를 하시는 게 할아버지에겐 놀이라도 되는 걸까,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고 항상 언성을 높이셨기에 우리에겐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 동네 들도 사람 오면 꼬리를 살랑살랑 치는 맛이 있는데, 그딴 것도 없고,
줄줄이 낳아서 사람 먹을 쌀이나 모자라고 말이야. 죽이지도 못 하긋고, 살리지도 못 하긋고,
얼라 고추 하나 달고 나오는 게 그리 어렵나! 애미 나와봐라! 빨리! 아 뭐하노! "
" 예, 아버님. 죄송합니더, 막내 젖을 좀 물리느라 늦었심더-.. "
" 애미 니가 잘 해야 될 거 아니가. 딴집은 둘 중에 하나, 안 되면 셋 중에 하나라도 낳는 게 아들이고
어느 집은 한 번에 둘씩 낳는 기 아들인데 와 못 낳노? 애비가 구실을 못 해가 배 못 불리주는 것도 아닌데,
니가 지은 죄가 많아가 그런 거 아이가! "
" 죄송합니더. 아버님. "
" 가스나 젖은 와 물리노? 차라리 저거 먹일 돈으로 돼지를 한 마리 치면 새끼 쳐서 돈 벌고
일 있으면 잡아가 고기라도 지, 한둘도 아니고 돼지보다 못 한 거를 많이 낳기만 하면 뭐하노! "
" ... "
" 주둥이가 달맀으모 와 말이 없노, 니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줄은 아나? "
해가 중천에 있다가 어느새 산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되다 못해 앞치마 앞에 눈물 얼룩이 잔뜩 진 채로 어머니는 밥을 끓이고 계셨다.
그때까지 방 안에 불도 못 켠 채 주린 배만 움켜쥐고 있던 우리 자매는 우리 주기 아깝다는 그 밥 한 술을 기다리며 버텼다.
집에 아버지가 안 계셔서 혼자 나머지 '계집'들과 집에 계신 날이면 할아버지의 구박은 더욱 독했다.
" 내 마실 나갔다 올기다. 문 잠 마라캐라. 이 집 년들은 가 나빠서 또 까묵는다. "
끝까지 년들, 년들 탓을 하며 나가시는 할아버지.
저녁도 드시지 않은 채로 나가시는 뒷모습 뒤로 한 술 뜨고 가시라고 매달리는 어머니가 겹쳤지만
우리 자매에겐 마음 놓고 저녁밥을 먹을 수 있겠단 안도를 가져다 주었다.
말 그대로 마음 속 한 짐을 덜어놓고 먹는 밥 한 끼.
어머니께선 무심히 막내 젖을 물리시면서 우리들에게 꼭꼭 씹어먹으라며 가끔 염려해주곤 하셨다.
그 날 늦은 밤,
" ...란 말이다! "
무슨 소리지, 잠결에 언뜻 큰 소리를 듣고 가늘게 눈을 떴다.
언니들은 먼저 깨어있었는지 문가에 붙어있었다.
" 데리고 나오라고 안 하나! "
" 아버님-! "
할아버지? 언니들 옆으로 다가가 문에 귀를 기댔다.
손가락 여럿이 문풍지를 살짝 뜯어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 얼라 데리고 나오라캤다. 이 참에 보내야 된다! 입이 하나면 들어갈 쌀가마가 몇 개고! "
" 딴 집에는 안 됩니더, 우찌 남의 애를 길러준답니꺼. "
" 아 시끄럽다! 비키라! "
할아버지가 막냇동생이 자고 있을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매달려봐도 속수무책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언니들과 나는 더욱 숨죽였다.
으아앙, 자다 깬 막냇동생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할아버지가 동생을 집어들고 나왔다.
" 안 됩니더! 안 됩니더! 애미 애비가 다 살아있는데 왜 남의 집에 보냅니꺼! "
" 이 년이, 아, 놔라고 안 하나! 딸자식도 한 둘까지지, 이것까지 또 할아버지 소리 하기 전에
보내야 뒷말이 없는기다! 달라할 때 보내버리자니까! "
"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지, 그럼 누구를 할아버지라 카는데예! 딸은 어데 자식새끼도 아니라예? "
" 야, 이 잡년이 말하는 꼬라지 보소. 줄줄이 여섯 딸을 낳아서 집안을 거덜내고 대까지 끊은 년이
어데 눈까지 부라리노? 하모, 딸은 사람 아니지! 검은 머리라고 다 같은 사람 새끼인 줄 알았나? "
" 그래, 짐승이라 치세요! 그래도예, 짐승도 지 새끼는 지가 키워예. 남의 집에 보내려고 하는 그기 짐승보다 못 하단 겁니더! "
" 와 이카노? 놔라! 아들도 아니고 딸을 받아준다 안 카나! 지금 보내자니까! 놔라! "
" 애아빠도 모르는 일인데 이러는 법이 어딨습니꺼, 저는 못 보내예! 절대로 못 보냅니더! "
마침내 살짝 열어버린 문틈으로 우리 자매는 마당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품에 꽉 안고 있는 막냇동생을 빼앗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머니 또한 동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으앙, 으아앙, 동생은 목이 쉬어라 울어댔다.
어디 남는 똥개 새끼 한마리 던져주듯이, 어느 딸 없는 집에서 딸 달라는 말에 덜컥 막냇동생을
보내주려고 하신 것 같았다. 데려가주는 것만 해도 쌀은 아끼는 셈 아니냐며.
" 개 같은 년이! 개 같은 년! 싸질러놓으면 다냐, 있던 복도 다 나간다! 니 년 때문에! "
날카로운 싸리비를 든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어머니 얼굴에 생채기와 함께 핏방울이 셀 수 없이 맺혔다.
평소 무심코 젖을 물리시고 놀아주지도 않으시던 모습과 달리 막상 어머니 자식을 떼어놓으려는 순간
어미로써의 모성애를 보여주셨다.
" 야들아, 저러다 어무이 죽겠다-. "
차마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는지 큰언니가 뛰어나가려 했지만 나와 언니들이 언니를 붙잡았다.
키도 크고 힘도 센 언니를 막으려면 나머지 자매가 모두 힘을 합쳐야만 했다.
" 지금 나가도 할아버지 화만 돋구는기다, 언니, 참아라.. 곧 끝날 거잖아.. "
" 놔라, 이거 놔라.. "
" 잠깐만! "
그때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 이 년 때문에 이 집이 아작이 난기다! "
" 안 됩니더! "
시린 고통에 막내를 놓친 두 손이 느슨해진 순간 할아버지가 낚아채버린 막내가 어느새 하늘 높이 들려져있었다.
우리가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할아버지는 동생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꽤액, 돼지 멱 따듯 단말마와 함께 동생의 눈알이 홰까닥 돌아버렸다.
" 아아악! "
어머니도, 나도, 언니들도, 순간의 화를 참지 못 한 할아버지도 말을 더 이상 잇지 못 했다.
조금 전까지의 아우성은 없었던 일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뽀그르륵, 동생의 눈,코,입에서 피거품이 부글부글 흘러나왔다.
" 아아아아-!! "
어머니는 눈깔을 하늘을 향해 뜬 채 울부짖었다.
당황한 할아버지가 우리 방쪽을 흠칫 쳐다보자 우리 자매 모두 기겁한 채 그 모습을 마주 보고 있었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 ... "
..
" 느그 엄마 탓이다. 잘 묵는 집에 보내서 좋은 옷 입히고 따신 밥 묵고 그 집 딸내미로 자라면
그게 얼라한테도 복이다. 그걸 모르고 느그 애미는 여기서 느그 입에 들어갈 쌀 몇 톨도 쪼개서
또 하나를 더 먹여살려보겠다고, 그게 어데 하루 이틀 일이가? 애비가 집에도 못 들어오고 허구한 날
방방곡곡을 싸돌며 일하는데 어째 지 씨도 못 이으면서 버는 돈은 다른 구녕으로 다 쳐들어가노.
그랑께, 내 잘못 아이다. 아가 그래 된 거는 다 지 복이 없는기다. 아들이었어봐라,
어데 그리 될 일이가. 맞나 아이가. 태어나기로 그래 복이 없게 태어난기지.
느그 애미가 복이 없어가 그래. 탓 하려면 엄한 놈 탓 하지 말란 말이다. "
엄마 소리 한 번 못해보고 죽은 내 동생ㅡ.
흉사인 탓에 제사도 제대로 못 지내준 동생을 묻어주려 뒷산으로 가던 길.
할아버지와 나만이 함께 걷고 있었다.
나만 자매 중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탓에 할아버지를 따라나서야 했다.
어머니는 그 날 이후 집을 나가버리셨고,
언니들도 말을 잃었지만 큰언니만큼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하며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의 마음도 모른 채 자기 잘못 아니라며 떳떳한 할아버지..
나는 그때 무슨 마음이 들어버린건지 그만,
" 할아버지가 나빴어예! "
아차.
할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피거품이 얼굴 구멍으로 쏟아지던 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며 몸이 떨려왔다.
할아버지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한참을 떨더니, 들고 있던 동생의 주검을 옆의 도랑에 휙하니 던져버렸다.
" 묻어주긴 뭘 묻어줘. 죽었으면 고깃덩어리지, 이게 뭐라고. 에이, 씨-벌.
니 집에 들어가라. 낸 술 묵고 들어간다. 대문 닫지마라. "
그러곤 터덜터덜 마실 쪽으로 향하시는게 아닌가.
멍하니 주저앉아 도랑에 가라앉은 동생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도랑은 내 키보다 열 곱절은 더 깊었기에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미친건지, 내가 미친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미군 원조물자가 도착한걸까, 배급 하나라도 더 타보려고 자매 모두 집을 나섰다.
전날 밤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는 어머니의 가출과 동생의 죽음을 전해듣곤 크게 노하시며
할아버지와 다투셨고, 그에 한바탕 또 뒤집어진 집안 분위기 탓에 우리는 우리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챙겨야만 했다.
" 아이고.. 우째 그런 일이 있단 말이고.. 귀신이란 게 있는기라. "
" 참말이다. 그 얼라 그기 얼마나 한이 맺힜으모.. 아이고, 쟈들 온다. 쉿. "
아주머니들이 우리 자매를 보곤 슬금슬금 피했다.
큰언니는 생긋 웃으며 재빨리 다가갔다.
" 아주머니, 무슨 일 있어예? "
" 아- 맹희야, 아. 아니, 별 건 없고.. "
" 근데 와 동네가 이렇게 웅성거려예? 밀가루차 왔습니꺼? "
" 아이다.. "
큰언니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고,
그 내용을 들은 우리 자매는 숨 고를 새도 없이 도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도랑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 숫자는 늘어났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악, 하악.
숨을 헐떡이며 도랑에 도착하자 우리를 보곤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사이로 할아버지가 보였다.
거의 실성한 채로 바지에 오줌까지 지린 상태.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싹싹 빌어대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가, 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계셨다.
그 의아한 모습이 향하는 도랑을 쳐다보자..
" 으윽! "
얼굴이 몹시 경직된 채 눈을 부릅 뜬 막냇동생이 물 위에 똑바로 서있었다.
서기는 커녕 기어보지도 못 한 동생이 도랑 위에 발목만 잠긴 채 바로 서있었다.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도랑 위에, 아수라처럼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소리 한 번 못 해보고 죽은 아기의 원한 때문이라며,
동네에선 돈을 들여 동생의 위령제를 크게 지내주었다.
뒷산에 동그란 아기 무덤도 만들어 다시 정성스레 묻어주기까지 했다.
그 뒤로 할아버지는 반쯤 미쳐버리셨고,
동생을 내쳤던 그 날 밤과 비슷한 시간이 되면 마당에 홀로 나오셔서
있지도 않은 동생을 상상 속에서 업으시곤,
어화 둥둥
어화 둥둥 -
우리 예쁜 딸손주 -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그 뒤 아버지는 폣병에 걸려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중풍으로 누워지내다 돌아가셨지만
우리 자매만큼은 서로를 챙기며 자라났기에 저마다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 생각한다.
어머니를 때리고 동생을 내려쳐죽이던 할아버지의 악귀 같은 얼굴,
젖은 물려도 정은 안 주는 듯 싶던 어머니가 막상 새끼를 지키려 들 때의 얼굴,
저주 속에 태어나 짐승보다 못한 죽음을 맞이한 동생이 물 위에 떠올랐을 때 짓고 있던 원한에 가득 찬 얼굴..
그러노라면 나는 한 번 나에 대해 돌이켜본다.
나는,
'귀한 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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