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가 아내를 여러번 갈아치웠단 얘기는 워낙 유명하지만
헨리 8세를 기준으로 두고 전 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내려가다보면
역사의 흐름이란게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새삼 느끼게됨
헨리 8세, 아니 헨리 7세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엘리자베스의 황금시대 그리고
잉글랜드+스코틀랜드=영국 까지 다다르게된 이야기를 살펴보면
혈통 복잡한 유럽사도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함..
먼저 오늘의 주인공은
이사람이지만
모카들의 집중력을 위해 영상매체에 나온 배우들 이미지로 대체하겠음
쨘
흔히 헨리 8세의 6명의 왕비를 한줄로 표현하는데 바로
"One Died, One Survived, Two Divorced and Two Beheaded."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아남았고, 두명은 이혼당하고 두명은 참수당했다."
0. 프롤로그
헨리에게는
아버지 헨리와
형 아서가 있었음
당시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여왕부터 시작된 그 해가지지않는 나라 타이틀과는 거리가 먼
쩌리 of 쩌리
장미전쟁에서 승리해서 왕위를 거머쥐게 된 헨리 7세는
쩌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었고,
왕권도 짱짱쎄게 만들고 싶었기에
당시 분열된 스페인(카스티야/아라곤)을 결혼으로 통일시킨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여왕 이자벨에게 결혼 동맹을 제의함
"우리 아들 아서랑 너희 딸 캐서린이랑 결혼시키자"
"ㅇㅋ 결혼지참금이랑 우리딸, 잉글랜드로 보내겠음"
그리하여
딸 캐서린, "아라곤의 캐서린"은 잉글랜드의 왕세자비가 되었음
그런데
결혼 1년만에 아서가 죽어버림
당시 둘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초야도 못치르고 그냥 과부가 되버린 캐서린..
"헐"
"; 저..아버님? 남편이 죽었는데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아씨 어떡하지 스페인 동맹은 깨기 싫은데..)"
"너 결혼지참금 다 안냈어 낼때까지 집 못감.."
"뭔소리임 우리 돈 다냈음"
"안냈음!"
"(당황)"
보통 이런 상황이면 캐서린이 고국으로 돌아가던지
아무튼 재혼하면 되는데 결혼지참금 문제로 시집이랑 친정 양쪽에서 눈칫밥 신세가 된 캐서린...
다행? 인건 캐서린이 처녀였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이 '초혼'이 가능했음
어쨌든 저 눈칫밥 신세로 무려 7년의 시간을 보낸 캐서린이 회생을 하게 됨
7년 뒤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헨리 7세가 죽고
헨리 8세가 왕위에 오르게 됨
당시 헨리는 다른 나라의 공주와도 혼담이 오고갔지만..
1.첫번째 결혼(현 스코어: 결혼1)
"형수.. 아니 캐서린! 나랑 결혼해요!"
"네 좋아요..♡"
캐서린이 초야를 치루지 않은 처녀임을 교황청에서 인정을 했고 문제없이 혼인이 거행됨
(캐서린은 워낙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거짓말 했을리도 없음)
형수랑 결혼한데다가 나중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봐서는 헨리가 아내를 별로 안사랑했을거 같지만
둘의 사이는 (초반에는) 매우매우 좋았음
아이도 6명이나 낳았었는데
문제는 모두 죽어버린거...
남은건
딸 메리 뿐이었음
헨리에게도 첫 자식이었으니까 메리는 5959우쭈쭈 하면서 자랐음
그런데 헨리가 원하는건 아들인데
점점 캐서린에게서 애정이 떨어지는 헨리
이제부터 난봉꾼이 되기 시작해서
캐서린의 시녀였던 엘리자베스 블런트와도 관계를 가지고
아들 '헨리 피츠로이'도 갖게 됨
헨리8세가 인정한 유일한 사생아임
이 아들 헨리는 16살에 요절하는데
죽기 전에는 딸 메리와의 혼담도 오고갔음
이 둘을 잉글랜드의 공동통치자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헨리의 맘이 떠나가면서 흐지부지됨
무튼 헨리가 눈을 돌린 또다른 여자는
'메리 불린'
눈이 맞게 된 계기는 메리 불린의 결혼식이었음
결혼식 하객으로 간 헨리가 메리를 보고 반하고 사사로이 만나는 관계가 된것..
어느정도냐면 메리가 아들을 낳으니까 헨리 8세의 아들이라는 소문도 무성..
이렇게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맺던 중 헨리를 사로잡은 여성이 바로
'앤 불린'
"앤♡ 나의 정부가 되어줘"
"시름 나 정부따위 안함 난 아내가 되고싶음"
"ㅇㅋ 이혼해야지"
헨리는 앤에게 빠지기도 했고, 앤은 아들을 낳아줄거라는 희망에 가득차게됨
이혼이란게 워낙 당사자건 상대방이건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헨리는 아예 '결혼 무효'라는 이름으로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어졌음
"캐서린, 우린 한번도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던 거야"
"?? 무슨소리에요"
"너 나랑 결혼하기 전에 우리 형이랑 관계를 가졌잖아!
그러니까 난 형수와 결혼 해버린거야..ㅠㅠ
난 독실한 카톨릭 신자니까 그걸 참을수 없어!"
교황 클레멘스 7세
"님 뭔소리임 캐서린 처녀라고 우리가 인정했잖슴?"
"아니라고! 오라가짜!"
근데 당시에는
캐서린의 부모님이
딸 후아나(캐서린의 언니)에게 왕위를 넘기고,
그 딸 후아나가 다시
턱이 크고 아름다운 카를 5세에게 왕위를 넘겼음
근데 이 카를5세야 말로 당시 유럽세계를 씹어먹던 사람이었고
통치하는 영토도 얼마나 많은지 왕관도 겁나 많이 씀
요약하자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 황제
당시 잉글랜드가 쩌리라고 했지?
그래서 헨리는 강국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잘 맞추려고 노력했음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뒤통수 후려치기)
자신이 결혼으로 맺은 동맹이 최강국 스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와 코냑동맹을 맺고
스페인의 뒤통수를 후려침
"ㅎ"
뒤통수까지 후려쳤는데 카를 5세가 프랑스+잉글랜드 연합을 부셔버림
카를 5세는 거기다가
교황이 머물던 로마를 개박살내버림...
'사코 디 로마'사건인데 교황권의 완전한 추락을 알리는 사건이었음..
난민 신세가 되어버린 교황은 벌벌 떨면서 결혼무효도 절때 허락을 안해줬음
교황 허락 없이는 이혼도 맘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 뭘고민해.. 그냥 니가 교회의 수장이 되면 되잖아"
불린 가를 비롯해서 종교개혁을 꿈꾸는 자들이 합세해
헨리가 교회의 수장이 되어버림
이게 바로 영국의 '성공회'
그러니까 "헨리가 이혼하려고 만든 종교"라기 보다는
당시 종교개혁의 바람+헨리의 이혼 소취 등등 여러 요인이 합세해서 생긴 기독교 교파임
어려운 라틴어로 쓴 성서를 버리고 영어로 쓴 성서를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한 개혁적인 종교
물론 헨리의 이혼과 더불어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도 어마무시하게 많았음
대표적으로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임
계속해서 성공회 개혁을 반대했던 모어는 결국 참수형당하고
카톨릭 성인으로 추존됨..
아무튼 성공회 개혁운동에
토머스 크랜머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챡챡 진행되었음
이사람 사진을 왜넣었냐면
훗날 여왕이 되는 메리가 젤 먼저 한게 얘 목치는거였...
그리고 헨리는 교회의 수장이 되어 결혼 무효를 진행해
캐서린은 쓸쓸히 잉글랜드의 왕비에서 물러나게 됨
앤을 만나고 무려 7년의 시간이 흐른 뒤임
2.두번째 결혼(현 스코어: 결혼2 이혼1)
왕비가 된 앤은 아들이 아닌
딸 엘리자베스를 낳게 됨
여기서 궁금해지는건
첫째 딸 메리 아니겠음?
당시 메리는 17세의 여성으로 성장했지만,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하고 자기 자리를 빼앗은거나 다름 없는 엘리자베스의 시녀가 되는 등 고난을 겪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와의 사이는 좋았음)
앤은 엘리자베스 이후로 아들을 낳지 못하고
불과 6개월 사이에 두세차례의 유산을 겪음
그리고 역시나
헨리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앤에게서 마음이 식었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잉글랜드의 왕비이며 헨리의 아내였다고 주장한 캐서린이 죽게되자
나름의 죄책감도 생기게 되었음
거기다 다시금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에게 빠지게 됨
제인도 앤과 비슷한 절차를 밟는데
"(선물을 주면서)나의 여자가 되어줘 ㅋ"
"저는 정절을 중요시 여긴답니다.
제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면 결혼선물로 주시겠어요?"
이런 대처에 헨리는 나름의 감동?을 먹고
만날때 사사로이 안만나고 사람을 대동해서 만나는 등 나름의 예의...를 지킴
정부로 만들려다가 아내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
이제 남은건 불린 가문의 몰락 뿐이었음
본래 불린 가와 합세해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토마스 크롬웰'도 불린 가를 배반하고
▲제인의 오빠 토마스 시모어
제인 가문인 시모어 가문과 합세해 앤불린을 비롯한 불린가를 완전히 몰락시켜버림
앤 또한 결혼 무효가 선언이 되었는데 그 명목은
1.앤은 손가락이 6개인 마녀이다.
2.앤은 자신의 동생을 비롯한 남성들과 사통했다.
였음
앤은 런던탑에 갇히게 되었고,
남동생도 처형당함
그리고 제인과 헨리의 약혼식 날에
참수를 당하게 됨
당시 엘리자베스는 겨우 3살이었음
이렇게 엘리자베스 또한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게 됨
헨리의 결혼생활은 뒷 글에서 더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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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던 클레멘스 7세의 유언으로 완성된 예술작품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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