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 것이다”
너는 잘 살 것이다. 성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잘 살 것이다. 학교는 고작 8 개월의 징계를 내렸고, 법원은 네가 군입대할 경우 피해자인 나와 자동 격리된다는 네 변명을 받아들여 징역 6 개월, 집행유예 2 년을 벌금 700 만원으로 깎아주었기 때문이다. 반성을 위해서 혹은 격리를 위해서 군 입대를 하겠다는 네 궤변은 차치하더라도 너는 입대를 하기는커녕 학교 징계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복학해 피해자인 나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격리를 위한다는 그 변명이 무색하게도 지인에게 네가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군 복무 의무를 감형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곳에서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지르고도 너는 잘 살 것이다. 사내새끼가 그럴 수도 있다고 용인되는 곳에서 너는 참 잘 살 것이다. 네가 법원에서 그토록 간절하게 항소한 것과 다르게, 너는 군대도 가지 않아도 되며 학교에서 준 8 개월의 정학을 자격증 시험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하였다. 범죄자인 네가 복학을 한 이유, 내 지인과 연락을 하는 이유, 떳떳하게 고개 들고 다니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다. 네게 강제추행은 잊혀질 일이고, 한때의 치기인 일이고,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네 부모를 포함해 고소와 관련된 사람을 제외한 네 지인들 중 네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네 부모는 너를 두둔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원치 않는 “사과”가 담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대며 군대 보내서 사람 만들겠다고 말 한 것일 테다.
너는 “별 거 아닌 일”로 고소까지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왜 고소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고 처음 양성평등센터로 호출 당했을 때 본인을 “범죄자 취급”해서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네게는 별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별 것 아닌 일“은 나를 2 년 내내 꼬박 따라다녔다.
너는 아마 잘 살 것이다. 나처럼 소화 불량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불면증에 괴로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택시에서 강제추행이 일어났기 때문에 난 그 이후로 택시를 타지 않지만, 너는 별 생각 없이 탈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강제추행을 저지른 성북동 모텔 앞을지나야할때 고개를 돌리는 나와 달리 너는 거부감없이 지나다닐 것이다.
계속해서 말한다. 너는 잘 살 것이다. 네가 주민등록증 앞에 말한다. 너는 잘 살 것이다. 네가 주민등록증 앞에 1을 달고 태어난 덕분이고, 나름 좋은 대학을 온 덕에 법원에서 미래가 있다고 본 까닭이고, 술을 먹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감형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네 선배와 네 교수이지만 동시에 나의 선배와 나의 교수도 되는 사람들이 너의 미래만을 생각해 탄원서를 작성하고 감형을 도왔기 때문이다. 자격증 시험 준비 때문에 미루었던 군 복무에 대하여, 뻔뻔하게도 법원에 “격리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편”으로 의경 입대 신청을 했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장래를 걱정하고 범죄자의 장래 만을 위하는 곳에서 너는 잘 살 것이다.
그리고 나도 잘 살아갈 것이다. 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성폭력과 성추행을 소비하는 것처럼 자아에 깊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네가 트라우마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망가지지도 않았고 ”수치심“에 절여 지지도 않았다. 비록 간간히 억울해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그렇게 선 딱딱 긋고사는거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잘 살 것이다. 티를 내지 않는 이상 드러나지 않으므로 나는 잘 살 것이다.
너의 부모는 네게 전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계속 자격증 공부를 하게 해주었고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주었다. 나의 부모는 아직까지도 이 일에 대해서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잘 살 것이다. 잘 살아갈 것이다. 잘 살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너는 잘 살 것이다. 나도 잘 살 것이다. 두 문장의 차이가 나는 불쾌하다. 나의 잘 살 것과 너의 잘 살 것은 왜 이다지도 다른가. 나의 “잘 살 것이다”는 내가 버텨내야 하는 현실에 기반하는데, 너의“잘 살 것이다”는 왜 법원과 학교로부터 당연하게 주어지는가. 역겹다. 너의 잘 살 것임이. 그리고 나의 잘 살 것임이. 너는 잘 살 것이다. 술 먹고 저지른 일이기에, 기억 안 난다고 우기면 기억이 안나는 것이기에, 남자이기에, 고려대에 다니기에, 선배와 교수가 너를 위해 기꺼이 탄원서를 써주기에. 너는 잘 살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너는 이미 너무나도 잘 살고 있다.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