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1989
1. 개요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우며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냈던 데즈카 오사무.
만화계에는 감히 범접할수없는 업적을 가지고 있지만 애니메이션계에 있어서는 적폐라 하여도 될것이다.
내가 그를 적폐라 부르게된 결정적 사건인 '50만엔' 사건에 대하여 알아보자.
2. 철완 아톰과 50만엔
일본 애니메이션의 태동기인 1960년대에 제작된 일본 최초의 TV주간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은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이자.
감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이라 할수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의혹들은 결코 유쾌하지않다.
사건의 발달은 이런것인데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는 주간 애니메이션의 예산을 50만엔 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제작하려는 방송사에 대해 보이콧을 하고있었는데
이를 받아들이고 제작된 것이 철완 아톰이다. 보이콧을 하던 업계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청천병력 같은소식이었다. 당시 데즈카 오사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니.
그렇게 제작된 철완아톰은 1초에 24프레임을 사용하는 풀 애니메이션 과는 달리 1초에 12프레임 더 낮춰서 10프레임 이하를 사용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부자연스러운 동작과 반복되는 뱅크씬이 합쳐져 '애니메이션' 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물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50만엔이라는 금액은 제작사인 무시프로덕션또한 터무니없는 낮은 금액이라 데즈카 오사무본인의 사비로 충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철완아톰의 인기는 식을줄 몰랐고 계속해서 50만엔으로 제작되는걸로 돼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의 임금은 추락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7년에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방송사는 50만엔이라는 금액을 제시하지않았고 데즈카 오사무 본인의 의사에따라
'대외적'으로는 50만엔이라고 알려졌고 실제로 받은금액은 150만엔 정도이며 화수가 진행될수록 인기에따른 금액인상이 있었고
350만엔도 넘었다고 한다. 그말은 즉슨 데즈카 오사무가 50만엔을 제외한 금액들을 슈킹하고 있었다고 밖에 보여지지않는다.
고인이 돼버렸기에 이제와서 사실관계를 파해칠수는 없겠지만 위에글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다시봐야할 인물인거같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데즈카 오사무의 추도문에서또한 그를 통렬히 비판했다.
3. 50만엔의 영향
제작비가 가벼워졌기에 방송사들은 애니메이션을 대량으로 만들수 있었는데
이는 심각한 질의문제를 가져왔고 현제에 와서도 거의 고쳐지지 않고있다.
혹자는 이러한 대량생산 체제가 일본애니메이션을 발전시켰다고도 하는데
나의 의견은 결코 그렇지않다.
철완 아톰이 대성공한 것은 순전히 아톰 자체의 재미였지 애니메이션의 재미라고 생각되지않고
당시에도 미야자키 하야오같은 뛰어난 제작자가 있었기에 "싼돈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수있다" 라는 풍토만 없었다면
더욱이 성장할수 있었을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작비 절감때문에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업계를 떠났으고
쿄토 애니메이션이나 지브리 애니메이션처럼 회사원식의 봉급을 지불하는 회사만이 일정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고있다.
그러나 위에 소개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은 우습게도 하나의 연출로도 사용되어지는데
그 좋은 예가 아래의것
보다시피 간단한 움직임으로 상황에따른 감정과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4. 마치며
생전 그가 남겼던 만화가로서의 실력,테크닉,사상등은 누구도 부정할수없다.
간단해 보이는 그림속에서 살아숨쉬던 역동성,생동감
전쟁을 겪으므로서 평화를 만화속에 녹였던 반전주의자.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올타임 원탑 만화가는 단연 데즈카 오사무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돈에 취한 적폐로 생각되어질수도있다.
나는 윗글에 대한 반박증언이 나오기를 덕질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기다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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