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목욕탕 / 그럼너는뉘기야 》
편의점에서 밤을 보낼 때면 거대한 냉장고 안에 갇힌 것만 같다. 사람보다는 냉장고가 많은 이 공간을 냉장고라고 부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출입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히터와 맞물려 중화됐지만 추운 건 여전했다. 밖은 술 취한 사람들이 사연 있어 보이는 몸짓으로 돌아다닌다.
딸랑. 출입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면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한다. 어서오세요. 이 시간대에 오는 손님은 보통 담배나 술을 사간다. 불쾌한 바깥 바람 냄새가 진하게 밴 손님이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럴 땐 손님과 알바의 관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한다.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면서 우리는 눈을 마주친다. 괜찮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속으로 여러 번 삼켜낸다.
‘말보루 레드 하나요.’ 나는 익숙하게 몸을 돌려 왼손을 아래로 뻗었다. 어딘가에 익숙해진 동작은 하나의 군무처럼 느껴진다. 거구의 남성이 카운터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빨간색 옷을 입은 그는 완벽한 산타의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남자가 영어로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말보루, 레드 원’ 나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장기 백수 한 예은, 냉장고에서 생을 마감하는 걸까. 후련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먹먹해진다.
남자는 멍한 내 얼굴을 보면 허허 하고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를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전생에 산타 마을 일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났고 동시에 울었다. 숨어 있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에 슬퍼졌다. 나는 죽은 채 살아 있었구나.
오늘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이다. 참치 한 캔과 햇반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가 산타 분장을 한 꼬치집 아르바이트생인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산타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