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빨간머리 서양인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몸에 나는 털이란 무조건 검은색 밖에 없는 동양인인 우리들에겐 빨간머리는 신기하고, 예뻐보이죠.
하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이미지인가 봅니다.
서구권에서 빨간머리는 진저(Ginger)라고 불리우며, 예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아왔던 머리색입니다. (그래서 저 진저라는 표현은 절대 써서는 안됩니다. 흑인들에게 니거(nigger)라고 부르는것과 마찬가지인 효과가 나오거든요.)
서양인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빨간머리에 대한 편견은 아래와 같습니다.
함, 촌뜨기, 색정광, 고집불통
여자 - 기가 세고 괄괄한 성격에 주근깨가 많음. 성적으로 문란함.
남자 - 숫기 없고 어리버리한데다 사나이답지 못한 유약한 이미지.
빨간 머리는 유독 켈트계, 그것도 웨일즈, 아일랜드권 켈트계 인종에서만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러시아의 소수민족인 우드무르트인(Удмурты)들도 적발 유전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차별적인 이미지는 대부분 영미권에서 나타납니다. 그 역사는 조금 위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할거 같네요
대서양 끝에 있는 작은 나라 아일랜드는 옛날부터 옆나라 영국에게 여러번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17세기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영국군에게 완전히 정복 당하여 결국 30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죠. 아일랜드인들은 먹고 살아보기 위해 가난한 농업국가인 고향을 등지고 주인님인 대영제국의 해외식민지 개척에 따라갔습니다. '레드코트'로 유명한 영국군도 상당수가 아일랜드인들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19세기 중반 감자 마름병의 유행으로 '아일랜드 대기근'이 발생하자, 수백만명이나 되는 아일랜드인들이 전세계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국땅에서도 아일랜드인들은 상전인 영국인들의 밑에서 일하는 비천한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특히 제일 많이 갔던 미국에서는 아일랜드인들은 '하얀 흑인'으로 불릴 정도로 멸시를 받았습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세계 곳곳으로 퍼진 아일랜드인들은 아주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군인, 광부, 하녀, 매춘부, 건설노동자 같은 3D업종에서 일하며 하층민 계층을 구성했습니다.
이들을 고용했던 영국인들은 이들을 마구잡이로 부려먹었습니다. 북미의 기득권층이었던 영국계 미국인들도 비슷했지요.
타인종에 비해 유난히도 빨간머리가 많았던 아일랜드인들 덕분에 '빨간머리=아일랜드인'이라는 공식이 생겼고, '아일랜드인=촌뜨기, 무식함, 가난함'라는 또 다른 공식이 더해져 세월이 흐름과 함께 '빨간머리=하고 가난한 촌뜨기'라는 기가 막히는 편견이 탄생한겁니다.
현대 시점에서는 이런 차별이 거의 사라졌지만, 그래도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이 남아있습니다.
서구권 대중매체에서 빨간머리는 보통 매춘부, 색기담당 캐릭터의 머리색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위에 짤의 제시카 래빗이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서구권 작품은 아니지만, '베르세르크'의 루카도 딱 빨간머리의 스테레오 타입인 캐릭터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위즐리 가족도 그렇습니다. 일단 지니가 '학교에서 제일가는 미녀'라는것도 그렇고, '순수혈통인데 친머글파 가문'이라는 별난 설정에빨간머리라는 속성은 이 가족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패시브스킬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작중 말포이가 위즐리네를 욕할 때 대놓고 '빨간머리'라고 언급하기도 하죠.
우리가 어렸을때 많이 봤던 동화인 '빨간머리 앤'에서 앤 셜리는 자신을 '빨간머리'라고 놀리던 길버트의 뚝배기를 깨죠.
저도 당시에는 왜 고작 머리색 가지고 를 깬건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만, 위의 문화적 편견을 알고나서부터는 앤에게 빨간머리는 단순한 콤플렉스를 넘어 '낙인'과도 같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