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어버이날. 서울에 있는 한 요양원의 창문 앞마다 카네이션 화분이 올려져 있었다. 302호에 사는 김만식 할아버지(87·가명)는 휠체어를 타고 방 안 창가에서 햇볕을 쬐는 중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량한 하늘이었다. 창밖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산에는 초록빛 생기가 가득했다.
"카네이션이 참 예쁘죠?" 요양보호사가 묻자, 치매 환자인 김 할아버지는 주름이 가득한 눈을 두 번 껌뻑거렸다.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했다. 하지만 망막에 비친 것은 꽃과 화분뿐이었다. 배경은 산과 하늘이 아닌 뿌연 유리창이었다.
김 할아버지와 세상을 단절시킨 것은 창문의 절반을 덮어버린 불투명 시트지다. 이 요양원의 원장인 최경미씨(56·가명)는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누워있어야 하는 분들은 저 시트지 때문에 풍경을 볼 수가 없다"며 "이게 마음에 걸려서 어르신들에게 ‘날씨가 참 좋다’는 안부 인사를 못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창문을 가린 것은 요양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항의에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최 원장은 "주변에 사는 분들이 집에서 요양원 어르신들이 보이는 게 불편하다고 끈질기게 민원을 넣었다"며 "‘밤에 치매 걸린 노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무섭다’, ‘휠체어 타고 동네에 외출하지 말아달라’, ‘노인들이 우리 집에서 안 보이도록 아예 가려달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이웃들을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주민들의 요구대로 어르신들이 사는 방 창문마다 불투명 시트지를 붙였다. 입주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요양원 주변 풍경이 일품"이라고 자랑했던 것이 소용없게 됐다. "아픈 노인을 보기 싫다"는 집단민원으로 인해 요양원 어르신들은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조망권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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