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통 받는 동물을 보아도 이효리와 같은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동물을 예뻐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옆에 다가오는 것조차 싫다. 나의 처가에서는 개를 키우는데, 처가에 갈 때마다 그 개가 옆에 오는 것이 싫고 개 역시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아는 듯 옆에 오지도 않는다. 나는 적어도 동물에 대해서는 냉혈한이다. 또한 나는 동물이 인간과 평등하다거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동물보다 우월하며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내용은 바로 강원대 ‘최훈 교수’가 철학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란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동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부정적 관점을 피력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감응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동물에게도 ‘도덕적 지위권’을 부여하고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감응력’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이율배반적인 사례도 많다.
예를 들면 살아있는 개를 자동차에 매단 채 도로를 달리는 것은 경악하면서도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동물 학대는 관대하다든지(예: 동물 실험, 모피코트생산, 가죽 제품), 개·소·돼지·닭을 비도덕적으로 사육하고 도살하는 방식에는 반대하면서도 ‘채식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파충류를 위해 살아있는 쥐와 토끼를 먹이로 준다든지, 다른 동물고기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먹으면서 개고기 식용에는 반대한다든지, 개는 엄청 예뻐하면서 길고양이는 자신의 개를 시켜 죽이거나 학대하는 사람들도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는 도덕적이지 못한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주장했다. 피터 싱어가 말하는 종차별주의는 자신이 속한 종(인간) 또는 좋아하는 동물을 옹호하기 위해 다른 종(동물)이 당연히 누려야할 ‘도덕적 지위권’을 배척하고 왜곡된 태도를 취하는 것이며, 이는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과 같은 실수를 동물에게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생각해볼거리가 생기는 글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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