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쟁교육 12년 받은 당신은 파시스트? - 단비뉴스
지난달 1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의 2024년 인문사회교양특강 첫 순서로 ‘한국 교육, 어디로 가야 하나’를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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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 한번 보세요. 이렇게 미성숙하고 파렴치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어요? 지금 의사들 행태 한번 보세요. 지금 판사들 행태 한번 보세요. 검사들이 벌이는 행태 한번 보세요. 한국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그야말로 너무나 야만적인 그런 행태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1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의 2024년 인문사회교양특강 첫 순서로 ‘한국 교육, 어디로 가야 하나’를 강연한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경쟁교육이 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며 “그런 교육을 (초중고) 12년 동안 받고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와 대학원 독일유럽학과 교수를 겸하고 있는 그는등 신문 칼럼과 제이티비시(JTBC) ‘차이나는 클라스’ 등 방송 강연을 통해 한국 교육 현실을 비판해 왔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등의 책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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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또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개국 대학생을 상대로 “출신 고등학교를 ‘함께하는 광장’ ‘거래하는 시장’ ‘사활을 건 전장’ 중 무엇으로 기억하느냐”고 설문 조사한 결과 ‘사활을 건 전장’으로 기억하는 비율이 한국 80.8%, 중국 41.8%, 미국 40.4%, 일본 13.8%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경쟁의 전쟁터를 뚫고 나온 사람들이 정상일 수가 없다”며 “한국 사회는 일종의 전쟁 트라우마 사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쟁터에는 승자와 패자, 딱 두 부류의 인간밖에 없다”며 “승자는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자기가 잘나서 누리는 것이며, 부와 권력을 전쟁터에서 획득한 전리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한국 엘리트 집단을 보면 한국 교육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 수 있다”며 2020년 9월 의사단체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물을 예로 들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제로 입학한 의사가 있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할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글을 올려 논란을 불렀다. 김 교수는 “(성적만능주의에 빠진) 이 성명서야말로 한국 교육이 실패한 게 아니라 완전한 파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관해 최근 무죄 판결이 나온 것,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성범죄가 폭로됐는데도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등을 한국 엘리트 교육의 파탄 사례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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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도 핵심적인 메시지가 미국이 야만적 사회가 된 것은 바로 능력주의 경쟁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 사회인데도 혁명은커녕 저항도, 비판도 없다”며 “미국인들은 어마어마한 불평등 속에서 혁명 대신 자살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절망사’(deaths of despair)고,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사회적 효과”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인들은 불행의 원인을 사회구조, 특히 미국의 약탈적인 자본주의 구조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서 찾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불행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건데, 한국은 지금 20년째 자살률 1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독일의 반(反) 경쟁교육을 제시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전범이자 유태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청산 작업의 하나로 1970년대에 경쟁교육을 없애는 개혁을 단행했다. 김 교수는 “히틀러 파시즘은 이 세상을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거대한 정글로 봤고, 사람이 둘만 있어도 우열을 가렸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걸 자연스러운 질서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민주주의자는 구성원들을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보고, 우열이 아니라 다양성을 본다”며 “한국 교실에서 12년 교육받으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될까, 파시스트가 될까”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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