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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삶'...그렇게 노숙인이 된다
정혜숙(65세·가명) 씨는 20년 동안 광주에서 '조폭'과 살았다. 결혼을 한 건 아니었다.
20대에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았지만, 쫓겨났다. 그 이유는 "말하기 싫다"고 했다. 쫓겨나서 흘러가게 된 곳이 광주, 거기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애들 다 뺏기고 외로우니 그 남자 곁에 눌러 앉은 거지, 나는." 처음엔 잘 해줬고, 그 다음엔 때렸다. 친정으로 돌아가기엔 늦었다. 그냥 참고 살았다.
"죽으려고 시도를 2번이나 했어요. 물에도 빠져봤고. 안 죽더라고." 혜숙 씨 손목에 자해 자국이 선연히 남아있었다. 지난해 생일에도 맞았다. '이 꼴 그만 보고 뜨자' 생각이 그때 들었다. 지갑 들어있는 가방 하나 들고 고속 터미널로 뛰었다. 처녀 때 살던 서울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잘 곳은 어딘가 있겠지 라는 생각만 하고 나온 거여. 막상 와서 보니까 갈 곳이 없는 거야. 아는 사람도 없고. 친척들 있어도 연락을 30년 안 해갖고…. 보니까 친정엄마도 돌아가시고 큰아들도 죽고 내 밑에 남동생도 죽고 없더라고."
그릇 닦을 일자리라도 있겠지 생각했지만, 맞아서 다 망가진 몸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 날 정 씨는 '노숙인'이 되었다.
■화가 난 그들, 지켜주는 그들
거리로 나온 첫날이 어땠는지, 여성 노숙인들에게 물었다. 무서웠다. 추웠다.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움츠러들었다. 누군가 대뜸 몸을 만졌다. 눈 앞에서 '돈'을 흔들며 따라오라고 했다... 여러 답이 나왔다.
거리로 가 보기로 했다.
침낭보다 먼저 '호신용품'을 챙겼다. 후추 스프레이, 호루라기, 플래시. 각종 용품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니, 그녀들은 이것조차 못 챙긴 채 거리에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 지하는 저녁 8시쯤부터 '판'이 깔렸다. 일찍이 취한 사람들이 지하의 주인이었다. '아가씨 몇 살이냐, 소주 한잔하자' 묻는 건 차라리 친절했다.
'씨XX'이라며 기자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 '사기 치지 말라'며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노숙인끼리도 '거지 XX'라며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고, 화를 냈다.
하지만 '스프레이'를 쓸 일은 없었다. 이 사이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것도, 노숙인이었다.
한 남성 노숙인이 기자에게 '핫팩'을 건넸다. "이거 있어야 오늘 밤 버틴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했던 여성 노숙인 유경순(74) 씨는 떡과 두유를 기자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이것도 다른 아저씨가 준 것"이라며 "받는 사람들끼리 또 나눠 먹는다"고 했다.
몇 시간 경순 씨와 서울역 계단에서 버텨봤지만 '정해진 자리'에 파고들 틈이 없었다. 경순 씨는 "서울역은 무섭다. 욕하고 시끄럽기도 하지만, '뒷담화'도 장난 아니다"고 했다. 여기선 못 잔다. 밤 10시가 넘어 경순 씨를 따라 지하철을 탔다.
■여기에 사람이 삽니다
공원 벤치가 좋을까. 추워서 겁이 났다. 영등포 쪽방촌 공중화장실로 갔다. 70대 여성 2명이 자고 있었다. 어쩔 땐 3명, 4명이 함께 잠잘 때도 있다고 했다.
작은 라디에이터가 하나 있었지만 한파를 막아내진 못했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 진동이 온몸을 흔들었다. 불을 끌 수 없어, 빛나는 형광등을 바라보고 누웠다. 축축한 화장실 바닥 냉기가 침낭과 패딩을 뚫고 들어왔다. 서울역 노숙인이 줬던 핫팩을 꺼내 옷 속에 넣었다.
장윤희(가명) 씨는 35년 폐지를 줍다가, 몸이 망가졌다고 했다. 더이상 일할 수 없어 이 화장실에서 몇 년 째 숨어 살고 있다. "그래도 비바람을 피하고, '술 먹은 남자'들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술 먹은 남자'들이 밤새 화장실 문을 열어댔다. 문간에 누워있던 기자에게 먹을 거 없냐, 담배 없냐 더니 "돈 줄 테니 안에 들어가서 자자" 했다. 윤희 씨가 "내 조카 건들지 말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골이 났다는데도 이들은 새벽 내내 불안해했다. 두 여성은 2시간 정도, 기자는 5분쯤 잤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화장실을 치우며 이들은 "아침 9시까지만 한번 자보고 싶다" 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실직 뒤 노숙을 하게 된 최정숙 씨. “주소가 없고, 나이가 많으니 주방 일을 하려고 해도 안 받아준다”고 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실직 뒤 노숙을 하게 된 최정숙 씨. “주소가 없고, 나이가 많으니 주방 일을 하려고 해도 안 받아준다”고 했다.
■ '피해자의 삶'...여성 노숙인 50% "범죄 피해 겪어"
보건복지부가 2021년 집계한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 여성 노숙인은 전체의 23.2% 정도. 3,344명이다. 2016년보다 14% 늘었다. 노숙인 전담 사회 복지사들은 '훨씬 많다, 10배는 많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경순 씨, 윤희 씨처럼 '숨어' 지내는 여성들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일정한 길가'나 '쪽방'에 있지 않고, PC방부터 찜질방·패스트푸드점·화장실 등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정부 통계에 들어오지 않으니, 여성 노숙인만이 겪는 성폭력 등 특수한 문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원책도 남성 노숙인 중심일 수밖에 없다. 시사기획 창이 만난 여성 20명을 대상으로 물어봤다. 주로 사업 실패 등 경제 문제로 노숙인이 되고, 성폭력 피해를 거의 당하지 않는 남성과는 확연히 달랐다.
- 노숙 이유는 55% 가정 위기(폭행, 쫓겨남, 가족 해체 등), 15%는 실직 등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 노숙 전 범죄(성폭행, 폭행 등)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는 35%, 노숙 후 피해 경험은 50%였다.
- 경제활동 경험은 50%, 이 중 절반인 5명은 '일용직(식당, 공장)' 경험이었고 3명은 고물과 폐지 줍기였다.
- 실업 이유는 3명은 병환, 3명은 연령, 3명은 주거 불안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성 노숙인의 이같은 특수성은 '제대로' 조사한 미국의 수치로도 가늠할 수 있다.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미국 어반인스티튜트가 로스앤젤레스 여성 노숙인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30%는 '폭력' 피해 때문에 거리에 나왔다. 관련 조사를 진행한 미국 UCSF의 티아나 무어 교수는 KBS와 만나 "조사 결과 여성 노숙인 16%는 거리에서 성범죄를 당했다"고도 말했다. 그녀는 "여성 노숙인은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산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고, 취업과 주거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여성 노숙인 지원책과 시설이 따로 필요하다는 지적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예산 1억 원으로 여성 노숙인 지원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의 한 노숙인 지원 센터가 여성 전담 인력 2명을 새로 뽑아 여성 노숙인을 찾아 나섰다. 서울 서대문구와 종로, 중구 일대에서만 '숨어있던' 여성 노숙인 62명이 새로 드러났다. 기존 관리 대상이었던 66명에 육박하는 숫자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이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지자체가 관리하면 된다'는 이유였다.
관련 방송 : 2024년 2월 27일 (화)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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