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한국무용의 레전드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며,
한때는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한국의 대표위인'으로 선정될만큼
한 시대에 획을 그었던 입지적인 인물이기도 함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밑에서 서양식 무용을 배웠고,
조선에서는 온갖 기방, 권번, 재야에 묻힌 예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교방무용, 궁중무용, 민속무용 등 각종 전통 춤을 배웠음.
이후 이것을 바탕으로 연구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냈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되어 해외 순방공연도 했음.
찰리 채플린, 헤밍웨이, 게리 쿠퍼 등 당대 유명인사들도
최승희의 공연을 관람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낳은 최초의 '월드스타'였다고도 할 수 있음
하지만...
일본군 위문공연 출연
국방헌금 납부
한 마디로 친.일.파
-인성
한 마디로 더러움
오만한 여왕마마 그 자체.
제자들을 하녀나 노비 부리듯이 험하게 다뤘는데,
제자로 들여놓고 자기 딸을 돌보는 보모로 부리느라 공연에 참여 못하게 하거나,
아예 자기 발을 씻기고 뒤치다꺼리를 하는 하녀로 써먹었음.
제자들이 안 예뻐지거나 조금이라도 살찌면 그대로 내쫓음
공연하다 제자가 순서를 까먹으면 살이 뭉개져 피가 날 정도로 꼬집고,
바쁜 일정이라 공연 퀄리티가 구리면 너넨 다 해고 시전해서
제자들이 울며 싹싹 비는 상황도 비일비재.
투애니원 공민지의 종할머니이기도 한 인간문화재 故공옥진 선생은
최승희의 제자로 춤을 배웠지만 사실상 몸종이었음
최승희도 노비를 부린다는 생각으로 공선생을 대했기 때문에 매우 험하게 부려졌다고.
문 틈으로 스승 최승희의 춤을 보다 걸리면 심하게 맞았는데,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몰래 훔쳐보고 따라하는 식으로 춤을 배웠다고 함
-월북
광복 후 최승희는 친일파라고 겁나 까이는데,
그래도 무용 하기에는 남쪽이 좋다고 남한에 남고 싶어했음.
워낙 문화계의 거물이었다보니 이승만도 최승희에게 북으로 가지말라고 사정함
근데 북한으로 간 남편 안막이 계속 설득하고 협박해서 결국 북한으로 감.
어느쪽이 더 나을지 계산기 두드려보고 각 재다 간 거라는 말도 있음
월북 이후 최승희 본인은 김일성의 엄청난 편애와 특별대우 속에 승승장구함
김일성이나 당 간부들하고도 성질대로 걍 싸웠고, 공산당 고위 간부의 뺨을 때리기도 했음.
("내가 그 최승희인데, 니들 따위가 나한테 감히?" 이런 태도.....성질머리 ㄷㄷ)
말년에는 자서전에 김일성 찬양하는 문구를 싣지 않아 완전히 찍혔음.
그러던 와중에 최승희의 제자가 최승희 데뷔 40주년을 기념하여 닭 40마리를 직접 잡았는데,
이게 개인 우상화라 하여 이걸 빌미로 결국 숙청당해 이후 행적이 묘연함.
(70년대에 남한에 왔던 탈북자가 정치범수용소에서 참혹한 몰골의 그녀를 목격했다고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