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직(1894년 7월 10일 - 1926년 6월 5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1917년 조선국민회에 참가
이듬해 2월 평안남도 일본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형사를 받다가 그 해 출옥해 조국광복회를 조직함 이후 3.1 운동에 참여했으며, 1919년 5월에 만주로 건너감
이후 그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큰 돈을 벌었고 남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산하단체의 회원으로 있었음
그리고 이사람은 엄청난 반공주의자였음
그가 만주에 있을 무렵 남만주에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당시 공산당들은 자신들과 사상이 다르면 반동으로 몰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살을 하고 다녔다고 함
그런 행태를 여러 번 봐왔던 김형직은 성격이 원래 깐깐하고 강직하기도 해서 공산주의자를 상당히 미워했는데,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 함
이러한 반공 성향으로 공산당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결국 1926년 6월 5일에 공산주의 집단에게 피살당함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이사람한테는 세 아들(김성주, 김철주, 김영주)이 있었는데 이중 김성주가 누구냐
얘임
(김성주는 김일성 개명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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