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7762079?sid=105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매일 70명 정도가 응급실로 실려 와요. 전화 받고 환자 진료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김밥 한 줄로 하루를 버틸 때도 있습니다."
지난 28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이 응급실 의료공백을 두고 국정브리핑에서 "여러 문제는 있지만 비상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응급실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강형구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콜폰은 5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최상위 응급실이다. 서울엔 7개 병원 내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데, 그중 한양대병원은 서울 동남권 응급환자를 담당하지만 최근에는 지방에서 오는 환자들도 수용하고 있다.
전화를 한 곳은 인근 119 소속 구급대원들로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일부 구급대원들은 이미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거절당했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강 교수는 약 3분 정도 환자의 상태, 거리 등을 묻고는 수용 여부를 판단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혈액암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 왔다. 고령의 환자는 빅5 대학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녔으나 해당 병원의 응급실 입원이 거부돼, 구급대원을 통해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강 교수는 수용 여부를 묻는 구급 대원들에게 "일단 오라"고 답했다.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일단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밀려드는 응급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몇 시간째 화장실도 다녀오지 못한 배준원 한양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이제는 (새벽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 퇴원 수속을 진행해야 해 정신이 없다"며 연신 타자를 두드렸다.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12시간의 철야 근무가 기본이다. 간호사들은 8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한다. 의료진 책상 위에는 졸음을 쫓기 위해 1L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 등 카페인 음료가 올려져 있었다.
그때 병실 한 칸에 누워있던 40대 A 씨가 병실에서 나와 의료진에게 말을 걸었다. A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정신과 약물을 60알 넘게 복용했고, 가족들의 신고로 응급실에 오게 됐다. 배 교수는 A 씨에게 다가가 "탈수 증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하고, 미음부터 식사를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평일 낮인데도 복통, 고열 등 증상으로 응급실을 방문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들이 많았다. 의료진은 경증의 경우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받을 것을 권유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날도 한 30대 여성은 응급실 출입구에서 보안요원의 안내를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인근 의원을 찾으려다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는데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인근 의원이 점심시간이고, 큰 병원에 가는 게 좋다는 생각에 응급실을 방문했다고 했다.
의료진은 경증 환자가 많아지면 위급한 환자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증 환자는 의료진과 의사소통하기도 어렵지만 경증 환자는 진료 순서, 보험 처리, 처치 과정 등에 대한 불만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환자가 있어도 "내 순서는 언제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응급의료센터 입구에는 '응급실 진료는 접수순이 아니라 중증도 순입니다.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 순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게재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