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pt/7617899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가나슈케이크ll조회 1352l 1
이 글은 8개월 전 (2024/10/14) 게시물이에요







설 연휴에 문자로 “새해 복 많이…”라는 인사를 받고 복 받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각종 업체, 정치인, 사회단체가 집단 발송한 이 편지들의 운명은, 삭제. 그리고 이 노동에 동반되는 감정은 불쾌감이다(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는 소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자는 쓰레기(스팸)로 전락한다.

영화 에 등장하는 만주어는 중국에서도 동북부 오지의 노인 10여명만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경향신문 인터넷판 2011년 9월6일자). 어떤 언어는 ‘풍성’하지만 의사 전달에 도움이 안되고 어떤 언어는 극소수가 사용해 사라질 운명이지만 소중하다.

글쓰기가 생계수단이라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위 사례들은 내 직업병과 관련이 있다. 나는 여성이지만 소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를 설명할 지면은 없고 결론만 말하자면, 소수자는 ‘아니지만’ 생각과 언어는 최대한 ‘중심’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필사적으로 주변성을 지향한다. 소수자의 관점은 사회적 자원이다. ‘주류’와 다른 시각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과 국가경쟁력이 절실히 찾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글은 가독성이 뛰어난 글이다. 그러나 ‘쉽게 읽힌다’는 말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쉬운 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익숙한 논리와 상투적 표현으로 쓰여져 아무 노동(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익숙함은 사고를 고정시킨다. 쉬운 글은 실제로 쉬워서가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진부한 주장, 논리로 위장한 통념, 지당하신 말씀, 제목만 봐도 읽을 마음이 사라지는 글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진정 쉬운 글은 내용(콘텐츠)과 주장(정치학)이 있으면서도 문장이 좋아서 읽기 편한 글을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과 기존 형식이 일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글은 매우 드물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쉬운 글은 없다. 소용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을 뿐이다.

어려운 글은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어려운 글은 없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글, 개념어의 남발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게 쓴 글, 즉 잘 쓰지 못한 글이 있을 뿐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언어에서 시작한다. 아래 사례를 보자. 맘대로 해고를 ‘노동시장 유연성’이라고 한다. 제주는 육지의 시각에서 보면 ‘변방’이지만, 태평양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해남 주민들은 해남을 ‘땅끝 마을’이 아니라 땅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장보기 같은 가사노동은 노동인가, 소비인가? 서구인이 말하는 지리상의 발견은 발견‘당한’ 현지인에겐 대량학살이었다. 강자의 언설은 보편성으로 인식되지만 약자의 주장은 ‘불평불만’으로 간주된다. 언어의 세계에 중립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사회는 ‘만주어’가 소멸되지 않는, 다양한 시각의 언어가 검열없이 들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드러나기가 쉽지 않아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폭력으로 가정이 깨져서 문제가 아니라 웬만한 폭력으로도 가정이 안 깨지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이렇게 반문하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어렵게 들리는 것이다.

나는 주식이나 자동차 분야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글을 읽을 때 무지한 내가 문제지 ‘어렵게’ 쓴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학)의 글일 경우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거리낌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라”고 요구한다. 이는 품성이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대접을 받는다. 어떤 이의 생각은 ‘독창적’이라고 평가받고, 어떤 사람의 생각은 ‘편협하다’고 비판받는다.

‘근친강간(가족 내 성폭력)’이라고 써서 원고를 보내면 편집자가 오타인 줄 알고 ‘근친상간’으로 바꾸어, 나도 모르게 활자화되는 경우를 수없이 겪었다. 내가 장애인의 ‘상대어’를 비장애인이라고 쓰면 ‘정상인’이나 ‘일반인’으로 고친 후, “이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고 오히려 나를 설득한다. 성 판매 여성 혹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가리켜 불가피하게 ‘’라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 작은따옴표를 삭제해 버린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섹슈얼리티에 대해 논의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다. 여성과 성에 대한 기존의 의미가 고수되는 것이다.

쉬운 글을 선호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쉬운 글은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여서 쉬운 것이다. 쉬운 글은 지구를 망가뜨리고(종이 낭비), 약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며, 새로운 사유의 등장을 가로막아 사이비 지식을 양산한다. 쉬운 글이 두려운 이유다.



-여성학 강사 정희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유머·감동 소원을 이뤄준다는 하얀 거북인데286 누눈나난07.04 22:1831785 32
이슈·소식 국민 97% 찬성 한다는 빨간 번호판.jpg289 yiyeo..07.04 14:2086736
이슈·소식 현재 T들은 답장하는데 1시간 걸린다는 카톡.JPG162 우우아아07.04 16:1376818 0
이슈·소식 현재 혜리 소통앱 사태로 파묘중인 이동욱 버블.JPG353 우우아아07.04 14:33116037
이슈·소식 현재 𝙅𝙊𝙉𝙉𝘼 정병온다는 아이돌 소통앱 실화.JPG163 우우아아07.04 13:48104707 2
전한길 근황(인스타)1 세기말 04.07 19:31 4430 2
최고존엄 갓성비 핸드크림 삼대장.jpg457 episo.. 04.07 19:30 131333 15
민주당 큰?일났다!5 옹뇸뇸뇸 04.07 19:26 2156 0
녹색 어머니회를 대신해서 아버지들이 대신 한다면1 30786.. 04.07 19:24 2447 0
인셉션 못지않은 신선한 소재의 SF 영화1 혐오없는세상 04.07 19:23 1162 0
표절해서 만든 판타지 소설1 위플래시 04.07 19:18 5130 0
지브리 포함 AI 그림체 17개 비교 (ChatGPT)1 코카콜라제로제로 04.07 19:06 1838 0
윤이 청와대 안 들어가려는 이유 이거임15 더보이즈 상연 04.07 19:05 45737 13
어른들은 약간의 패륜을 좋아하시는 듯.twt 네가 꽃이 되었.. 04.07 19:04 11548 0
현재 여론 터진 디저트 가게 홍보.JPG312 우우아아 04.07 19:01 165542 8
연쇄살인마가 게임기 뺏겨서 단식투쟁하는데 옹호받는 이유 모모부부기기 04.07 18:53 820 0
라잌제니 막차 탑승한 07년생들 헬로>.. 04.07 18:47 1414 0
도마뱀 분양글을 올린 중딩.jpg7 키토푸딩 04.07 18:41 3538 0
국밥집에서 우원식 회견 보던 영감님 한마디3 요원출신 04.07 18:35 3441 0
오세훈, 전략적 침묵?…사퇴 아닌 휴가 내고 당내 경선 나갈 듯1 완판수제돈가스 04.07 18:35 522 0
아이브 장원영, 저당 아이스크림 모델 발탁..'러블리 끝판왕'1 수인분당선 04.07 18:35 7531 2
조국당 '이재명, 지난 대선 패배 잊었나' 연합 강요 수위 높여1 어니부깅 04.07 18:34 793 0
마지막 고양이가 뽀뽀를 원하는 부위4 비비의주인 04.07 18:33 5226 0
고등학교 졸업사진 공개된 정청래 의원 석군 04.07 18:31 1638 0
김동연 : 우원식의 대선- 개헌 동시투표에 적극 동의합니다6 아마난너를사랑하나.. 04.07 18:29 2024 0
이슈
일상
연예
드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