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의 미공개수첩
그날, 천재인검사는 검사실에서 상부의 명령이라며 내게 수갑을 채웠다.
처음 차보는 수갑의 감촉이 양 손목에 차갑다.
마음은 반대로 수치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귓등까지 화끈거렸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수갑을 채운채로 포토라인에 세웠다. 후레쉬가 번쩍이며 여기저기서 지금 심경이 어떻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준비했던건 아니었지만
'공은 부하에게 돌리고 책임은 상관이 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 그런 심정이다'고 대답한것 같다.
포토라인 주변을 에워싼 기자들이 모두 나의 수갑찬 손목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얼핏 젊은 나이 또래의 여자기자도 여럿 보였다.
법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그가 다가와 무언의 암시를 준다.
왜 이 고생을 하느냐는 투다.
김관진장관의 지시사항이라고만 하면 모든게 풀릴것이라는 회유를 여러번 받은터라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영장담당판사를 모른다.
그렇기에 구속은 당연히 받아들일 참이었다.
사법부가 법조항을 적용하는게 아니라 타겟에 맞추어 법조항의 확대해석으로 꿰맞추는 판결을 수차례 보아 왔기에 담당 판사 또한 그렇게 구속판결을 내린데도 하등 이상할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각은 의외였다. 이언학판사라고 했다. 일단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일이 끝난건 아니었다.
이 일로 인해 2명의 부하가 구속된 상태이고 김관진선배님이 관련되어 있다.
부당한 지시를 받은바도 없지만 지금까지 받아온 조사 행태로 볼 때 무사할 수는 없다.
나의 아들과 친구 박지만까지 압수수색한 저들이 나를 가만히 놔줄것 같지는 않다.
끝내는 나를 발판 삼아 김장관을 구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인검사에게 조사를 받는 동안 윤석열지검장도 몇차례 와서 거들었다.
그의 태도는 안하무인격이었다. 나보다 몇 살 아래로 알고 있었는데 시종일관 비아냥거리는 반말투였다.
한참 어린 천재인검사한테 받는 수모도 수모려니와 이 사건을 직접 주도하고 있는 윤석열검사의 능글능글함은 나의 수모감에 기름을 끼어얹는 격이었다.
그런 저들이 나를 가만 두겠는가?
어디 두고 보자는듯 헤어지는 자리에서 수갑을 풀어주는 검사의 눈빛에 증오심까지 어려있어 보인다. 도대체 내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무언가 해야겠다.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나 혼자 짊어지고 가자.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손대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가자.
설마 저들도 사람일진대 내가 유서로 남긴 부탁을 안들어 주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소위 적폐청산이라며 이미 적화된것이나 다름없는 이 정권에서 박근혜대통령을 먼지떨이 하며 없는 죄를 만들어낸 최일선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반공을 국시로 삼아온 국가에서, 그것도 30여년을 군에서 생활해 온 내가 현 시국을 적화상태라고 정의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것인가?
문재인, 임종석, 조국, 이해찬 같은 숱한 주동세력이 뇌리를 스친다. 접근성이 힘들다는 무력감 또한 온 몸을 훑는다.
내가 할 수 없다는 선이 그어지자 내가 할 수 있는건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윤석열이다.
그를 제거하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도 죽자.
그와 밖에서 접촉할 구실은 충분하다. 천재인은 어리니 당신에게 직접 사석에서 식사라도 하면서 김관진을 죽이는 이야기를 해줄터이니 밥한끼 먹자. 나오시라. 출세욕에 불타는 그의 눈길이 나의 의중을 뚫기에는 역부족일터.
문제는 총기구입이다. 내 마음을 알아줄 후배들이 있긴한데 나중에 그들이 당할 고초를 상상하니 난망하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전역할때 그냥 한자루쯤 가져오는거였는데 후회스럽다.
윤석열만 제거한데도 검찰의 마녀사냥을 조금은 완화시키고, 아니 어쩌면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모든 국민들이 문재인정권의 적화통일이라는 최종목표를 알아채고 이 무모한 정권을 뒤엎을 기회를 마련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안타깝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사관생도의 신조가 오늘따라 유별스레 가슴을 후벼파는데도...
아,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