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사 그거 맵빨 = 인종우월주의
이번 휴식기에 꼭 읽어내고 말리라.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스칠 때마다 아 저거 읽어야 하는데… 언제 읽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드디어 읽었다.
책의 기원은 이렇다. 1972년, 생태학자였던 저자는 뉴기니의 원주민 지도자 얄리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다. 둘 모두 뉴기니인들이 유럽인들에 비해 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유럽인들이 뉴기니인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할 수 없다.
얄리는 (그런데 왜)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성냥부터 시작해서 우산, 전등 같은 서구 문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오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p.18)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잉태시점이었다. 그로부터 25년 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얄리의 질문해 대답해 보려고 한다(p.19)며 저자는 책을 시작한다.
책을 다읽긴 무리다 싶고 핵심을 알고 싶으면, p.380 에 해당하는 4페이지와, 에필로그 p.592의5페이지, 이렇게 9페이지만이라도 읽어 보라. 저자가 잘 요약해 놓았다.
그렇지만 나의 언어로 러프하게 요약해보자.
1. 어떤 책인가: 책 제목 로 상징되는, 유럽인들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요인들: 군사 기술, 전염병/면역체계, 해양 기술, 정치 조직, 문자와 발명 등등. 이것들이 대체 왜 유럽에 편중되어 발전했을까를 파고든다. 쉽게 말해 테크 차이인데 테크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느냐.
2. 식량 생산량이다. 유랑형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 식량 생산을 시작한다 (농업 혁명) -> 유랑을 그치고 정주형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계속 이사하려면 다 짐이니까 소유물을 계속 늘릴 수 없는데 머물러 사니까 소유물을 축적한다. 더하여 잉여 생산물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배계급은 이것을 가지고 전문가 집단에게 분배할 수 있어 테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SCV러시만 가능했는데 미네랄이 쌓이니까 배럭을 올려 전투만 하는 마린도 뽑을 수 있고, 아카데미까지 올리면 스팀팩도 개발하고 메딕과 파뱃도 섞어줄 수 있어 강력한 종족이 되어가는 것이다.
3. 식량 생산에서 후덜덜한 것은 작물화시켜 주식으로 삼을만한, 세계를 통틀어 56종 밖에 안 되는 후보군 중 무려 39종이 유라시아 대륙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32종이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사하라 사막 북부는 지중해 연안으로 로마부터 시작해서 유럽 역사와 함께 움직인다.)
식물 뿐 아니라 동물도 그랬다. 대형 포유류가 가축화가 되어야 농업에도 써먹고 단백질 공급원으로도 써먹고 하는데 고대에 가축화된 대형 초식 포유류 14종 중 13종이 유라시아에 몰빵됐다. 심지어 주요 5종(현재는 전 세계에 분포하는 녀석들)인 양, 염소, 소, 돼지, 말 모두 다 유라시아산 출신이다. 기타 9종(현재까지도 지엽적으로 분포하는 녀석들) 중에서도 단 1종, 라마와 알파카의 조상이 남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축화에 성공한다.
스타 맵을 생각하면 그냥 미네랄(식물)과 가스(동물)의 불균형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이 맵 누가 만든 거야?)다른 대륙 입장에서 적 문명은 자원도 넓고 지천에 멀티인 대륙 스타팅인데 내 문명은 저 멀리 동떨어져있는데다, 자원도 거의 없는 곳이라면? 게임이 진행될수록 격차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게임이 10분쯤 지나면? GG를 치고 있을 것이다.
정리해보자. (대륙크기순)
1. 유라시아+북아프리카
본진크기 40, 미네랄 39덩이, 가스 13
2. 남북아메리카
본진크기 28, 미네랄 11덩이, 가스 1
3. (사하라이남)아프리카
본진크기 16, 미네랄 4덩이, 가스 0
4. 오세아니아
본진크기 6, 미네랄 2덩이, 가스 0
5. 남극
본진크기 10
(*본진크기=대륙의 크기 비율은 위키백과를 참조한 대략의 수치임을 밝힌다.)
4. 맵의 자원분배 다음으로 대두되는 것이 축의 문제다. 유라시아 대륙은 축이 동서방향인데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는 남북방향이다. 위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후조건은 위도에 따라 엄청 크게 달라진다. 식물이고 동물이고 적응을 못한다. 식량생산을 위한 주요매체(종자, 가축)들이 어찌어찌 전달되도 뿌리내려 발전하지 못한다.
축이 영향을 미치는 건 동식물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술전파에도 그렇다. 기후가 다르면 사는 풍경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집단의 이질감이 심화되는데 그래서인지 바퀴나 문자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남북으로의 확산속도가 동서로의 확산속도보다 월등히 느렸다. 인류사 내내.
5. 결국 이 모든 것이 쌓여 격차의 고리를 만든다. 땅크기 + 생산량 -> 기술 발전 -> 인구 증대 -> 기술 발전 -> 인구 증대의 사이클이 생긴다. 인구가 많으면 테크차이가 없는 단순전쟁이 벌어져도 쪽수에서 유리하다. 테크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느냐, 사람이 많으니까 뻘짓 하는 놈도 많아지는데 이놈들이 하는게 잉여가 아니었던 것이다. 덕질이 세상을 구원한다 말은 인류사 내내 진실이었던 것. 이들을 우리는 발명가라 부른다. 발명가가 많은 사회는 혁신이 더 많이 일어났고 -> 이것은 곧 테크 차이로 이어져 혁신이 느렸거나 혁신을 거부했던 사회를 잡아먹는다.
6.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러면 왜 유라시아 대륙중에서도, 아시아 문명이 아닌 유럽 문명이 번성하여 승리했는가.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중국과 유럽의 정치적 차이.
중국은 B.C.221에 통일을 이룬 후 대체로 쭉 통일된 상태(삼국지고 위진남북조고 게임의 목표는 통일로 동일한 것)였고, 유럽은 지금도 45개 언어를 사용하고 각자 나름의 알파벳을 사용하는 만성적 분열의 상태다.
이 또한 맵 속에 답이 있는데 유럽은 엄청 큰 반도가 5개나 있고 그 안에 독립적인 언어, 민족, 정부가 있었다. (그리스, 이탈리아, 이베리아, 덴마크, 노르웨이-스웨덴) 중국은? 한반도 정도를 빼면 해안선이 완만하다. (뭔가 뜻밖의 고통스러움이 느껴진다.)
반도 말고 섬을 살펴볼까. 유럽의 경우 정치, 언어, 민족성이 독립적일 만큼 큰 두개의 섬이 있었다.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 그것도 대륙에 아주 가까이. 중국의 가까운 큰 섬 2개는 타이완과 하이난인데 둘을 합쳐도 아일랜드보다 작다. 일본이 큰 섬인데 아까 툭 튀어나온 동쪽의 오랑캐가 사는 반도땅 끝자락에 있어서 취급도 안하던 곳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해안의 거리는 35.4km인데 반해 일본은 중국 본토와 740km 떨어져 있다.
(기타 산맥과 강의 차이도 있는데 생략한다.) 이렇게 맵 지형 차이가 커서 중국은 첫 통일 이후 정치적 통일성을 쭉 유지할 수 있는 편이었고, 유럽은 그게 참 힘들었다. 로마 전성기도 유럽의 반도 못 먹었고, 샤를마뉴 대제, 나폴레옹, 히틀러, 모두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통일된 대륙(중국)은 분열된 대륙(유럽)에 비해 분명 장점이 있었다. 좋은 것을 전역에 퍼뜨리는 힘은 중국이 우월했다. 그런데 아뿔사. 이건 양날의 검이었다! 좋은 것 망치는 힘도 중국이 우월했다. 폭군 하나 뜨면 대륙 전역의 책을 불태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분서갱유뿐이랴. 현대 중국도 마찬가지. 문화대혁명 이후 전국의 학교는 5년이나 문을 닫았다.
유럽은 분할되어 있어 폭군의 한계가 지엽적이었다. 한 정치적 공동체가 혁신하지 않으면 먼저 혁신을 마친 인접 국가에 정복당하는게 너무 당연했고. 그래서 끊임없이 테크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라시아 안에서도 유럽이 승리한 것이다.
7. 책을 읽는 도중 중간중간 이 책을 요약하면서, 인류사=맵빨이라고 웃음기 잔뜩 넣어 자조섞인듯 말했었다. 저자도 본문 마지막을 이 문장으로 끝맺는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p.591) 이 앞문장을 읽어보면 저자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 보인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 차별주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 때문이었다.결국 이 책은 처음 시작인 얄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끝맺어지는 것이다. 얄리. 맵빨이었어. 니네가 못나서 그런 건 아냐. (왠지 미안)
책의 뒷표지 추천사에 제임스 B.그리핀 교수가 인종적,민족적 차이를 다룬 이론에 대한 완벽한 방어 이론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백인 우월주의로 대표되는 인종 우월주의자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완벽한 답변을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 말만 따라
내가 알고 있는 뉴기니인들 중에는 잠재적인 에디슨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천재성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했다. 즉, 축음기를 발명하는 문제보다는 뉴기니의 정글에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아남는 문제에 주력했던 것이다. (p.383) 인류사는 맵빨임을 책 한권 내내 약간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하며 증명하는 느낌이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배와 피지배의 근본적 차이가 인종적 차이에 있지 않음인 것이다. (저자의 학자적 태도에 감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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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본론만큼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가 자신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였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하며 증명하는 식으로 책이 전개된 것은, 저자가 역사학을 과학적으로 실증하려는 학문적 태도 때문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과학 중에서도 정치과학, 경제과학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역사과학이란 말은 없고, 대부분 역사학자는 자신을 과학자로 생각하지 않기에 과학의 방법론도 배우지 않는다고.
그러나 천문학자, 기후학자, 생태학자, 진화생물학자,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등이 직면하는 어려움과 역사학자의 그것이 비슷함을 설명한 후 -> 실증적인 과학 방법론을 적용한 역사 연구는 비역사적 과학에 비해 유용하여 인간사회에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는 모습을 보이며 책의 에필로그를 끝맺는다. 자신이 이 책에서 내내 그 작업을 함으로써 보여준 다음에 하는 말이라, 충분히 설득이 되는 것이었다.
총균쇠를 이해하는데 진심으로 스타크래프트가 도움이 되었다. 초창기 수많은 맵의 불균형성. 헌터9시가 유리한 이유 등등. 아참, 플레이한 적은 없지만 문명도 도움이 됐다. 문명을 게임 말고 책으로 읽은 느낌이랄까. 결론=게임은 이롭다(?)
리얼 결론 = 인류사의 테크 차이는 인종적 우열 때문이 아닌, 맵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