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 겨울사랑
살박살박
머리맡 탁상 시계는
밤마다 깊은 독 속에서
시간의 흰 싸라기를 퍼낸다
그 흰쌀 퍼내는 소리가
달빛처럼 고요해질 때면
그 밤 내 잠은
숯불 속 군밤처럼 달다
/박분필, 겨울밤 흰 눈 내릴때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에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류시화,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얘기하고 싶다.
/강소천, 눈 내리는 밤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 쭈삣쭈삣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온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겨울사랑 -
찬바람이 계절을 삼키듯
하얀 설경 위에
발걸음이 멈추어 선다
잔가지 위에 눈꽃이 피어
시집가는 여인의
눈물샘처럼 하얗게
찬바람 결 따라 하얀 가루가 날린다
아무 생각 없는 무표정
인사라도 건네듯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반짝인다
얼마나 멀리서 뿌쳤을까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나부끼는 잔가지 나뭇잎의 춤사위는
너를 기다리는 꿈의 환상이 아닐까?
/유진숙, 설경을 바라보면서
/
올해 겨울 마지막일 것 같은 눈이 내리길래
그동안 필사했던 겨울 시들 뒤적여봤어
예쁜 문장들 보고 따숩게 따숩게 올겨울 마무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