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전 8시간 금식을 해야 해 오늘 아침밥을 안 줬더니 ‘나한테 왜 이래’라는 눈빛으로 째려봤어요.”
지난 17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의 ‘KU 아임 도그너 헌혈센터’에 생애 첫 헌혈을 하러 온 4살배기 래브라도리트리버 ‘설렘이’와 보호자 최영인화(59)씨가 찾아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설렘이는 채혈하는 침상 위에서 가만히 앉은 자세를 취했다. 수의사 최희재(30)씨가 설렘이의 목 부위에 바늘을 꽂고 6~7분간 채혈했다. 설렘이가 가만히 앉은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자 직원들은 “인내심 테스트하면 1등 하겠네”라고 했다. 센터 관계자는 “설렘이가 뽑은 피 320mL로 작은 강아지 4마리를 살린 셈”이라고 했다
동물도 외상을 입거나 심각한 질환에 걸리면 수혈을 받는데, 그동안 국내에서 동물 혈액은 주로 ‘공혈 동물’을 통해 공급됐다. 혈액 제공을 위해 사육되는 이 동물들은 약 1000마리 안팎으로 평생 피만 뽑히고 살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KU 아임 도그너 헌혈센터’가 작년 8월 아시아 최초로 설립됐다. 반려견 헌혈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취지다. 센터 관계자는 “여전히 반려견 혈액 수급의 90% 이상을 공혈견에게 의존하고 있다”며 “수혈을 위해 비윤리적으로 사육되는 공혈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려견 헌혈 문화 정착이 절실하다”고 했다. 헌혈은 전염성 질환이 없으며 2~8세, 몸무게가 25㎏ 이상인 개만 가능하다.
‘우리 아이도 혹여라도 수혈이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고 한다. 작년 5월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헌혈을 하러 온 네 살 리트리버 ‘누가’의 보호자 김주미(50)씨는 “요즘 주변에 반려견을 키우는 집이 굉장히 많은데, 그만큼 아픈 강아지도 늘어나면서 피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헌혈에 참여하게 됐다”며 “조건이 가능하다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해야 공혈견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결심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