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숨은 흰 수증기가 되어 공중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내린다는 말보다
온다는 말이 좋다
너도 눈처럼
마냥 오기만 하여라
/댓글시인 제페토, 눈이 오네
오늘은 발자국이 생기기에 얼마나 좋은 날인지,
사람들은 전부 발자국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네.
춥다, 춥다, 그러면서 땅만 보며 걸어 다니네.
눈 내리는 소리는 안 들리는데
눈을 밟으면 소리가 났다.
우리는 눈 내리는 소리처럼 말하자.
/김행숙, 새의 위치
책상을 가운데 두고
너와 마주 앉아 있던 어느 겨울의 기억
학교의 난방시설이 온통 고장 나는 바람에
입을 열면 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지던 저녁의 교실
네가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이 퍼져가는 모양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는 생각
뭐 보느냐고 네가 묻자
나는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너,
라고 대답하고 말았던 그날
/황인찬, 겨울 메모
겨울이었어
네가 입김을 뱉으며 나와 결혼하자 했어
갑자기 함박눈이 거꾸로 올라가
순간 입김이 솜사탕인 줄만 알았어
엄지발가락부터 단내가 스며들어
나는 그 설탕으로 빚은 거미줄에 투신했어
네게 엉키기로 했어 감전되기로 했어
/서덕준, 오프닝 크레딧
겨울은 서로 닮아서
가운데 그쯤 누가 있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렵지
눈이 내렸고 쌓였고 그쳤고 녹기도 했으며
한 자 한 자 오래 걸려 적는 사람처럼 당신처럼 있다
나는 나는 거기까지 오래오래 걸어다녀 온 기분,
그랬다
/유희경, 겨울은 겨울로 온다
막막한 겨울이었다
이제 너는 없고 나만 남아 견디는 욕된 날들
겨울은 해마다 찾아와 나를 후려치고
그럴 때면
첫눈이 오기 전에 죽고 싶었다
/도종환, 스물몇 살의 겨울
겨울 내내 할 일이라고는
춥다고 말하는 일,
창틀에 내려앉는 눈송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나는 다시 녹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안희연, 밸브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날아오르는 액체 속에서
흰 종이들이 부딪는 소리가 들려.
너는 내 비밀을 적어둔 눈송이를 데려다
어디에 버려두었니.
어제는 비가 내렸고 오늘은 눈이 내리는데
얼어가는 세계와 녹아가는 세계 중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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