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주적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던 몽양 여운형 선생.
반세기 동안 언급하는 것 조차 금기시 되다가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독립운동 서훈 2급)에 추서됨.
원래는
'대한민국장'(1급)을 추서할 계획이었는데
'사회주의자였다'며
극우, 보수(자칭) 진영이 극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에
(당시, 국가보훈처에서 직접 해명한 내용임)
한 단계 낮춰서라도 드린 거쥬;
'정권 바뀌면 이마저도 못 드리겠다...'
조급했던 것 같은...
당시, 진보 진영으로 부터는
"여운형 선생께 2급 훈장을 준다는 게 말이 되냐??!!"
비난을 받았고요.
욕이란 욕은 양쪽으로 부터 다 듣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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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이 지나고,
2008년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날...
"대통령만이 서훈 수여와 취소 권한을 가진다"는
과 에 따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급)으로 승급해 드렸쥬 ㄷㄷㄷㄷㄷㄷㄷ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날, 홍길동 처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11년 까지도 빡쳐있던 동아일보 ㅋㅋㅋㅋㅋㅋㅋㅋ
청년은 세계를 향해 총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운형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1946년)를 쓴 이만규는 "(학병 지원 권유문은) 의 모략이었다"고 '기사조작설'을 제기했다. 특히 1943년 당시사회부 기자였던 조반상의 증언도 이러한 '기사조작설'을 뒷받침한다. 1946년 2월 13일자 에는 그와 관련된 증언이 실려 있다.
"총독부는 여운형에게 학병 권장 유세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여운형은 건강문제를 핑계로 거절한 뒤 총독 면담 6-7분 만에 밖으로 나왔다.사회부 차장이던 일본인 기자가 이 모습을 보고 여운형 집을 쫓아가 여운형의 총독 회견 기사를 냈다. 그 다음날 다시 여운형을 찾아가 학병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때 나는 통역으로 동석했다. 여운형은 '학병은 지원제도이므로 나가고 안 나가고는 본인들의 의사에 달려 있고 나로서는 의견을 말할 바가 못된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일본인 차장이 여운형의 서명을 받고 싶다고 하자 여운형이 서명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사실무근의 기사가 나갔다."
ps. 스르륵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