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유난한도전ll조회 18445l 38
많이 스크랩된 글이에요!
나도 스크랩하기 l 카카오톡 공유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이동진 칼럼) | 인스티즈



터널을 지날때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헤어지고 위안이 되는 글이라 가져와봄 ㅠㅠ



 
좋은 글이네요
3개월 전
보석바  🍓
👏
3개월 전
정한7777  잠은죽어서자자
👍
3개월 전
위로가되네요
3개월 전
👍
3개월 전
글을 읽으면서도 뒤돌아 보는 나는 카톡이라도 지워야 하나
3개월 전
👍
30일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이슈·소식 오늘자 강남역 투신 구조 영상 (충격주의)280 우우아아05.02 19:4790362 5
유머·감동 솔직히 힘들다는 콘서트 방식...jpg105 스카티셰플러05.02 17:0070412 1
유머·감동 SK 회장이 마누라 드립 봤다고 함162 훈둥이.05.02 16:4978849 26
이슈·소식 현재 ㅈ됐다는 SKT 성과급 걱정하던 직원 근황71 콩순이!인형05.02 20:5571818 3
유머·감동 범죄 저질러서 6년다닌 회사 짤릴것 같다는 사람79 leile..05.02 16:0773821 4
일본쌀이 많이 오른 이유.jpg3 따온 04.27 19:41 4201 2
스파이더맨 보면서 느낀건데 다들 기분이 우울할 때 가는 곳이 있어?1 윤정부 04.27 19:39 705 0
없어지거나 줄어들어서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 음식 체인점 말해보는 달글7 자연치유 04.27 19:32 2903 0
나랑 여행 계획만 잡으면 친구들이 임신함48 31109.. 04.27 19:31 69425 7
현재 닉네임 지은 계기 말해보는 달글1 아우어 04.27 19:31 882 0
미국병원에서 한국인 간호사 채용을 거부하는 사태(태움)122 유난한도전 04.27 19:31 106192 0
나쁜남자와 착한남자를 표현한 삽화 킹아 04.27 19:28 1655 0
[기타] 전직 장례식장 총무의 팁.jpg Jeddd 04.27 19:25 1714 2
회사 다니면서 사내연애 4번 했으면 남미새야?.jpg47 김규년 04.27 19:25 51504 0
친가의 고양이는 건강하게 잘 있어?1 인어겅듀 04.27 19:25 2178 0
아파트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용달차.jpg9 LenNy.. 04.27 19:21 10433 0
??? : "한글은 너무 불편한 문자다."6 카야쨈 04.27 19:18 10899 4
📚 전국 100인의 사서가 선정한 2025년 1~5월 사서베스트 추천도서 📚3 빅플래닛태민 04.27 19:16 7574 6
입 떡벌어진다는 챗GPT 근황..7 저루어 04.27 19:10 20981 2
일본 여행 포기하고 장례식에 온 친구.jpg88 LenNy.. 04.27 18:48 49169 33
투썸 케이크 모델들7 sweet.. 04.27 18:43 11270 0
오늘자 정신나간 수원 묻지마 폭행남1 30867.. 04.27 18:43 7330 0
주4일 근무는 원하지만 카페 마트 백화점 쇼핑몰 음식점 등등은 열려있기를 바라는 사..22 멍ㅇ멍이 소리를.. 04.27 18:43 30681 3
나혼산) 말 잘듣는 꽃분이2 친밀한이방인 04.27 18:43 4322 0
동남아 곤충이 제주도에 몰려온 이유 색지 04.27 18:43 3517 1
이슈
일상
연예
드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