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김향화 독립운동가를 소개했었어!
이번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여성 독립운동가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해
지난 글 링크 http://m.cafe.daum.net/ok1221/9Zdf/1452450?svc=cafeapp
이번 영상 링크
이 영상에서 소개하는 남자현 독립운동가를
내레이션과 인명사전을 참고해서 소개 해볼게!
그녀의 나이 스물 셋
의병을 하겠다며 떠난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흔 여섯의 나이가 된 어느 날
남편 김영주가 의병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게 돼
하지만 남자현 독립운동가는 슬퍼만 하고 있지 않았어
마흔 여섯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먼 여정을 떠나게 돼
독립군의 어머니로,
더 나아가 조선의 총구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된 거지
남자현 독립운동가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1919년 3·1운동 때 중국 둥베이지방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하는 한편,
12곳에 교회를 건립하고 10개의 여성교육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에 힘쓰셨지
더 이어지는 이야기에 앞서
다들 안중근 의사는 잘 알지?
그리고 네 번째 손가락이 잘린 그분의 지장도 많이 봤을 거야
이걸 단지라고 하는데,
남자현 독립운동가는 각각의 의미를 담아
세 손가락을 단지했어
독립군의 결속이 없다면 나라의 결속도 없다며
스스로 손가락을 끊어낸 거야
마지막 세 번째 손가락은
1932년 국제연맹 리턴조사단이 하얼빈에 도착하자
무명지를 끊어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란
혈서를 써서 끊어진 손가락과 동봉하여 전달,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셨어
이렇게 나라를 위해 애쓰신 남자현 독립운동가는
죽기 전에 세 가지 유언을 남기셨어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남자현 독립운동가는 누구보다 독립운동에 앞장섰지
그러다 일본장교 무토 노부요시를 살해하려고
폭탄과 무기를 휴대하고 가다가 체포되었어
옥중에서도 단식으로 항쟁하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하얼빈에서 순국하시게 돼...
독립운동으로 남편을 잃고도
본인까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지주가 되었던 분
이분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해!
남자현 독립운동가를 잊지 말자!
참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계시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안타까운데
매체에서도 더 많이 다뤄지고 알려지게 되면 좋겠어!